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도리란…
사람사는 도리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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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여성대상 수상한 정순자씨의 삶>

50년 세월을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면서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살이에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기에 달리 보일까.

정순자(68·광주시 서구 금호동)씨. 40년간 간호사로 봉직하다 퇴임한 뒤 사회봉사를 9년째 계속하고 있다. 전문적인 가정간호봉사자가 된 것이다.


50년 세월 봉사로 새긴 삶

그가 5일 광주여성단체협의회가 수여하는 '제9회 무등여성대상'을 받았다. 무등여성대상은 지역사회 발전에 모범이 되는, 희생적 봉사자로의 공로가 인정되는 여성에게 매년 주어진다.

남을 위해 시간을 쪼개는데 내 몸을 아끼지 않은 그의 평소 생활철학이 이제라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내일모레 일흔을 눈앞에 둔 시점인데.
"간호사 일을 오래했더니 후배들이 추천해서 이렇게 됐나봅니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 받고서야 이런 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동네방네 떠들어지는 게 부끄럽습니다. 간호사는 내 직업이었고, 나 아닌 남도 생각하는 게 사람 사는 도리인데…."

이런 때 '천직'이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간호사로서 임무 수행은 당연한 봉사다. 그러나 그의 간호사 역할은 남들과 분명 다른 차이가 있다. 그래서 동료, 후배 간호사들은 그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표현한다.


나 말고 남도 생각하는 게 사람사는 도리

그는 1952년 전남대 의대부속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병원에 1년간 근무하다 광주기독병원(당시는 제중원)으로 옮겨 1993년 7월까지 간호부장으로 재임하다 퇴직했다.

퇴직과 동시에 그의 일터는 호남사회복지관으로 바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5일간 정시 출퇴근하면서 봉사자로 활동한 것이 7년.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올해부터는 주1회만 나가면서 월1회는 노인들에게 미용봉사도 한다. "어깨 너머로 배워서 한다"며 "그래도 내가 손재주가 있나 보다"고 덧붙인다.

그가 하는 일은 주로 재가노인을 방문하여 간병 및 의료서비스와 함께 고독한 노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건강상담, 건강교육도 그이 몫이다. 그의 힘으로 해결이 어려운, 병원치료가 요구되는 환자는 평소 자신과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있는 의사와 연결시켜 무료진료를 받게 한다. 노인 및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는 무료 서비스가 얼마나 큰 힘인가. 일흔을 바라보는 연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료서비스가 그의 일과다.


간호사 생활 사회봉사로 연결, 외로운 노인 찾아 간병·의료서비스

간호사 시절은 어떻게 지냈을까.
6·25동란 때 그는 간호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쓰러져있는 포로들을 보면 손수레에 싣고 대학병원(그의 표현임)으로 옮겨 치료를 도맡는다. 의식을 회복하면 주소까지 추적해 가족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그에겐 당연한 본분이었다. 전쟁 당시 두발이 절단되고 오른손도 잘린 환자를 돌본 것이 인연이 돼 지금도 그 환자와는 가족처럼 지낸다.

기독병원 근무 시절. 밤 교대근무를 끝내고 새벽1시 귀가 길에 어느 집 불켜진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끙끙 앓는 신음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문을 부수다시피해서 들어갔다. 수피아여중 학생 2명의 자취방. 교복 입은 채로 공부하다 잠이 들었는데 연탄가스를 마셔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동네사람들을 깨워 기독병원으로 옮겨 두 학생을 살려냈다.

5·18때 병원은 밀리는 환자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나흘 동안 꼬박 밤을 새웠다. 의료진 손길이 달려 환자를 치료하느라 병원 바닥에서 환자들과 같이 잠자면서 같이 굶었다.

자신이 택한 직업인데 환자를 돌보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 그럼 가정생활은 어땠을까.

막내며느리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홀시어머니를 40년간 모셨다. 직장생활을 했는지라 일요일이면 시어머니 모시고 목욕탕에 가는 것도 일과 중 하나. 탕 안에서도 며느리로서 당연히 할 몫을 했는데, 매 주일 그런 모습이 동네사람들에게 남달리 보였는가 보다. 1986년엔 동네 주민 추천으로 효부상(보건사회부 장관상)도 받았다.

'천성적 간호사'. 그에게 칭해지는 '간호사'란 꼭 환자를 돌보는 구역을 뛰어 넘는다. 만인의 해결사라고나 해야 할까.

'봉사 받아야 할 연세인데'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매주 화요일 복지관에 나가다 최근에는 허리를 다쳐 쉬고 있다. "지금도 노인분들이 나를 기다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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