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지역언론의 정체성
위기에 빠진 지역언론의 정체성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3.06.1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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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역언론 현장을 가다(하)
다양한 생존방식 찾아 실천에 옮길 때
“동네할아버지 감기걸렸어요” 이런 뉴스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주관한 ‘지역신문의 디지털 혁신’이라는 디플로마 과정에 참여해 지난 5월12일부터 19일까지 7박8일간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주요 대학의 저널리즘스쿨과 지역 언론사를 방문해 디지털 혁신사례를 살펴보았다. 혁명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언론시장의 현황과 우리 지역 언론이 나아갈 방향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 뉴스데이를 방문한 우리 일행들에게 이례적으로 오전 편집회의에 함께 참석해 그들의 제작 의사결정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지역언론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역 일간지를 구독료 내고 보는 구독자가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독자들은 중앙지를 보면서 지역신문을 한 부 덤으로 본다. 지역언론의 입장에서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역언론 스스로 그러한 제작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해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앙지의 자금동원력으로 무차별적인 시장 장악과 더불어 정부가 중앙지의 시장 장악력을 뒷받침한 꼴이 된 점도 책임이 있다. 때문에 건강한 지역언론 찾기가 쉽지 않다.

어떻든 지역언론 스스로 생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역언론의 제작환경을 먼저 살펴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우선 지역언론은 크게 두 가지 시각에서 신문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지역뉴스를 중심으로 하지만 중앙뉴스를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 다른 하나는 철저한 지역뉴스만을 생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역뉴스는 종이신문이건 인터넷신문이건 크게 다를 바 없다.

과거를 답습한 제작방식 벗어나야

중요한 관점은 지역언론의 정체성이다. 필자는 지역언론의 르네상스기를 맞이한 1988년 광주에서 발행하는 <무등일보>에 입사해 2004년까지 16년 정도 기자로 시작해 논설위원까지 한 경험이 있다.

그러던 중 늘 동료들과 술자리에 앉으면 토론의 주제가 되었던 것이 지역신문의 위상이었다. 지역신문이 어정쩡하게 중앙지 흉내를 낼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 당선이나 취임기사도 1면 머리기사가 아닌 측면 기사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된 토론의 주제였다.

필자는 당연히 후자가 지역신문의 제작태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다. 지역언론은 철저한 지역성, 흔히 말하듯이 동네할아버지가 감기 걸렸다라든가, 어느 학교 체육대회에서 일어난 일이라든가, 누구의 결혼식장 에피소드를 보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신문은 중앙신문보다 발행 면수도 적고 중앙 뉴스도 적기 때문에 양적으로 중앙지를 능가할 수 없다. 또한 지역언론들이 ‘연합뉴스’와 같은 통신사 제공기사를 사용하는 분량이 많아 다른 지역언론과의 차별성을 가질 수 없다.

더욱이 요즘과 같은 인터넷 중심의 언론환경에서는 지역언론이 중앙뉴스를 전달하는 데는 이제 한계에 직면했다. 그런데도 지역언론들은 과거의 신문제작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지역신문에 중앙기사가 실리지 않으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자의적인 판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구태의 제작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과연 그래야 할까? 이번 미국연수를 통해 지역언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었다.

▲뉴스데이 신문사 복도에 걸린 ‘우리의 사명’은 그들의 신문제작 방침을 알게 해주었다.
다양한 콘텐츠로 뉴스 유료화 도입

뉴욕의 <뉴스데이>를 방문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뉴스데이(NEWSDAY)는 지역민과 함께 73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는 지역소식이 ‘킬러콘텐츠(killer contents)’였다. 뉴스데이는 인구 250만명의 롱아일랜드에서 온라인 유료독자를 포함해 30만부를 발행하는 신문이다.

뉴스데이는 통합뉴스룸 운영을 통해 하나의 뉴스를 다양하게 공급하고 있었다. 기존 종이신문을 비롯하여 홈페이지 온라인뉴스, 모바일 뉴스, 케이블TV 송출 등 뉴스유통채널의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은 1945년 2차 대전 이후 귀향 군인들이 정착하면서 롱아일랜드 중소도시들이 지역소식을 전해주는 일간지가 필요하다는 요구 때문에 도시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특히 탐사보도가 강해 퓰리처상도 19번이나 받을 정도로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지만 라이프스타일, 로컬 스포츠 등 일찍부터 지역밀착형 보도를 해왔다.

