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명문가]군대 가고 싶은 분위기 조성해야
[병역명문가]군대 가고 싶은 분위기 조성해야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07.10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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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공직생활, 장성 토박이 고관주 씨
병역명문가 제도 널리 알려야

장성댐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장성군 북일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이곳에 근무하는 고관주 씨는 장성에서 나고 자랐으며 32년간 공무원직을 수행한 장성 토박이다. 이 정도면 장성에 관한 것은 거의 다 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이렇듯 작은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평범한 공무원이지만 주변에선 그의 가문에 대해 혀를 내두른다. 그의 가문은 2014년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3대 남자 모두가 군대에 현역으로 갈 수 있냐” 또는 “아픈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방위(현재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부름)도 있을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동생들은 방위로 빠질 수 있었지만 현역으로 지원해 군 복무를 마쳤다.

그는 병역명문가에 대해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병역에 관련된 민원 업무를 보던 중 인터넷 상에서 병역명문가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관주씨는 지난 해인 2013년 작은 조카가 마지막으로 전역함에 따라 올해 초 병역명문가로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6·25동란을 겪은 그의 할머니는 늘 ‘군대에 다녀와야 큰 사람이 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1962년 군에 입대했다.

관주씨가 군 복무를 하고 있던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10.26사태)이 일어났고, 바로 직후인 1980년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제대하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무사히 전역해 두 아들까지 제대시켰다. 그의 작은 아들인 고현민 씨는 “군대에 가기 전에 처음엔 겁도 나면서 호기심도 있었다”며 “군대에서 경험한 것이 사회생활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사람과의 친화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또한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병역의무는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지만, 병역명문가로 선정되면서 우리 가문이 더 특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며 “국민으로서 사명감도 느꼈다”고 전했다.

관주씨는 “우리나라가 현재 남북관계도 잘 풀리지 않고, 경제와 정치도 주춤하면서 어려운 상황이다”며 “나라가 안정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국방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군대에 가서 짧은 기간만큼이라도 책임지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며 “군대에 다녀온 사람에게는 크지는 않더라도 작은 대우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라든지 병영부조리로 인한 자살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 그러한 사고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힘든 순간을 견디고 이겨내면 값진 추억과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답했다.
병역명문가 제도에 대해선 “좋은 제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런 제도가 있구나’라는 걸 알려야 한다”며 “정부차원에서 군대에 가고 싶은 분위기를 조성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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