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비아데스를 위로하며
알키비아데스를 위로하며
  • 김진영 전남대 철학과 10학번
  • 승인 2014.07.23 18: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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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영 전남대 철학과

사람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접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제 앞에서 적어도 한 마디씩 말할 수 있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경험이 무색할 만큼, 쉬이 대답할 수 없다.
이는 첫째는 우리의 삶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듯이, 사랑에 대한 경험도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며, 둘째는 사랑이 구체적인 하나의 상을 가지고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리려면, 각자의 개별적인 경험 속에서 총체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연인과 나누거나 나누었던, 혹은 나누고 싶었던 로맨틱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름들, 즉 내리사랑, 치사랑, 서로사랑, 짝사랑 등을 떠올려보면 이것이 좀 더 포괄적인 범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때면, 플라톤의 아름다운 고전인 『심포시온(향연, Syposion)』을 떠올리곤 한다. 고대 그리스라는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고서라도, 사랑에 대한 진지하고도 심도 있는 고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주옥같은 명장면이 많기로 소문난 책이지만, 내가 특히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말미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의 웅변이다. 그의 웅변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찬양의 탈을 쓰고는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훌륭하고 멋진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아름답고 젊은 나를 왜 받아주지 않는가?”라는 술주정이자 하소연이다. 온갖 유혹도 모자라 심지어 자는 곳을 같이 해 육탄 공세를 펼쳐보아도 소크라테스는 자기에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짝사랑이다.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 구도는 다양한 논쟁에서 응용되곤 한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이, 사랑이라는 주제에서도 꼭 정신적인 것만이 우위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플라톤 탓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포시온』에서 그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를 빌려 정신적인 사랑에 중요성을 좀 더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지혜를 사랑하는 것처럼 비육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플라토닉 러브’라는 용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나는 알키비아데스의 웅변을 지켜보면서 동정심인지 동질감인지 모를 어떤 감정에 휩싸였다.
알키비아데스는 분명 연애의 감정으로 사랑을 갈구한 것인데, 소크라테스는 엉뚱하게 규범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사랑만을 말하는 모습이 얄미웠다.
왜 ‘육체적’ 사랑은 어둠의 것으로 치부되고, 천대받곤 하는가? 이는 우선 사람들이 은연 중에 가지고 있는 ‘영원성’에 대한 갈망 때문이자, 다음으로 육체적인 것은 순간적·소모적이라는 통념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세계가 이분법적 구도만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어떤 하나의 가치만을 우위에서 말하는 것이 때론 위험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사랑은 너무나 복합적인 감정이기에, 이성의 논리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서로의 체온을 충분히 느끼며 지혜로운 행동과 대화로 풀어나가는, 그런 사랑을 할 줄 알아야겠다.
추신: 덧붙여, 소크라테스는 차라리 “미안하지만, 넌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말했어야 했던 거라고, 희망고문으로 고통 받았던 알키비아데스를 힘없이 위로해본다.

*군 지휘관이었던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만큼이나 그 당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인데,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아름다운 용모 때문이었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톱스타 혹은 아이돌 쯤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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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2018-05-09 20:24:00
<알키비아데스>(1)에서 보면 알키비아데스를 먼저 사랑하기 시작한 건 소크라테스입니다. 단지 육체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향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거리를 둡니다.) 오래도록 멀리서 지켜봐왔던 건 소크라테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