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내 비늘에 너무 거슬렸다.
@[역린] 내 비늘에 너무 거슬렸다.
  • 김영주
  • 승인 2014.05.16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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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분노와 슬픔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영화이야기를 하는 게 그리 내키지 않는다. 영화라는 장르가 단순한 오락만이 아니라 예술적 고뇌이기도 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영화를 본다는 게 대체로는 말초적 감각을 즐기는 오락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그러하다. 평단의 점수가 상당히 나쁘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무겁게 가려고 일부러 [역린]을 보았다. 대중재미는 조금 있지만, 많이 실망했다.
 
 

[스캔들] [음란서생] [방자전] [후궁]은 아예 픽션이라고 내놓고 만든 영화니까 팩트와 픽션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광해] [관상] [역린]은 마치 상당한 팩트를 갖고 있다는 듯이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시작하는 즈음에 팩트와 픽션이 섞인 비율을 대충이라도 느낄 수 있는 멘트가 필요하다. 더구나 이 영화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팩트말고 나머지는 [스캔들] [음란서생] [방자전] [후궁]처럼 픽션을 자처한 영화나 다를 바가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학술논문도 아닌 예술작품에 이런 시비를 건다는 게 마땅치 않기는 하지만, 이런 정도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대어 만들기보다는 아예 색다른 픽션으로 만들어야 했다. 더구나 시나리오의 짜임새나 리얼러티가 너무 헐겁고 부족하다. 아예 픽션으로 만들어서, [스캔들]처럼 서양영화[위험한 관계]를 바탕으로 멋지게 변신을 한다든지, [방자전]처럼 [춘향전]을 비틀어서 맵싸하게 풍자한다든지, 차라리 [후궁]처럼 중국영화[야연]의 짝퉁이라는 걸 솔직하게 드러내 주는 게, 훨씬 나았겠다.

팩트와 픽션의 뒤섞임을 잘 어우러지게 요리한다는 게 참 어렵다. 어중간하게 요리했다가는, 그 팩트가 오히려 모든 걸 망치는 멍에가 될 수 있다. 서양영화 특히 유럽영화가 팩트와 픽션의 뒤섞임이 참 좋다. 역사에 문제의식은 현실에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현실에 문제의식이 잘 길러져야 역사에 문제의식도 각도를 잘 잡는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현실에 문제의식은 도식적으로 경직되어 있어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역사극에 역사적 관점이나 시나리오가 그렇게 말초적인 모양이다. 역사의식보다는 액션 · 무대 · 의상 · 미술 · 소품으로 눈요기 또는 황당한 막장이나 강렬한 대사로 충격을 주는 잔재주를 부린다. 역사의식만 부족한 게 아니라 역사적 고증이나 스토리의 완결도 부족하여, 겉모습은 역사극이지만 속모습은 현대극이다. 오랜 기초작업이 없이 짧은 제작기간에 관객들의 눈요기에만 신경 쓰면서 스텝들의 개인기에 기대어 후다닥 만들어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십 몇 년 전의 [단적비연수]와 정우성의 [무사] 그리고 송혜교의 [황진이]가 떠올랐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78861&videoId=44018&t__nil_VideoList=thumbnail

이 영화는 온통 눈요기뿐이다. 그 포인트는 유명배우와 액션장면이다. 배우들은 세탁간의 무수리 말고는 모두가 쟁쟁하다. 현빈, 그를 작품으론 처음 만나지만 얄밉도록 광고에 많이 등장해서 유명하리라고 짐작한다. 여자들에겐 인기가 자자한 듯한데, 난 괜스레 얌체 같은 깔끔함과 이기적으로 야무진 눈매가 부담스럽다. 첫 장면부터 등근육 눈요기로 유혹하는 걸 보니, 감독이 현빈을 미끼로 흥행해 보겠다는 욕심이 노골적이다. 정재영, 역시 정재영이다. 어떤 캐릭터에나 그는 온 몸을 던진다.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대단한 연기력이다.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남자배우 중 하나다. 그러나 가슴 뭉클한 감동장면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조재현, 항상 눈빛이 강렬하다. [정도전]에서도 잘 한다. 그러나 그의 연기가 압도적이지는 않고, 그대로 그렇게 잘 한다. 그 정도면 좋은 배우인데 빼어나 보이지 않는 건, 우리나라에 워낙 좋은 배우가 많아서 일까? 조정석,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의 쌩구라로 끝내주더니, [강철대오]에서 운동권대장 모습도 좋았고 노래솜씨와 음색이 귀에 감겨들어왔는데, 이 영화에선 눈에다 힘만 주면서 겉돌았다. 액션에서 고생이 많았지만, 상투적이었다. 박성웅, 눈에 드는 조연이지만 아직 떠오르진 못했다. 한 번 월척을 낚아내길 바란다. 한지민, [각시투구꽃]에서처럼 착한 얼굴에 독기를 뿜어내느라 고생 많았다. 그러나 감독이 요구한 캐릭터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라 괜히 야한 모습까지 감당해야 했다. 김성령, 요즘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던데, 예쁘고 능력 있지만 그 정도 각광을 받으면 작품을 가려서 출연할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 누구하나 빼고 말하기 딱할 정도로 유명하고 자자한 주연과 조연을 보여준다. 물론 모두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바탕이 각도를 잘못 잡고 스토리 흐름이 억지스럽고 오바해서, 모두가 어깨와 눈썹에 줄곧 힘만 주는 꼴이 되었다.

그 만큼 유명자자한 주연배우와 조연배우를 끌어들이느라 돈을 많이 들이기도 했겠지만, 소품과 의상에 상당한 정성이 엿보여서 영화의 껍데기가 멋져 보일 정도로 돈을 많이 들였다. 그것마저 소홀했다면, 완전히 죽 쑬 뻔 했다. 실망이 커서 더 심한 비판글을 썼지만, 너무 야박해 보여서 지웠다. * 대중재미 B0(내 재미 C0), * 영화기술 B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보수파 F.

* 뱀발 : [중용]23장을 중요한 포인트로 삼았는데, 그게 너무 억지스럽고 어색해서 [중용]을 모독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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