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친일 아리랑(6)
얼씨구! 친일 아리랑(6)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4.08.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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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는 미래를 규정한다는 평범한 논리는 역사의 계기성을 간명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역사의 우연성과 과학성을 들어 역사의 계기성을 대체적으로 설명하는 논리의 미숙함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항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를 조감할 때, 끈질기게 이어지는 삶과 역사의 무거운 부담을 떨칠 수가 없다.
광주의 주간신문 <시민의 소리>는 ‘문화수도광주, 예술은 죽었다’는 제하에서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 불허를 비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4대강 실패를 풍자하는 그림의 내용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전시를 불허하는 것은 광주의 정체성을 들먹이기 이전에 공화국 대한민국의 표현 자유의 수준이 심히 우려됨을 걱정되게 한다.

세계사적 역사발전의 전개를 자부하게 하는 공화국 정체성은 심리적 자족의 상상으로만 멀리 물러나고, 왕조의 봉건성, 일제의 식민성, 분단의 억압성들이 착종하여 그려지는 역사적 풍경화가 오늘에 이르는 한국의 진풍경인 것만 같아, 내일을 상상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비롯된 공화국 출발이 거의 백년에 이르는데도 공화국의 실질이 토착화되지 못하고 근현대사의 악성 상채기들만 그 한국적 역사성을 돌출하고 있다. 통 큰 대북 양보가 통 큰 북핵 철회로 이어진다면 동북아의 긴장의 파고도 해소되는 인류사적 쾌거가 될 것임을 교황의 축복에 뜻 맞추어 빌어보지만, 어린왕자의 철없는 꿈일 것만 같아 속상한다.

현재 남북한의 주류 세력들은 적대적 공존을 구가하면서 오늘에 이르는 주도권의 바톤 터치를 내일에 이어갈 궁리에 골몰할 것 아닌가? 일반 의지에 준하는 모범 답안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의 벽을 넘는 가운데 주도권 경쟁 속에 제반 역량의 영향에 연동하여 주류가 결정되고, 그 과실들이 분배되기에 이른다.
망국의 폐허 속에 조선의 정치 사회 경제의 주류 세력은 어느 세력이었을까? 그 세력 중 망국보다는 간난 속에서도 자신들의 생존 발전을 도모한 세력이 역시 조선인 가운데에서 주류 세력이 되어 친일로 그 역량을 이어갔고, 그 세력이 친미세력으로 독재세력으로 군부세력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 너무 단순하고 가혹한 평가가 될까?

잘못된 진단이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리기에는 우리들이 격은 역사적 조건들이 너무 착종 복잡한 만치 그에 연동하는 한국인들의 대응도 착종 복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처럼 이상은 구원한데 현실의 삶에 대한 규정력은 절대적이었고, 입신양명은 조선 엘리트들의 소망이고 체질이었다.
아리랑고개 안에서 갖가지 연분으로 결합하는 ‘우리가 남이가’하는 패거리 작당은 구성원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달구어 주는 불안 해소의 청심환이었던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되지 않아야 원망과 투정을 받지 않는 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우리보다는 이기는 우리, 지배하는 우리가 되는 것이 살맛나는 우리임은 누적된 양반의식으로 불문가지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양화와 양질의 부분이 전무할 수는 없었다. 망국의 충격 속에 애국자들의 등장은 비 온 뒤의 대밭의 풍경과 유사하다. 한말의 우국지사들은 단군교를 세우고 신민회를 만들고 숱한 구국모임을 갖고서 독립의 투쟁 교두보를 모색하였다.
신민회의 확대판 회의인 청도회의는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지만 급진론과 점진론의 노선만을 확인하여 큰 전략과 세밀한 전술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우리들의 역사적 조건이 그러하였다면 무책임한 비관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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