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새롭고 눈물도 날 것 같았다"
"반갑고 새롭고 눈물도 날 것 같았다"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4.06.26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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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동포, 러 이주 150년기념 한국방문
마중물봉사단, 동포들에게 식사 봉사

22일 오후 광주효덕초등학교로 큼지막한 대형버스 3대가 들어왔다. 버스에서는 백발성성한 노인부터 4살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내렸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외국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 후손을 포함한 강제이주 고려인 동포 1~5세대로서, 현재 러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인 러시아이주 150주년을 맞아 고려인돕기운동본부와 고려인문화농업교류협력회가 공동주최하여 고려인동포 모국초청 방문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동포들이 효덕초등학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졌다. 이들의 조끼 뒷부분에는 ‘마중물 봉사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봉사단원들은 버스에서 식당으로 안내하는 안내조와 식당에서 배식을 하는 배식조로 나뉘어 고려인 동포들을 맞았다. 안내 총괄을 맡아 식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상욱 국장은 들어오는 고려인 동포 한 명 한 명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려인 동포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강계수(러시아 이름:갈랴)씨
식당으로 들어서자 배식을 맡은 봉사단원들이 동포들을 안내했다. 동포들은 낯선 모국의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앉아 있던 동포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명찰에는 강계수(여.52)라고 적혀 있었다. 강 씨의 러시아 이름은 갈랴이고, 고려인 동포 2세다. 강 씨는 한국말을 잘 못해서 인터뷰를 엉망으로 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다. 실제로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식사 맛있게 했냐는 물음에 “한국음식 괜찮아요. 다 맛있어요”라며 “러시아에서 한국음식 자주 해서 먹어요”라고 답했다. 한국음식을 자주 해 먹는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라 한국엔 단지 몇 번 와본 것을 생각하면 의외인 대답이었다.
강 씨는 “밥, 김치, 고사리, 콩나물 된장국, 김치찌개, 미역국 등 한국음식 많이 할 줄 알아요”라며 “어머니께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한국말도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말을 잘 못하긴 하지만 거의 다 알아들을 수는 있다고 한다. 한국의 뉴스와 영화도 다 챙겨본다는 강 씨는 올해로 52살이 됐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살고 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한국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으로 들어와 현재 안산에 살고 있고, 아버지는 62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것은 한국의 예절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머니는 어르신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한국에 들어올 때 반갑고 새롭새롭했다”며 “눈물도 날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녀의 모국이자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길 바래본다.

고려인 동포들이 식사를 마치고 다음 행사가 계획돼 있는 남구문예회관으로 이동했다. 마중물 봉사대의 안내조가 동포들이 모두 버스에 타는 것을 확인하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봉사단원들은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10대 청소년, 혹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어린 친구들도 섞여 있었다.

▲김한국(25)군
▲김다연(19)양
▲김우담(18)군

 

 

 

 

 

 

▲마중물 봉사단의 이채혁 군이 예쁘장한 외모의 고려인 동포 소녀와 사진을 함께 찍으며 수줍어하자 주위에 있던 봉사단원들이 '얼레리 꼴레리'하며 이 군을 놀렸다.
김한국(25)군은 전북대에 다니고 있지만, 광주 집에 올 때마다 봉사를 한다. 김 군은 “처음엔 마중물 봉사단원인 어머니를 따라 시작했다”며 “광주에 쉬러 오는데 누워서 쉬나 봉사하면서 쉬나 똑같은 것 같고, 봉사를 하다 보니 유익한 시간을 보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르신들에게 자장면 봉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나눠드리기만 한건데 어르신들이 자꾸 감사하다 감사하다 말씀하셔서 보람찼어요”라고 회상했다.

김우담(18)군은 올해 1월부터 가족봉사대로 엄마와 함께 참여하게 됐다. 김 군은 “놀고 싶지만, 참았다가 봉사 끝나고 놀아요”라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에 가도 놀 시간을 조금 아껴서 봉사할거에요”라고 말했다.

김다연(19)양은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고와보였다. 고등학교 3학년인데 공부해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상업고에 다니고 있는데, 면접을 봐서 여유가 있다”고 했다. 김 양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봉사를 해왔다.
그러다가 마중물 봉사단 이범기 회장의 권유로 지난주부터 마중물 봉사단에 합류했다. 일종의 ‘스카우트’된 셈이다.
김 양은 “뜻이 맞고 보다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중물 봉사대로 오게 됐다”며 “(이범기 회장이)다문화 가족에게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양은 다문화 가정으로서, 어머니가 중국인이다.
그녀는 “면접을 보고 취업한 후에도 주말에 시간을 내서 봉사를 계속 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채혁(19)군은 이범기 회장의 아들로, 가족봉사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아빠를 따라 가끔씩 봉사에 참여했다. 이 군은 “맨 처음엔 나가기 싫고, 귀찮고, 어쩔 수 없이 나갔는데 다니다보니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보람차고 즐겁다”며 “지금은 고3이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봉사를 많이 못하는데, 대학교에 가면 아버지를 따라서 자주 봉사하러 갈 것이다”고 다짐했다.

김동한(14)군은 마중물 봉사대의 막둥이다. 조립품 등 손으로 뭘 만드는 걸 좋아하며 외교관이 꿈이라는 이 어린 친구는 작년 11월부터 마중물 봉사단원이 됐다.
어린 나이에 매주 봉사에 참여하는 기특한 친구지만 사실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이’였다. 김 군은 “봉사하는 게 좋지만, 봉사가 없는 줄 알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오라할 때는 짜증난다”고 털어놨다. 실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투정이다.
김 군은 봉사하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 “전에 식사봉사할 때 할아버지들이 웃으면서 칭찬해 주실 때요”라고 대답했다.

어린 친구들의 작은 손길 하나 하나가 모여 세상을 밝게 해주길 기대해본다.

이윽고 고려인 동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남구문예회관을 향해 출발했다.
남구문예회관에서는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아리랑가무단과 가예무용예술단 등의 공연이 진행됐으며, 동포 5세 어린이들이 ‘반갑습니다’ 노래를 서툰 한국말로 “방가쓴니다”라고 불러 행사에 참여한 많은 이들에게 미소를 선사했다.

고려인 본부는 이번 행사가 한인 러시아대륙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중 대표적 이슈가 되는 사업으로 현지 동포들이나 러시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우호적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홍보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러시아 국적인 동포나 러시아인들에게 뿐 아니라 러시아 입국 시 무비자가 가능함으로 인해 증대되는 러시아 방문이나 관광특수에 따른 대한민국국민과 현지진출기업 등에게 우호적 이미지 각인의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매일방송과 나눔문학이 주관했으며, 광주광역시와 남구, 마중물 봉사대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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