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상상과 실제 ③ 유우성 씨 사례, 전두환 시절에도 있었다
간첩, 상상과 실제 ③ 유우성 씨 사례, 전두환 시절에도 있었다
  • 프레시안=박세열, 서어리, 이재호 기자
  • 승인 2014.03.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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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살' 조총련 부장?…영사증명서 조작의 실체

간첩.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 중 하나다. 간첩이라는 말은 세 겹의 공포를 딛고 서 있다. 간첩에 의해 삶이 파괴될 수 있다는 공포, 내가 간첩이 될 수 있다는 공포, 그리고 내가 옹호하는 사람이 간첩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상존한다. 유우성 씨 사건을 계기로 <프레시안>은 한국 사회 속에 존재하는 허상이자 실제인 '간첩'의 사상누각을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간첩, 상상과 실제]
① 대한민국에서 간첩은 어떻게 조작돼 왔나
② "30년 걸려 벗은 간첩 누명, 유우성은 운 좋다"
③ '8살 꼬마'가 조총련 부장?…영사증명서 조작의 실체

"영사확인서든 영사증명서든, 독재정권 시절 재외국민 간첩 사건에 이용된 방식이 21세기에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다만, 영사확인서를 통한 증거 조작이 간첩 재판 과정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라고 해 두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전 조사관 김영진 씨는 말했다. 주로 재일교포 간첩 조작 사건 조사를 맡았던 김 씨는 간첩 조작 방식으로 영사증명서가 과거 광범위하게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들이기 때문에, 재판부는 물론 변호인도 사실 검증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남발된 영사증명서는, 그동안 숱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서울시 간첩 사건의 피의자 유우성 씨 역시 마찬가지다.

<프레시안>은 과거 이종수 씨 간첩 조작 사건 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권력기관이 조작된 영사증명서를 이용, 사실상 무죄 판결을 뒤집었던 부분에 주목했다.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을 받은 유우성 씨 항소심 재판부에도 지난해 12월, 영사확인서 한 부가 도착했다. 전에는 제시되지 않았던 증거였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그 문서가 위조라고 했다. 30여 년 전 사건과 2014년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 '닮은꼴'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서 드러난 영사증명서 3중 조작

주중국선양(심양)총영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 이인철 영사는 유우성 씨의 출입경 기록이 진짜임에 틀림없다는 내용의 '가짜 영사확인서'를 만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 영사는 가짜 영사확인서에 유정희 영사의 서명을 받았고, 영수필증까지 붙여 외교부 본부를 통해 검찰에 최종 제출했다. 검찰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이를 유우성 씨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다.

과거에는 '영사증명서'라는 게 있었다. 특별한 서식도 없고, 법률적 효력도 없는 문서다. 현재 '영사증명서'라는 것은 사라졌다고 한다. 현행 재외공관공증법에 따라 재외공관 영사가 발급해주는 문서는 주재국 정부가 발행한 문서에 대한 '영사확인'과 '영사인증'이 있다.

이 영사는 영사확인서를 만들었다. 영사확인서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충족한 영사가 주재국 정부가 발급한 문서에 대해 발급 기관 부서가 실재하는지, 발급 문서에 찍힌 도장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등을 확인해 발행한다. 즉 내용을 검증하지 않지만, 위조 여부는 검증한다는 것이다.

영사인증서는 역시 일정한 자격 요건을 충족한 영사 앞에서 해당 문서 작성자가 "본인이 문서를 작성했다"고 확인받았음을 인증한 것이다. 이 영사는 유정희 영사 앞에서 본인이 작성했음을 인증받고, 유 영사 이름으로 된 영사인증서를 받았다. 그러나 유 영사는 본인이 사인을 했느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본인이 사인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문서는 유우성 씨 간첩 증거 조작 사건과 관련해 중국이 위조로 판명한 세 가지 문서 중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정식 외교 경로를 거쳐 발급받은 것"이라고 유일하게 인정한 '허룽(화룡)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다.

▲ 검찰이 싼허 세관에서 발급했다며 법원에 제출한 '회신' 문서에 첨부된 영사확인서의 서명. 국정원 직원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인철 영사의 요청에 의해 공증담당 유정희 영사가 공증한 것으로 돼 있고, 유 영사의 성을 한자로 쓴 것으로 보이는 '유(柳)'라는 서명이 있다. ⓒ민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문서는 위조된 것이다. 먼저 문서가 제시한 확인 대상인 출입경기록 자체가 위조 문서일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출입경기록 문서가 위조가 아니라고 확인한 이 영사의 사실확인서는, 사실 확인 절차를 허위로 꾸몄다는 점에서 명백히 위조다. 이 영사는 허룽시공안국에 가서 발급 사실을 확인한 것처럼 해 문서를 만들었지만, 이 영사는 허룽시공안국에 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 영사의 태도에 비춰보면, 영사인증까지도 이 영사가 스스로 위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중 위조 문서'일 수 있다. 한마디로 "정식 외교 경로를 통한 유일한 문서"조차 위조인 셈이다.

