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영화를 삼킨 괴물!
@[화이] 영화를 삼킨 괴물!
  • 김영주
  • 승인 2013.10.10 0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벌써 10년이 되었나? [지구를 지켜라!], 한 방에 장준환이라는 감독 이름을 아로 새겼다. 더구나 데뷔작이라는데, 천재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여러 가지로 아주 놀랐다. 모든 점에서 A+이었는데, 내가 왜 이 영화이야기를 쓰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해 국내 4개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여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2004년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 대상을 거머쥐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 이동진닷컴이 공동으로 실시한 ‘다시 보고 싶은 한국영화’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 인기를 한창 날리고 있는 백윤식이, 그의 강렬한 존재감을 처음으로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그 독특하고 파워풀한 캐릭터가 최동훈 감독의 눈에 띄어서 [범죄의 재구성]에 다시 강렬한 폭발력을 보여주면서, 그 뒤로 그에게 명배우의 탄탄대로가 열렸다. )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를 깜빡 잊고 있었다. 나처럼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던 사람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장준환을 기다리며]라는 독립영화가 떠올랐다. 그의 팬이 독립영화를 찍다가 갈팡질팡 헷갈리는 대목에서, 장준환 감독이라면 자기의 고민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그를 찾아가 도움을 받는 영화이다. 싱겁다. 독립영화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사이에 개성파 여배우 문소리와 결혼했다. 누가 소개해서 맺어진 연분인지, 참 잘 어울릴 듯 싶다.



그가 [화이]로 인터넷 영화마당에 불쑥 나타났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드보일드이다. 잔혹하고 격렬하다. 핏빛이 넘쳐흘러서, 화면을 보기가 힘들 정도다. 스토리도 기본틀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사건들의 이음새도 여기저기 매끈하지 못하다. 주제도 지나치게 무겁고 설득력도 약하다. 그러면서도 영화 전체에 힘은 너무 쎄게 들어갔다. 기필코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 사이의 공백도 너무 길었던 듯하기도 하고, 대중재미를 너무 의식한 듯하기도 하다. 마치 [디스트릭트 9]이 그토록 기발했는데, 할리우드와 손잡고 대중재미를 높인다는 게 오히려 수렁에 빠져버린 [엘리시움] 같다. 자기의 본래 페이스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실력있는 감독이라는 건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김윤석과 여진구의 연기력이 폭발적이다. 김윤석의 연기야 우리나라 최고의 수준이니 더 말할 꺼 없고, 여진구는 처음 보는 얼굴이고 아직 젖내가 가시지 않은 청소년인데도 파워풀하고 격렬한 장면을 모두 잘 소화해 낸다.( [해품달]에서도 아역으로 인기였다는데, 앞으로 큰 기대로 지켜보겠다. ) 게다가 박용우를 비롯한 남녀 조연들이 모두 다 대단하다. 조연을 잘 드러내는 영화는 분명코 좋은 영화이다. 그런 영화 중에서도 유별나게 조연들이 돋보인다. ‘유별나게’라는 말보다는 ‘사무치게’라는 말이 더 나을까? 자동차 드라이브액션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숨 막힌다. [택시]와 엇비슷하면서도 현실감이 더 쎄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72864&videoId=42104&t__nil_main_video=thumbnail

장준환 감독, 역시나 참 대단하다. 그런데 앞의 단점과 뒤의 장점을 저울질해 보면, 양적으론 반반인데 질적으론 앞의 단점이 훨씬 더 무겁다. 게다가 이런 정도의 하드보일드는 박찬욱도 나홍진도 김기덕도 보여주고, 하다못해 김지운도 보여준다. 문제는 질적 내공이다. 善과 惡의 갈등에 종교까지 끌어들이면서 굳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데, 종교를 끌어들이지 말든지 끌어들였으면 그 종교의 못된 모습을 구체로든 비유로든 그 스토리 안에 녹여 넣어야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괴물로 처리해 버리면 너무나 무성의하다.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스토리 전체와 등장 캐릭터 안에 녹여내는 놀라운 내공을 보여주고선, 이 영화에선 기술적 잔재주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괴물이 영화를 삼켜버렸다.” 그래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나 [황해]와 스타일이 비슷해 보이지만, 내공이 많이 딸린다. 너무 긴 공백에 녹슬어 버린 건지, 아니면 대중재미를 너무 의식한 건지, 그도 아니면 [지구를 지켜라!]의 찬양에 자만한 건지 · · · , 안타깝다.

* 대중재미 : 잔혹을 힘들어 하는 사람 B0 · 즐기는 사람 A+,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B+.

난 잔혹영화나 공포영화를 아주 싫어한다. 어지간해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상당한 실력을 갖춘 감독들은 왜 자꾸 잔혹영화 쪽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 뛰어난 능력을 나쁜 쪽으로 낭비한다. 이건 그저 낭비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라는 종자 자체가 워낙 잔혹하니까, 그런 인간들의 삶을 잔혹물에 기대어 풍자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잔혹함을 고발하고 반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구를 지켜라!]나 이창동 작품처럼 그려낼 수 있을 텐데, 그렇게 꼭 핏빛으로 칠갑해서 선연하게 드러내야 직성이 풀리겠나? 그렇게도 자기의 천재성을 과시하고 싶은가? 좋은 쪽으로 달래고 선도해도, 인간이란 종자가 날 넘고 어리석어서 도통 먹혀들질 않는데, 어찌 이런 잔혹함으로 자꾸 흘러가는지 참으로 심난하다. 비엔날레 작품을 비롯해서, 현대예술이라는 이름아래 진보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런 작품들이 많은데, 그건 정신병이지 사회고발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세상인심이 음험하고 사나운데, 잔혹공포 제발이지 그만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