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의 무당굿, 종교? 미신?
@[만신]의 무당굿, 종교? 미신?
  • 김영주
  • 승인 2014.03.13 0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엄니는 신끼가 조금 있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엄니의 꿈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선몽’들의 영험스럼을 어찌나 실감나게 이야기하시는지, 절로 믿음이 간다. 집안일에 가려움이 있으면 가위 끝에 실을 메달아 점을 치기도 하시고, 이웃집이 부탁하면 부엌칼을 들고 나가 골목길에 휙 던지면서 ‘삼천갑자 동방삭’을 외며 나쁜 잡귀를 물려주기도 하신다. 그러나 남의 미래인생을 말한다거나 귀신을 보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서, 무당처럼 ‘신내림’이 있지는 않은 듯 싶다.

누구에게나 주눅들지 않고 당찬 울엄니가 어느 날 날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고 혀를 내두르면서 “대균이 할매한테 말 함부로 하지 말아라~이! / 아니, 엄니 왜 그러셔? / 대균이 할매가 저기 시장거리에서 나물을 파는디, 왠 아짐씨가 이거저거 몬져만 보곤 기냥 강께, 그 년 뒤통수에다 손가락질함서, ‘저 씨버걸 년, 낼 모레믄 디질 년이, 까탈얼 부리고 지랄이야!’ 함서 욕하는 걸 봤는디, 아 글씨 그 아짐씨가 어제께 죽어서 초상났딱 안 하냐! 오매 오매, 고로케도 영금시럴까~! / 아니, 진짜로 죽어붓써~? 우와~. . . / 대균이 할매 입쌀에 오르지 말고 잘 해 주거라~이!” 등골에 소름이 쫘악 돋으면서, 놀란 토끼눈으로 입술을 옴친 채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한 달포쯤 지났을까? 대균이 할매가 우리집에 들어섰다. 그 할매는 우리집에 셋방살이하는 대균이 아빠의 어머니이다. 엄니 당부땜에, 그 시장거리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인사말을 몇 마디 나누는데, “근디 담배 한 대 있소? / 내 담밴 너무 순한디요? / 괜찬혀~, 암꺼나 피믄 되지 머~.” 할매의 신끼가 궁금해서, 마루에 앉아서 놀다 가시라고 권했다. 이 말 저 말 너스레를 떨다가, 말머리를 천천히 그 신끼 쪽으로 이끌었다. “아~ 그 때, 내가 죽었다 살아났제~, 넓디넓은 꽃밭을 하누고 가다가 강가에 당도했는디, 느닷없이 친정아부지가 나타나서 강을 건너가지 말라고 붙잡고 돌려세움서, 머언 책 한 권을 주덩만 ‘이걸로 먹고 살아라.’ 하시드라구. 책에 오만가지 기림이 기래져 있는디, 고걸 드레다보다가 깜짝 놀래서 깨났재~. 글고 나서부텀 영험이 생기드랑께~. / 그믄 그 책 그림은 빠삭히 기억하시오? / 몰라, 고걸 어떠코롬 기억해~, 근디 친정아부지가 머리통 왼짝핀에 앉아서 고 책을 펴서 보여주면 이거저거가 마악 보여~. / 그믄 친정아부지가 항상 머리통 왼쪽에 앉아 계시것네요? / 아녀~, 맨나 계시믄 성가셔서 어떠코 살아~. / 아~ 긍께 어쩌다 나타나시구만요~. / 그래~ 대중이 없지~, 바쁜디 매갑시 나오셔서 성가실 쩍엔 ‘아이~ 쩌 짝으로 잔 가 계시쇼~’ 함서 손으로 쭈욱 밀쳐놓기도 해~.” 그 말솜씨가 어찌나 구성지고 실감나는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아무개의 미래 일을 어떻게 그렇게 맞출 수가 있을까? 바짝 다가앉음서 물었다. “그믄, 난 앞으로 잘 살 것소? / 삼춘이사, 사람이 을매나 성건지고 쌉쌉허게 조은가~, 긍께 잘 살어~ 염녀마~. 장개도 조은 디로 가고, 남쪽에가 밥이 있구만? / 장개도 잘 간다구라우~, 아이고 감사합니다. 근디 남쪽에 밥이 있따믄, 남쪽 어-디만치요~? / 그거까정은 모르것고~ . . .”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기에, 그저 덕담해주는 말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10여 년 지난 뒤에, 문득 생각나서 돌이켜보니, 장개도 잘 가고 남쪽에서 직장을 잡았다. “허~거-참, 대균이 할매, 참~ 영험했네~!”
 
