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상실의 인간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감성상실의 인간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07.28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준환 기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유독 이 사건이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 판 것은 비단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차디찬 바다에 수장당했다는 것은 절대 일어나선 안됐을 일이지만, 정부와 해경,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 대책과 원인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여러 관료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도 국민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큰 원인이었다.

팽목항에 내려와 유족을 부둥켜안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인지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책임’이라는 말을 꺼내놨는데 그 ‘책임’은 사라진 지 오래 되어버린 느낌이다.

최근 유병언 시신이 행려자 시신으로 접수되어 40여일이 지난 뒤에 유병언 시신이라고 말한 정부 발표를 국민들은 거의 믿지 않고 있다. DNA 검사까지 마쳐 ‘확실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나 이를 정말로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유병언의 돈을 받은 수사 관계자나 의원, 정부 관계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국가존립 차원에서 이를 묻어두기 위해 그를 살해했을 것이라는 ‘미드’ 수사시리즈 같은 이야기를 한다.

유병언이 수사망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고위 수사관계자가 그에게 정보를 줬을 것이라는 루머도 들렸다. 그러다보니 사건이 커지면서 그를 제거해야 자신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를 유인하여 살해한 뒤 시신을 없애려다 별장 인근의 매실밭에 가져다 놨을 것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 정도다.

하기야 지난 6월 말 유병언의 벽장 탈출 사실과 돈을 압수하고도 최근에 이 사실을 발표한 것은 세월호 100일에 대한 언론플레이용 ‘물타기’라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이니 누가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순천 별장 급습 때 벽장에 숨은 그를 찾지 못한 채 쉽게 철수해 유병언이 다시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준 것을 보면 정말 드라마 같은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정부를 불신하는 사회가 된 것은 대통령이 책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대통령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세월호 사건의 충격이 워낙 크다보니, 이제 웬만한 사고에는 적응이 돼버린 것 같다.
열차충돌사고, 헬기 추락사고 등 큰 사건·사고들이 터졌지만, 세월호 사건 때처럼 눈물이 주륵주륵 흐를 정도로 가슴이 아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정상적인 것일까.

너무 큰 충격으로 인해 그것보다 작은 사건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성상실의 인간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이럴때면 TV와 인터넷, SNS 등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가슴아픈 일들을 너무나도 빨리 접하며 살고 있다. 평소 연락이 뜸하던 친구의 부고를 SNS를 통해 알고, 한 배우가 위암으로 고통받다 별세했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한다.

인간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발전한 문명이 혹 인간의 행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다.
요새 나오는 차량에는 정속주행시스템이 있다. 자신이 속도를 맞춰 설정해 놓으면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그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기자의 차량에도 이 기능이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무척 편하다. 국도나 고속도로의 최고 시속에 맞춰놓고 핸들만 움직이면 되니 발이 덜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몸이 편하니 졸음이 오는 경우가 있다. 잠깐의 편의 때문에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은 가슴 아픈 일들을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접하다 보면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이 이런 사고에 대해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사고의 아픔을 나눌지언정 상처에 매몰되지는 말 것이며, 잊지는 않되 그냥 묻어서는 안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