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친일 아리랑(1)
얼씨구! 친일 아리랑(1)
  • 이홍길
  • 승인 2014.07.10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홍길

요즘의 한국을 살피노라면, 그것이 미시적 관찰이던 거시적 관찰이던 총체적 난국이다. 세월호 사건에 연관된 파장은 민생과 국가를 보위해야할 국가기관과 청와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회의하게 되고 전교조를 법 밖으로 몰아내는 사법부의 민낯을 만나는 참담함은 가인 김병로를 그리게 한다.
중국의 시진핑과 정상회담으로 한중관계를 강화하고 남북의 경색 국면을 녹일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상황에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강행함으로써 중국을 겨냥한 미일동맹을 군사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예상되는 현실은 한국과 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성숙한 단계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는 약속이 구두선이 아닌 사실상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한반도 전작권은 미국이 갖고 있고 미일동맹의 규제를 떠날 수 없는 미국이 한반도 전작권을 요구할 때, 우리가 그 요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헤아려 볼 일이다. 전작권을 미국에 위탁하려는 욕구와 여론이 국가안보의 요체로 강변되어도, 이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여론은 잠잠하기만 한 현실이다.
청문회 후보 검증도 당리당략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전임총리가 현임총리가 되는 마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알렉산더 대왕은 한 번의 칼질로 해결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난국을 헤쳐 내기 위해서는 마땅한 칼질도 칼질할 사람들도 드러나지 않는다.
무가나하! 푸념만 할 수 밖에 없을 것인가? 푸념만 쌓다보면 기특한 묘수가 나오던지 백마 탄 선인이 나올지도 모를 꿈자리가 뒤숭숭하기만 하다.

역사는 영광이 되기도 하고 혹부리영감의 혹과 같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현실은 과거의 집적으로 과거에 비축한 역량은 현실의 생존자원이 되는데, 현실은 개인경쟁 집단경쟁을 통하여 그 사회적 역할이 배분된다.
독립을 위한 연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으로 해방을 맞은 우리는 자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유력한 전쟁 당사국들의 후원으로 분단국가를 세웠다. 그래서 분단의 과정과 분단의 현실에서 과거의 역량은 현실역량으로 그 연속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점령국 미국과 그들에 의해 선택된 이승만은 일제하의 사실상의 엘리트집단인 친일세력을 비호하게 되었고 일제의 현실은 상당한 수준의 변용을 면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만이 아니라 그 위용을 다시 뽐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의회에서 가결된 반민특위가 대통령 이승만에 의해서 결단나고 만 것이 친일 청산의 종국이었다. 반공 민주주의가 신생 국가의 국가적 목표가 되면서 세계사적 냉전질서 속에서 미국의 위성국가로 안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친일 기득권은 미국의 비호 하에 친미 기득권으로 치장하면서 정치적 경쟁으로 두 집단으로 분화되기에 이르렀다.
독재와 반독재의 경쟁은 제3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4.19혁명으로 그 자생력을 회복하는가 싶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과거로 복귀하고 말았다. 정치 이외의 삶의 활력이 군부의 기획과 동원 하에 새로운 기틀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부는 일제 군부의 연장선상에 있음으로 해서, 또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일본 자본과 연대하고 친일 기득권 세력을 비호함으로써, 왜곡된 조국근대화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성인들이 부끄러움을 알도록 교도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 속에 긍정적인 것을 찾게 되어, 설사 반성하더라도 변용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게 사람인가 싶다. 친일세력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