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매개자는 결국 국민이다.
남북관계의 매개자는 결국 국민이다.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4.10.15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통일의 사례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한반도의 남과 북을 논하면서 양비론에 입각함이 가슴 아프다. 어느 세월에 양시론을 말할 수 있으면 통일한국이 이루어진 그날이겠지만, 60년이 훨씬 초과한 분단의 세월은, 애시당초 한반도에서 기형적으로 탄생한 정권들이 자기 권력을 위축시키거나 해소할 통일권력이 발전적으로 등장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 않을 것 같다.

현대국가에 있어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구두선처럼 입에 담는 남북권력의 진정성은 국민과 인민의 욕구와 의지를 수렴해서 국가의 중대사를 해결하는데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삼대 후계에 따른 권력과 해방 후의 모든 기득권의 총화가 잃어버린 10년을 절치부심하면서 탈환했는데, 아해의 순진성을 통째로 들어내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공화국론에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결코 정치가 아니었다.

통일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남북의 긴장완화와 교통이 통일의 첫걸음이 될지라도 그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북돋우는 수준에서 그들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그동안 시종했기 때문에, 그냥 백성인 우리들은 양비론을 말하면서 애통해 한다.

“통일이여 오라 통일이여 오라” 하고 백날 외쳐 봐도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투정하는 어린애와 진배없음을 실감하고 또 실감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소원으로 백발이 성성하도록 세월을 탕진해 버린 소위 통일꾼들은 통일이 민족대업인가 미망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기성의 권력을 더구나 역사적 내력을 가진 권력을 통해서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미망이고 자기기만이다. 통일은 보통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해서 인민의지의 유로와 결집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 이제 통일권력을 인민에게 돌려달라”고 남북의 정권에게 요구할 때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동서독은 분단되었어도 동서독의 인간적 결속은 계속되었고 그것은 기독교단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동서독은 서로 현저하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서독은 과거남한이 북한을 존재하고 있음에도 부정했듯이, 할슈타인독트린으로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동독정권은 국가적 의제는 계급문제로, 통일문제를 계급투쟁문제로 전환시켜 노동자계층과 독점자본주의의 대립으로 몰아서 사회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를 바꾸고 압축하였다.

독일 인민의 현실과 역사는 해소되고 계급투쟁의 교조만 빛나고 있었다. 이러한 권력들의 행보와는 상관없이 양쪽국민들의 공동체의식은 그 유대를 이어 나갔다. 동독 쪽에 기독교신자가 많았고 그 영향력 또한 컸다.

교회는 동독에서 유일하게 자립적이면서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독일 기독교 총연합회와 지역연합회가 있었는데, 특히 총연합회는 이산과 삶의 고통을 서로 나누고 서로 돕고 격려하기 위한 조직으로 그 몫을 수행하였다. 총연합회가 거행하는 행사들은 동서독을 아울러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1964년부터 70년까지 총연합회 명예의장을 지내고 훗날의 베르린 시장과 연방대통령을 역임한 바이츠제거는 1949년 첫 기독교 총연합회 행사에서 통일목표를 세우는 것과 사람들 간의 결속을 굳게 하는 것이 주요했다고 회고한다.

1950년 에센에서 열린 행사에는 신도 15만 명이 참가했고, 그 행사의 한 분과에서는 동독의 인권과 연대감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행사는 각 정권의 발전방향과는 무관하게 사회문제들에 대해 하나로 통일되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같은 해에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공동체의식의 파괴는 물론 반동과 부역의 이름으로 서로 증오를 극대화 하였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