이 영사는 영사 인증 업무를 할 자격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영사의 활동, 특히 국정원 등 정보 기관 출신 영사의 활동 방식은 다양하다. 외교부 관계자에게 이 영사의 정확한 직책과 권한 등을 문의했지만 "통상적으로 (국정원 등 포함) 각 부처 공무원들이 영사 자격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외교부가 인정하는 부분은 있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 영사는 가짜임을 알고 문서를 꾸몄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확인서 작성을 거부했지만 본부 측의 거듭된 지시로 어쩔 수 없이 가짜 확인서를 만들어 보내줬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사의 부임 시기가 간첩 사건 무죄 판결 전후라는 점 등에 있어서, 이 영사가 가짜 확인서를 만든 목적 등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다. 다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그는 공문서를 위조한 범죄 혐의자임에 분명하다.

일부 보수 언론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명명한 이 사건이, 영사확인서 조작에 의한 간첩 조작 사건일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유우성 사건과 닮은꼴, 이종수 간첩 조작 사건

재일교포 이종수 씨는 1982년 11월 6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같은 해 12월 14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39일 동안 물고문, 전기고문, 몽둥이를 무릎 사이에 끼고 밟기, 통닭구이를 동반한 전기 고문 등을 받았다. 고문에 견디지 못해 허위 자백을 함으로써 그는 조총련계 간첩으로 오인당해 기소가 된다. 당시 기소 검사는 최병국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1심 재판부에 영사증명서(1983년 1월 27일자) 한 부가 제출됐다. 이 씨에게 간첩 행위를 사주했다는 조총련계 추정 인물 조신부가 이 씨의 고모가 경영하는 오사카시 소재 주점에 일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씨와 조신부가 간혹 만났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명의의 공문에 따르면 이 영사증명서는 보안사의 의뢰로 안기부 수사관 김세중이 서울지방검찰청에 보냈다.

영사증명서는 증거로 채택됐고, 1심, 2심에서 이 씨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공소장의 내용은 엉터리였고, 증인들의 증언은 서로 맞지 않았으며, 탄핵될 수 있는 상충된 증거가 상시적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당시 보안사와 경쟁 관계에 있던 안기부가 작성한 '대일사실조사결과'에 따르면, 간첩을 사주한 조신부는 조총련계가 아니라 민단 소속이었고 조총련계와 관련된 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물론 법원에 제출된 문건들에는 이런 안기부의 수사 내용이 누락됐다. 보안사가 의도적으로 불리한 증거를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보안사령관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는 시기, 법원이 보안사 수사 간첩 사건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 등의 노력으로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게 된다. 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에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도저히 유죄 판결을 내리기 힘들 정도로 공소사실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보안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에서 갑자기 또 한 장의 영사증명서가 제출된다. 대법원 판결을 다시 뒤집기 위해 2차 영사증명서가 제출된 것이다. 이태오 영사가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2차 영사증명서는 이 씨에게 간첩 행위를 사주했다는 조신부가 "조총련계 조직에 가담해 북괴를 찬양했다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새로운 내용을 포함했다. 조신부가 조총련계 조직에 가담한 적이 없기때문에 이 영사증명서는 조작된 것이지만, 고등법원은 대법원의 결정을 다시 뒤집고 이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결국 이 씨는 이 때문에 10년 형을 받고 5년 8개월간 복역해야 했다.

무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조작된 영사확인서가 제출된 유우성 씨 사건과 비슷한 유형이다. 2010년 7월 15일 이뤄진 이 씨 재심 판결문도 "파기환송심에서 제출된 제2차 영사증명서에 갑자기 조신부의 과거 행적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이 적시된 경위가 분명치 않다"고 인정했다. 이 씨는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1심에 제출됐던 영사 증명서도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전 조사관은 "당시 상황을 외교부 측에 문의한 결과 최상열 영사가 해외에 공관에 주재했다는 기록이 자체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해외에 주재하지도 않았던 영사가 발행한 영사증명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런 방식의 영사증명서 발급은 어느 정도로 빈번하게 있었을까.

