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미래를 여는 손님집[5]
광주의 미래를 여는 손님집[5]
  • 권준환 문상기 기자
  • 승인 2014.04.30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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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전성기를 꿈꾼다. 목포1935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란 다양한 문화권의 여행자들이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 한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숙박시설의 한 유형이다. 한국에서는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종에 해당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경우 민박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광주의 경우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의 활성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광주는 2015년 아시아문화전당 개관을 통해 국제적인 문화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사실 관광객들을 맞이할 숙박시설이 변변치 못한 현실이다. 이에 그저 하룻밤 잠을 자고, 떠나면 잊혀지는 숙박시설이란 개념을 떠나 문화를 담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확대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회. 프롤로그 - 낭만과 경험의 문화적 가치
2회. 광주의 ‘손님집’ 이대로 괜찮나
3회. 서울 북촌한옥마을, 전통한옥의 정취에 빠져들다
4회. 남해 독일마을, 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소통
5회. 목포, 1935년도의 전성기를 꿈꾸다
6회. 광주만의 문화를 담는 손님집
7회. 손님들이 광주를 다시 찾길 바라며
8회. 에필로그 - 광주의 미래를 여는 손님집


   
▲목포역 앞 한때 젊음의 거리였던 로데오 거리는 이제 한산하다.
목포역 앞에는 젊은이들의 거리가 있다. 청소년 문화존 로데오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거리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걸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이 사실이다.
북적북적 수많은 젊은이들이 걸어 다니고 왁자지껄 시끄럽던 이 거리는 이제 조용하다. 이런 가운데 목포의 전성기를 꿈꾸는 곳이 있다. 바로 목포 1935게스트하우스다.
목포역에서 도보로 약 15분쯤 걸리는 길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간판이 화려하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목포의 전성기. 1935년.

목포1935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면 약간 비탈진 오르막길이 있다. 왼편엔 ‘춘화당 한약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오른편엔 문화공간 ‘봄’이라는 카페가 있다.
그리고 정면엔 가꿔진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한옥이 보인다.

▲목포1935의 본채인 춘화당. 벽면은 벽지 대신 칠을 했다. 깔끔한 인상을 준다.
목포 1935게스트하우스는 마침 대청소 중이었다. 모든 스텝이 쓸고 닦고 치우고 있었다. 청소를 하느라 많이 신경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새단장을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목포 1935게스트하우스의 안치윤 대표가 출장 중인 관계로 오석진 매니저를 만났다. 오 매니저는 실제로 이곳에 지내면서 게스트하우스의 관리 및 감독을 맡고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인 나무기둥들 사이사이 벽면은 벽지 대신 칠을 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하게 잘 어울린다. 한옥의 고상함에 모던함을 더했다고나 할까.
오 매니저는 “벽지보다 칠이 한옥을 더 온전히 보전할 수 있어요. 가격도 칠이 훨씬 더 나간답니다”라며 웃었다.

한옥은 정감이 있다. 지금은 할머니 집도 다 근현대식 건물인 경우가 많지만, 예전 할머니 집은 오래된 한옥이었다. 정감이 있다는 것은 할머니 집에서 느꼈던 추억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한옥은 깔끔한 멋스러움이 있다. 네모반듯한 요새 건물들에 비해 수려하게 굽어지는 한옥의 곡선은 특이하면서도 멋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중에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필자의 말에 오 매니저는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듭니다”라고 농을 건넸다.

‘목포1935’라는 이름을 붙인 연유는 무엇일까?
먼저 목포의 과거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목포는 현재 근대역사관으로 바뀐 일본영사관을 중심으로 1935년에 그 일대 도심부 토지가 일괄적으로 구획정리 됐다.
또한 ‘목포는 항구다’라는 영화도 있듯이 목포는 항구가 맞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항됐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러한 인식 속에 목포에 있는 근대 건축물을 일제 청산 차원에서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목포는 스스로 외국문물을 받아들였으며 목포에서 움직이던 경제규모는 무척 컸다. 전국 도시들 중 손가락에 꼽히는 큰 도시였던 것이다.
이에 윤 대표는 사람들에게 목포의 근대 문화재와 문화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게 됐다.

역사와 문화의 힘으로 活人을..

본래 이곳은 故강대제 선생이 운영하던 춘화당 한약방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멋진 한옥이 있다는 것에 놀란 안치윤 대표는 강대제 선생의 부인에게 잘 보존할 것을 약속하고 이곳을 매입하게 됐다.
구조와 내부는 그대로 두면서 깨끗하게 정리하고 약한 부분은 고쳤다.

춘화당 한약방 이전엔 제중병원과 조내과의원 등 사람의 병을 고치는 곳으로 이어져왔다. 그래서 오 매니저는 활인(活人)이 이곳의 핵심가치라 말한다.
이전까지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역사와 문화의 힘으로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윤 대표와 오 매니저의 바람이다.

▲본채인 춘화당 옆으로 별채(도미토리)가 보인다. 별채는 손님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목포1935게스트하우스는 크게 세 가지 공간으로 구성된다. 먼저 본채인 춘화당은 1929년 상량한 한옥으로 한옥체험관과 한옥스테이로 운영된다.
다음으로 별채는 1975년에 지어진 도시형한옥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 게스트하우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틀은 옛날 한옥이지만 내부는 모던하면서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
남녀 객실이 구분되어 있고, 여성숙박객이 더 많이 찾는다는 점을 고려해 일반실은 여성숙박객 위주로 운영된다.
오 매니저는 “남자는 어디서 자건 누가 신경 쓰지 않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여성이 모텔에서 나오면 이상하게 보니까, 여성숙박객을 우선으로 받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역 예술인 양성, 문화공간 봄

▲윤진철 광주시립국국단 단장의 그림 앞으로 조그마한 공연장이 있다.
마지막으로 1935게스트하우스의 꽃인 ‘봄’카페다. 봄은 평일엔 일반적인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커피를 즐길 수 있고, 예약에 한해 식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엔 문화 이벤트가 펼쳐진다. 첫째 주엔 지역밴드 공연, 둘째 주엔 클래식 공연, 셋째 주엔 미식콘서트라 해서 향토음식을 준비해 이야기하고 공연한다. 넷째 주엔 원래 소프라노 공연이 있었지만 사정에 의해 지금은 숙박하는 사람들을 위한 파티가 열린다.
공연 대부분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서, 지역 예술인 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오 매니저는 “지역예술가들과 같이 가려고 해요. 같이 놀고 즐기는 것이 너무 좋고,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목포1935게스트하우스가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변함없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가 과거가 됐을 때. 즉, 미래에 지금 현재를 곱씹으며 추억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40년 전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한 노부부의 사진처럼 10년, 20년 후에도 그 자리 그대로 전통 한옥의 정취를 담은 손님집이 존재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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