지역밀착형 보도 및 편집방향의 구체적인 예로는 지자체의 교육예산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인포그래픽으로 쉽게 설명하거나 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약과 프로필을 상세히 보도한다.

뉴스데이는 미국내 발행부수 규모만으로는 12위 정도라고 한다. 한때 ‘미디어 황제’ 머독이 5억8,000만 달러에 인수하려다 포기할 정도로 전통있는 유력지다. 한국 지방지의 언론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무리일 수 있으나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신문 구독자의 가파른 감소를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른 대책으로 통합뉴스룸을 도입하고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라는 도전을 시도했다. 아직 성공적인 안착이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나 뉴스데이가 가진 역량을 볼 때 향후 오늘의 혁신이 더 큰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팔로알토패치 누리집
철저한 지역공동체 중심 제작으로

샌프란시스코의 <팔로알토 패치>를 방문했다. Palo Alto Patch는 패치닷컴(patch.com)이 운영하는 지역신문 프랜차이즈 중의 하나이다. 지난 2009년 미국의 AOL가 인수한 뒤 현재 미국 전역에 걸쳐 1,000여 개의 지역 패치 사이트를 갖고 있다.

초지역적인(Hyper-Local) 제작방식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지역신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보통의 지역신문에서 다루지 못하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통해 수익까지 창출하는 온라인 전용 모델이다.

일반적인 지역언론들이 어정쩡한 중앙 흉내를 광역신문이라는 사실을 비추어볼 때 이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를 흡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패치닷컴의 성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팔로알토 인근 13개 패치사이트를 총괄하는 중국계 미국인 스테이시 찬
팔로알토 패치의 책임자인 스테이시 찬(Stacie Chan)은 20대 후반의 당찬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지역총괄 편집장(Regional Editor)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그녀는 현재 13개의 사이트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패치닷컴은 4만~8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별로 하나의 패치 사이트를 개설하는 데 인구수, 중산층, 비즈니스 상황 등 60여 개 항목에 점수를 매겨 사업성이 있는 곳을 판단한다. 한 지역 패치별로 한 명의 기자가 있지만 인근의 패치 기자들간에 상호 보완하거나 지원해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뉴스제작이 지역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비디오광고, 스폰서광고 등의 효과는 좋은 편이다. 또 이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캘린더 서비스다. 지역 주민들은 자신이 홍보하고 싶은 행사나 모임을 사이트에 직접 올리고 또 확인함으로써 커뮤니티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미국연수단은 샌프란시스코의 팔로알토패치를 방문해 책임자로부터 초지역밀착형 언론의 제작방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산마테오패치 누리집
이젠 초지역밀착형 뉴스 신경 쓸 때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연수단은 패치닷컴 모델이 한국에 어떤 형태로 들어올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우리 지역신문들은 아직도 지역 기사를 보도하면서도 사실은 지역 주민의 관심사와 동떨어진 기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초지역밀착형 신문제작이 생존의 대안일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작환경을 지역신문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것은 언론사 경영자의 결정에 따른 문제였다. 다음으로 기자들의 취재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AOL이라는 통신업체가 이 모델을 사들였다. 국내에서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수용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고 자본과 시스템을 이미 다 갖추고 있는 포털이 각 지역마다 취업에 목마른 젊은 기자들을 한 명씩 투입, 유사한 방식을 도입한다면 기존 지역언론의 설 자리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지역 언론사들의 반발에 부딪치겠지만 지역정보라는 미명 아래 거대 지역 카페와 파워 블로거를 등에 업고 포털 사용자들의 입맛에 맞는 뉴스를 생산하고 지역광고까지 다 챙긴다면 그 파급효과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언론들이 초지역(Hyper-Local) 개념을 먼저 선점하는 건 어떨까. 이제는 지역신문의 누리집도 종이신문 서비스의 온라인 버전이라는 하위 개념이 아닌 지역 공동체를 끌어안는 노력을 해야 한다. 포털의 장벽 앞에 무릎을 꿇고 페이지뷰에 매몰돼 인기 검색어 기사에 목맬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포털이 잘하고 있는 부분을 적극 수용, 지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광주의 경우 구별 또는 아파트 단지별로 지역 공동체와 지역신문을 어떻게 링크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뉴욕․샌프란시스코=정인서 편집국장

▲미국연수단은 뉴스데이 방문을 마치고 본사 건물 앞 잔디에서 뉴스데이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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