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친일 아리랑(4)
얼씨구! 친일 아리랑(4)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4.07.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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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자유 평등 평화 행복 희망의 나라로’는 어린 학창 시절 우리들이 즐겨 불렀던 조국 찬가의 한 대목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수호를 다짐했던 기억들이 이 땅의 연면한 학생 운동사를 기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상과 나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없을 때, 존재의 계속성을 장담할 수 없을 때 회색 빛 절망은 희망을 밀쳐내고 우리의 의식과 감성을 엄습한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하는 역설적 희망가를 부르면서 청춘을 부랑했던 선배들의 탄식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고 놓아서는 안되는 식민지 지성의 반어적 절규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는 반어적 절규마저 놓아버린 채 현실에 부유하는 그냥 생명체들이 되고만 것만 같아 슬프다.
100일도 넘어 표류하는 세월호 사건 처리에다 오리무중에 휩싸인 채 온 국민을 추리극 탐정으로 만드는 유병언 파동은 어떤 시대에 가능한 촌극들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으니 그 결말을 어떻게 매김질할 것인가가 난감하기만 하다.
‘과거는 현재를 규정짓고 현재는 미래를 규정짓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화두를 머리에 떠올린다. 우리의 과거가 어쨌기에 현실이 요 모양 요 꼴인가 하고 자탄하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운 해방공간’을 상기한다.
해방 조국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장악하지 못한 채 열강에 의해 견인되고 성스러우면서도 지난한 건국사업이 권력투쟁화하면서 첫 단추는 비끌리기 시작했다. 친일권력들의 생존투쟁이 미국과 이승만의 후원을 얻으면서 해방의 명분은 희석되고 건국대업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추모하는 백범 김구 선생의 글 속에서 해방정국의 왜곡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백범에 의하면 해방이 ‘통일과 자유와 행복이 아니라 분열과 구속과 불행이 되어’ 있었다. 군정당국의 가장 큰 결함은 ‘과거에 왜적에게 가장 충량하던 주구배 부호배 등 특수계급의 등용’으로 ‘그들은 최근 수년간에 벌써 군정에 단단히 뿌리 박혀 가장 견고한 세력을 형성하였고 이제는 군정당국이 그들에게 단호한 처단을 하고저 하면 치안까지 고려하게’ 되었다.
백범의 우국충정과는 정반대로 현실 역량의 움직임에 따라 단독정부 수립은 분단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국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고 그들이 바라는 용이한 한국통치는 식민지 관료를 필요로 하였고 조선인 식민관료들은 일제에 의해서 배양된 사실상의 주류세력이었다.
이 주류세력의 위기는 미국과 이승만의 후원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국내 기반이 약한 이승만은 권력투쟁의 정치자본을 친일세력에서 찾았던 것이다. 미국은 새로 소련과 국제 주도권을 다투는 당시의 G2로 한국의 정치현실은 냉전 전략과 연동하기 마련이었다.
미소공위에 참여한 인도 자유중국 필리핀도 미국의 냉전 전략을 따르게 되고 심지어 필리핀 대표는 한국에 미국의 육해군 군사기지를 건설할 것을 제의하고 남한정부 수립 후에도 미국이 보호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었다. 당시 현실은 과거와 달라 ‘지금에는 조국의 위기를 담소와 환희와 추종으로 맞는 자가 적지 않음’을 백범은 통탄하고 있었다.
국가의 명맥을 장악한 자들의 부패와 무능이 충천하고 민주공화국의 실질이 파탄 나고 있는 현실에서도 ‘조국의 위기를 담소와 환희와 추종으로 맞는 적지 않은 이웃이’ 있음을 백범과 함께 슬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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