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느와르]의 풍성한 빛감과 색감에 흠뻑 적셔들다!
@[르느와르]의 풍성한 빛감과 색감에 흠뻑 적셔들다!
  • 김영주
  • 승인 2014.02.19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상한 그녀]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지만, 예전 같으면 1000만 명까지 갈 만큼은 아닌데, 1000만 명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다. 영화관객이 최근 2-3년 사이에 두 배로 튄 듯하다. [겨울왕국]이 내 눈엔 심드렁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는데, 1000만 명을 향하여 달리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러다가 “게나 고동이나, 1000만 명!”이 되지 않을까 슬그머니 염려스럽다. [울프]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사기행각을 사회파 관점에서 돈세상을 비꼰 영화인데, 그 내용이 난잡하고 대사에 막무가내 욕설로 넘치기에 일반관객이 ‘쓰레기 영화’로 오해하기 쉽겠다. 80시절에 [로보캅]에 열광했다. 그래서 1편 2편 3편을 모두 보았는데, 3편에서 무지 실망했다. 이번 [로보캅]은 네 번째인 셈이다. 옛 [스파이더 맨]이 1편 2편 3편으로 끝내고 새로이 [스파이더 맨]을 시작했듯이, 이번 [로보캅]은 옛 [로보캅]과 달리 2010시절에 새로 시작하려는 [로보캅]이다. 옛 [로보캅]1편과 줄거리가 엇비슷하고 무척 재미있지만, 새로운 [로보캅]답게 훨씬 화끈하고 파워풀해졌다. 2편이 기다려진다. 애초엔 [로보캅]을 이야기할까 했는데, [아이언 맨]이야기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서, 이야기 방향을 화악 바꾸어서 [르느와르]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

미술가를 영화로 만난 건, 고호 로댕 프리다 폴락 클림트 고야 베르메르이다. 그 중에서 네델란드의 베르메르를 소재로 한 [진주귀걸이 소녀]와 멕시코 여자화가의 일생을 그려낸 [프리다]를 잊을 수 없다. 서양화가 중에서 렘브란트와 모네를 가장 좋아한다. [진주귀걸이 소녀]에 등장하는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렘브란트가 느껴졌다. 그래서 [진주귀걸이 소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 영화에서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를 기대하였다. 그 기대가 이렇게까지 흡족하게 채워질 줄은 미처 몰랐다. . . . 영화에서 이토록 깊은 톤의 그윽함 그리고 그토록 은은한 빛과 그림자를 구석구석에 담아낸 화면을 보지 못했다. 모든 걸 잊어버리고, 그 한 컷 한 컷을 눈동자의 셔터로 잡아내어 뇌리에 박아 넣었다. 적어도 열 컷쯤은 영화화면이 아니었다. 그 그림의 포즈를 그대로 취한 그녀의 클로즈 업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그 그림 자체로 깜빡 착각하였다.” 그런데 [르느와르]의 예고편에서 르느와르 그림이 보여주는 빛감과 색감 그리고 붓터치가 느껴졌다. 영화화면으로 그의 그림이 갖는 미감과 질감을 실감나게 맛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몽유병처럼 날 영화관으로 이끌어갔다.
 
 

1915년, 르느와르가 늙을 대로 늙어서 붓을 쥘 수 없어 끈으로 손에 묶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18살 꽃다운 소녀가 누드모델을 하겠다며 찾아온다. 무대도 의상과 소품도 서로 잘 어우러졌다. 스토리도 잔잔하고 편안했다. 이토록 깊은 맛을 우려내어 만들어낸 이 영화를 찬양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가 그녀를 화폭에 담아 넣으면서 펼쳐지는 영화화면들에서 르느와르 그림의 미감과 질감이 촉촉이 다가온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진주귀걸이 소녀]의 영화화면에서 베르메르 그림의 미감과 질감이 느껴진다는 게 참 놀라웠는데, 이 영화에서도 르느와르 그림의 미감과 질감이 느껴져서 또 다시 놀랐다. 어떻게 그림의 느낌을 영상의 느낌으로 바꾸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촬영이 가능할까? 그런 구별을 해 낼 수 있도록 발달한 사진기술이나 영상기술도 놀랍지만, 그걸 그렇게 구별할 수 있도록 찍어내는 인간의 능력도 놀랍다. 이 놀라운 경험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신의 은총?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71562&videoId=43607

난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을 무척이나 분노하고 혐오한다. 그래서 인간과 신을 향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술이 얼큰해지면, 때로 뚜껑 열리는 분노가 치민다. 내 결벽증이 너무 심한 걸까? 아니면 이 세상이 너무 나쁜 걸까? 이토록 역겨운 세상에서 이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게 죄스럽지만, 놀라운 영상들이 주는 감탄에 저절로 행복감이 밀려오는 걸 어찌하나! 이게 어두운 고통의 수렁을 벗어나는 한 줄기 동아줄일까? 아니면 조증과 울증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정신분열의 실마리일까?

책에도 상·중·하가 있듯이, 예술품에도 상·중·하가 있다. 그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 옳든 그르든, 나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다. 그 좋고 싫음에, 인상파에도 상·중·하가 있고, 그 작품들에도 상·중·하가 있다. 여드름시절 이전에는 그림이 사진에 가까울수록 잘 그린 것인 줄 알았으니, 인상파 그림이 어수선하거나 괴이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시절이 되어서야 겨우 고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서른 시절 언젠가 모네의 빛감과 색감에서 오묘하게 깊은 맛이 느껴졌다. “왜 그 동안 이 맛을 몰랐지?” 고호가 오히려 지나치게 격렬해서 부담스러워졌다. [쌩-라자르 역]에서 벅찬 감동이 밀려왔고, [테라스] [파라솔 여인] [수련]씨리즈의 그 오묘한 빛과 색에 쏘옥 빨려들었다. 그 뒤로 인상파 작품들이 점점 더 좋아졌다.

<쌩-라자르 역> http://blog.daum.net/gallery0212/334
<모네 그림모음> 
http://cafe.daum.net/eojini/1Vjz/1208?q=%B8%F0%B3%D7%20%C0%DB%C7%B0&re=1

르느와르 그림에서 몇 개는 좋아하지만, 나머진 별로다. 그 몇 개가 모두 누드 그림이다. 그가 그렸던 여인들이, 오늘날 관점으론 뚱뚱해 보이겠지만, 내 눈엔 훨씬 여성미가 풍성하고 여유로워서 편안하다. 영화가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구석구석 많은 곳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여주인공을 참 잘 골랐다. 그래서 르느와르와 그의 여인들을 직접 만난 듯 했고, 그의 집과 널따란 정원에 너울거리며 넘나드는 풍요로운 햇살에 흠뻑 적셔들었다. 그의 그림과 꼭 닮은 여인과 영상의 빛감과 색감이 내 온 몸을 감싸 않았다.

* 대중재미 B+(내 재미 A++),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 : 인상파 A+

<르느와르 그림 모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kn0825&logNo=4013415023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