[만신]은 이렇게 우리 주변에 신끼 들린 무당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국가가 사회질서를 강력하게 휘어잡으려고 고등종교와 손잡고 서민들 틈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샤머니즘을 혹세무민하는 미신이라며 구박하고 멸시해 왔다. 국가의 지배와 통치에 기생해 온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서민들까지도 그 정치적 세뇌작업에 휘둘려 왔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유교이념이 매우 그러했고, 일제시대에는 조선문화 말살정책으로 그러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남한에선 개신교의 미국과 이승만정부가 그러했고 북한에선 스탈린주의로 그러했으며, 군사정부 아래에선 박정희 총통시스템과 근대화를 앞세운 새마을운동이 그러했다. 500년이 넘도록, 숨 컥컥 막히는 폭압과 멸시 속에서 서민들의 쌈지돈에 기생하여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68혁명을 터닝포인트로 삼아서 등장하는 반전운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샤머니즘에 새로운 평가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기적 같은 회생의 싹이 돋아난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영화[영매]와 만화[신과 함께]를 만들었고, 이번에 박찬경 감독이 [만신]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만신 김금화의 인생에 한국전쟁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의 사건들을 엮어넣어서 그 사회적 의미를 담아 넣었고, 종교와 미신 그리고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사이의 갈등에 문제의식을 보여주면서, 그 잘못을 반성하자고 말한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반성만 하고 말 것인가? 그 진단과 처방에 단기적 방책이 있겠고 장기적 방책이 있겠다. 요즈음 나는 ‘서양의 神과 동양의 道’라는 주제를 잡고 공부하며 가다듬어 정리하고 있는데, ‘有神論과 無神論’을 대립시키거나 ‘샤머니즘과 종교’에 우열을 두어서 볼 게 아니라 사회시스템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다양한 스타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젠 무당을 구박하고 멸시하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지만, 그 잘못된 뿌리는 그 오랜 세월동안 너무나 깊고 깊어서, 그들의 핍박은 아직도 혹독하고 모질다. 그래서 많은 대중들이 재미있게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래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고 보며, 또 내 감정적 미감이 극단적인 저항이나 극단적인 욕망과 미감을 싫어하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운동에 적극 동참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잘못을 지적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내 비엔날레미술을 비판하는 글이 그러하고, 박찬욱의 [올드보이]나 김기덕의 [피에타] 같은 영화 그리고 피가소나 백남준 또는 낸시랭이나 이불의 작품에 대한 비판이 그러하다. ) 이야기마당이 좁으니 이쯤에서 접어두자. 나는 불교미술과 무당집에서 만나는 그림과 조형물 그리고 그 색감이 싫다. 그 으스스한 스산함이 너무 힘들어서 때론 진땀까지 뺀다. 특히 절간이나 굿당의 싸구려 단청을 매우 싫어한다. 일본 신사를 구경하다가 그 형광빛 나는 극렬한 색감에 혼쭐이 나서 식은땀을 쏟은 적이 있다.( 아마 그런 그림과 조형물의 색감으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어서 저절로 고개 숙이고 움츠려들게 해서 종교의 신성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유럽성당이나 이슬람사원은 그런 색감을 쓰지 않고도 신성함과 웅장함을 잘 갖추고 있다. ) 나만 그러한지,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절은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무당집은 항상 힘들다. 내가 승주 선암사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감당키 힘든 색감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찬경의 작품을 처음 만났고, 다큐드라마라서 그의 연출력에 점수를 매기기가 어렵지만 일단 상급으로 보인다. 류현경의 신내림 장면과 문소리의 방아타령 장면이 압권이다. 어찌 보면 김금화의 굿보다 더 섬뜩한 신끼가 느껴진다. 류현경이 [방자전]에서 향단이로 보여준 그 파워풀한 연기력을 흘려 넘겼지만, 이번엔 그녀의 연기력에 매우 놀랐다. 몇 편 더 지켜보겠다. 문소리는 언제보아도 대단하다. [박하사탕]에선 그저 순박한 촌닭으로만 흘려 넘겼는데, [오아시스]의 장애인 연기에 너무나 놀란 뒤로, [바람난 가족]과 [관능의 법칙]처럼 거침없이 옷을 벗어던지는 야한 장면부터 [말순씨]나 [스파이]처럼 코믹한 연기까지, 그 어떤 역할도 더 이상 잘 할 수가 없다. 손에 꼽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에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는 잠깐 출연하지만, 방아타령 사설을 구성지게 읊조리는 노래솜씨와 품새로, 그녀의 연기는 어디에서 멈추려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대중재미 C0(내 재미 A0),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79336&videoId=43573 

* 박찬경 감독은 만신 김금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금화 선생은, 평소에는 아주 여성스러우면서도 꼿꼿한 이북 할머니시다. 그런데 무복을 걸치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오히려 남자처럼 느껴진다. 전투에 나가는 전사 같기도 하고, 군중 앞에 서는 정치가 같기도 하고, 큰 수술을 앞 둔 의사 같기도 하다. 원래 고대의 무당은 비바람을 부르는 주술사이자 왕이었는데, 현재에도 그런 왕의 자취가 느껴진다면 거짓말 같겠지만, 적어도 내겐 진실이다. 여성으로 무당으로 실향민으로, 온갖 멸시와 편견을 견디며 80년을 넘게 살아온 큰 무당의 세계를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