광주광역시 남구 백운동 독립로 프라자호텔 옆 <삼천포 국밥24시(조정희 사장)>는 백운동에서 기부천사로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다. 22일 오후 손님이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찾아가기로 약속하고 방문했다. 조 사장과 인터뷰를 했다.
▲백운동에서 기부천사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해서 쌀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까?
-나는 어려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편모 슬하에서 광주공원 광장에 어머니가 리어카 국밥장사를 했을 때부터 국밥장사 일을 배웠습니다. 그때는 어려웠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그 어려웠던 시절에 리어카에서 장사하시면서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냥 밥을 주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기부를 하셨는지요?
-기부는 무슨 기부랄 것이 있습니까? 우리 식당에 쌀을 들일 때마다 20kg 한 포대를 동사무소 뒤주에 채웠을 뿐입니다.
▲ 동사무소에는 무슨 뒤주가 있었습니까?
- 그 당시 광주 어떤 신문에 백운동사무소에 '불우이웃돕기 뒤주'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그 뒤주를 내가 조금이라도 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포대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6년 밖에 되지 않아 부끄럽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많이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다.
-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었습니다. 그 자식도 보육원에서 입양해서 잘 성장해서 우리 부부한테 참 효자였는데 작년에 중국에서 죽었습니다. 간장이 끊어진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처음 느껴봤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말도 처음 스스로 느꼈습니다. 키운 자식이 이처럼 애간장이 녹는 것 같은데, 낳아서 키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얼마나 애환이 클까요?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끝내는 눈믈을 흘렸다.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 '삼천포국밥24시'가 원래는 50m 아래에 있었는데, 그때는 손님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국밥집이 호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삼천포국밥24시' 국밥집이 특별히 손님이 많은 이유는 무엇이며, 지금 현재의 가게로 이사를 오게 된 동기는요?
- 손님이 많았던 것은 백운동에서 21년 국밥집을 했구요. 음식을 내가 직접 정성과 어머니한테 어려서부터 배운 손맛일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 장사가 잘 되었던 가게를 이사하게 된 것은요?
- 이사 이야기를 생각하면 사지가 떨립니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조정희 사장의 표정으로 봐서 인간적 배신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애증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지 조정희 사장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국밥집을 친정어머니한테 배웠는데 친정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살아 계십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지금도 오시면 이렇게 손질을 해주십니다.
조 사장은 어머니와 함께 고기내장을 손질하는 사진을 내놓았다.
▲ 친정어머님의 연세는요?
- 95세나 되셨어요. 아버지께서 39세에 화순탄광 굴이 무너져서 돌아가셨지요. 그래서 친정어머니는 39세에 홀로 되어서 6남매를 국밥장사를 해서 키웠어요. 그래도 자식들이 모두 잘 되었습니다. 나만 이렇게 삽니다.
▲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고생을 많이 했겠군요?
- 고생이야 그 시절 안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마는 우리 아버지는 참 훌륭했습니다.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군인이었으며, 제대 후에는 함평 경찰서에 근무했으며 축구부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조 사장은 아버지가 함평경찰서 근무 시절 <축구우승 기념사진>을 내놓았다.
- 훌륭하신 우리 아버지는 소도둑을 잡았는데, 도둑한테서 도둑 어머니의 병환에 대한 슬픈 사연을 듣고 봉급을 털어서 소 주인에게 소 값을 마련해주었으며, 소도둑을 방면해준 공직자로의 책임감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조 정희 사장의 심경으로 보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픈 사연 때문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젊은 39세로 탄광토굴이 무너져 별세한 아버지를 떠오른 것이었다.
조 정희 사장은 한참 후에 “아버지는 '화순탄광 제1대 노조위원장'이었으며,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서 표창장 수상 사진과 표창장을 내놓았다.
'삼천포국밥24시'는 부모님의 투철한 사랑과 봉사정신 그리고 이웃 언니의 나눔의 교훈을 잊지 않고 살아오면서 국밥장사로 큰돈은 못 벌지만 "나눔이란 기부정신은 곧 나에게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오늘도 열심히 뜨거운 가스 불꽃 옆에서 오시는 손님을 위해서 정성어린 손맛을 일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