8살 어린이가 조총련 간부? 영사증명서 조작의 실체

간첩 조작 사건에서 사용된 영사증명서 내용은 조잡하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안기부 등 대공수사 기관이 수사 내용에 따라 해외에서 있었던 확인되지 않은, 혹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짜맞추기 하는 관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 전 조사관은 "당시 수사 패턴을 보면 일정한 흐름이 있다. 먼저 보안사나 안기부가 간첩으로 의심하는 사람을 잡아들인다. 이후 자신의 행적을 적게 한 후 그것을 토대로 주로 전향한 '조력자'의 증언을 날조해낸다. 공소 사실을 짜깁기한 후, 마지막으로 해외 공관 명의의 영사 증명서를 주문한다. 맞춤형 영사증명서가 도착하면 증거로 제출하고, 재판부는 이를 의심 없이 증거로 인정한다. 이런 패턴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 재일교포 간첩 조작 사건인 김양기 사건도 영사증명서가 재판에서 활용된 사례다. 문제의 영사증명서는 주일한국대사관에 파견된 안기부 직원에 의해 작성된 문서임이 훗날 드러났다. 이 영사 증명서는 내용도 엉터리였다. 1986년 4월에 작성된 영사증명서상의 내용 중 김양기 씨에게 간첩 행위를 사주한 김 모 씨의 경력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자 1987년 2월에 '영사증명 내용 정정 확인서'가 안기부에 의해 추가로 제출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처음 제출된 영사 증명서상에는 1944년 생인 김 모 씨의 경력에 "1952년 12월~1958년까지 조총련 산하 기관 조선청년동맹 산따마본부 선전부장"을 지낸 것으로 돼 있다. 이 영사증명서가 사실이라면 김 모 씨는 8살에 조총련 청년조직 간부를, 그것도 무려 선전부장을 지낸 것이 된다.

이런 영사증명서를 믿어줄 판사는 없다. 조작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영사증명 내용 정정 확인서'를 달랑 추가로 보내 사태를 해결한다. 이 확인서에는 "타자 오타 등에 기인한 잘못으로 인정되어 일본 공안조사청에 재확인한 상기 내용으로 김OO의 조직 경력을 정정하고 이를 확인함"이라고 적혀 있다. 박재현 영사가 서명하고 영수필증까지 붙였다.

 

▲ 위 문서는 1986년 4월 작성된 김양기 간첩 사건 재판부에 제출된 영사증명서, 아래 문서는 위 영사증명서의 경력 부분에 '8살 선전부장'이 오타에 의한 것이었으며 다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영진

재일교포 유학생 김정사 간첩 조작 사건도 허술하게 작성된 영사증명서가 이용됐다. 이 사건 수사 기록 가운데 김정사 씨에게 간첩 지령을 내린 것으로 지목된 임 모 씨가 '반국가단체인 한민통 간부 겸 대남공작지도원'임을 입증하는 증거는 피고인의 자백, 그리고 주일한국대사관 명의의 영사증명서가 전부였다. 영사증명서 기재 내용의 진위를 변호인이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던 사건이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도 영사증명서가 주요한 증거 역할을 했다. 따지고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사증명서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당시 재판부는 영사증명서를 아무런 의심 없이 형사소송법상 "증거 능력이 있는 서류"로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사증명서는 법률적으로 아무런 효력도 없는 문서에 불과하다.

▲ 김정사 씨 간첩 조작 사건에서 활용된 영사증명서. 김 씨에게 간첩 행위를 사주한 임 모 씨의 일본 내 행적을 적은 것이다. 삐뚤빼뚤 적힌 '영사증명서' 제목부터, 영사의 확인 도장까지, 어떤 서식도 없이 임의로 허술하게 만들어진 증명서지만 재판에서는 증거로 활용됐다. ⓒ김영진
이재승 건국대 교수가 진실화해위에 제출한 '영사증명서에 대한 의견서' 등을 확장해 작성한 '판례분석'에 따르면 "영사증명서는 본질적으로 증명서가 아니라 증명해야 할 사실들의 주장"이라고 한다. 영사증명서가 형법상 증거 능력이 있는 서류에 해당하지 않는 다는 것은 2007년 일심회 사건 판결 당시 대법원이 확인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이 교수는 판례분석을 통해 "재일동포 관련 사건에서 영사증명서상에 등장한 영사는 외교부의 정식 직원도 아니고, 중앙정보부에서 파견된 직원으로서 외교 관례상 허용된 주일한국대사관의 영사 자격을 악용하여 본부나 수사 기관이 요청하면 임의로 문서를 작성해 발송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유우성 씨 사건이다. 이인철 영사는 과거 영사증명서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영사확인서를 가짜로 만들어 검찰·법원에 제출했다. 유우성 씨는 재북화교 출신이다. 그의 가족들은 중국에 살고 있고, 그 역시 중국에서 상당 시간 생활했었다. 국정원과 검찰이 주장하고 있는 간첩 활동 역시 중국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독재 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영사증명서 조작이 자행되기 쉬운 조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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