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바라본 광주 근·현대 여성운동 -6
21세기에 바라본 광주 근·현대 여성운동 -6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3.05.15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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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현주소
인권 찾기 시작한 미얀마의 ‘여성운동’
대한민국은 지난 50여 년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 나라이다. 그런 가운데 유교적 사회 환경 속에 여성은 강요된 틀에 갇혀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만 하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는 그러한 역할에서 벗어나 여성만의 정체성을 찾고 국가 발전을 선도하는 당당한 역사적 주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시민의소리>는 그동안 남성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광주·전남의 발전을 위해 피땀 흘린 ‘여성운동’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회. 프롤로그 -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현주소
2회. 광주 근대 여성운동의 활동 (3.1만세운동, 항일학생독립운동, 해방후 여성운동)
3회. 부산여성운동 활동 (대표 독립운동가 박차정)
4회. 광주 현대 여성운동의 활동 (5.18민주화운동, 실존인물 증언)
5회. 현재 광주전남 여성 관련 단체 활약
6회. 미얀마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현주소
7회. 미얀마 양곤 민주화 운동 (아웅산 수지 여사)
8회. 에필로그 - 여권 신장으로 여성친화도시 나아가는 광주

   
 ▲미얀마의 90%는 불교를 믿는다. 미얀마의 대표적 상징물 쉐다곤 파고다는 밤에도 수많은 현지인들과 방문객들로 인산인해 했다. 
동방의 ‘정원’이라고 일컫는 미얀마는 광주와 닮은 구석이 있다. 80년의 광주는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군사정권의 계엄군에 맞서 투쟁을 하며 여성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얀마도 8888민주화 항쟁으로 아웅산 수지 여사가 떠오르면서 여성 사회참여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는 한국인 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얀마로 가는 직항이 지난해 9월에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지 아직까지는 한국 관광객 발걸음이 뜸하긴 하지만 아웅산 국립묘소 폭격사건, 아웅산수지 여사 광주 인권상 수상 등으로 인연이 아주 깊은 나라다.

조금은 늦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정당하게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고 있는 미얀마 여성의 현주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여성노동 참여

미얀마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한때 수도였던 양곤(Yangon)을 찾았다. 열대기후로 옷이 땀으로 흠뻑 젖게 됐지만 현지인들은 친절하고, 여유로워보였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습성을 부끄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미얀마는 한국의 8배의 크기로 인구는 약 오천 만 명이다.

미얀마는 135개의 다양한 소수민족이 구성되어 있다. 그 중 70%가 버마족, 나머지 30%가 샨족, 몬족, 카렌족 등 중국계 인도계 등 다양한 기타민족들이 섞여 사는 나라다. 그만큼 다양성속에 통합을 얻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정치시스템은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편일 듯싶다.

미얀마 88 Generation의 여성 센터장 Nilar Thein(41)은 “미얀마의 과거에는 한명만 나가서 벌면 먹고살 수 있었지만 군사정권 이후로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아이들까지 농사일이나 일을 하게 됐다“며 ”과거에는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2000년에 들어서 이후에는 여성들도 사회운동도 하고 우리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얀마에서 군부의 힘이 아직도 여전히 세다고 하다. 미얀마 곳곳에는 어린 아이들이 장사를 돕거나,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띠며 수줍은 인사를 건넨다.

▲미얀마의 현지 아이들은 밝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넨다.
▲미얀마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은 대부분 다나까라는 자외선 차단제를 얼굴에 바르고 다니며 다닌다.
여전히 보수적인 부분도 많아

지금은 미얀마 여성의 사회적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부분도 많다. 초등학교 선생님과 산부인과 의사는 무조건 여성이다. 가사나 주방일도 여성이 대부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사는 남성도 돕는 공동분업 형태로 흘러가는 추세라고 한다.

반면 미얀마에는 한국과 반대로 호프집이나 술을 파는 가게에 여성 종업원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과는 비교되어 씁쓸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미얀마는 90%이상이 불교를 믿는 국가이다.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양곤 시내 곳곳에는 발만 띠면 탑을 볼 수가 있다. 미얀마에는 크고 작은 탑이 약 4백만 개가 있는 나라로 탑으로 시작해서 탑으로 끝나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파고다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볼 수 있었지만 여성들이 더욱 절실해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그릇에 물을 떠놓고 가족을 위해 한 없이 기도를 드리는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옛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많이 볼 수 있었지만 특히나 여성들이 절실하게 보였다.
미얀마 88 Generation의 여성 센터를 찾아 여성운동가 Nilar Thein씨를 만나 현재 미얀마 여성운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다.

현재 미얀마에는 여성교육단체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무지에 대해 계몽을 하고, 미싱을 가르치거나, 성범죄예방단체 등 구분을 지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미얀마에는 아직까지 작은 전쟁들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대상은 아이들과 여성이다. 바로 88 Generation 여성 센터는 아이들과 여성이 전쟁의 피해로 얻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육체뿐만 아닌 내면까지 치유해주는 곳이다.

또한 이 센터는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위해 상담을 들어주는 광주 여성의 전화, 광주 여성민우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얀마 양곤의 88Generation 사무실 앞
▲88Generation 에서 여성센터장 Nilar Thein씨를 만나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와 비슷한 아픔 가진 미얀마

▲88Generation 의 여성센터장 Nilar Thein(41)씨
대학생이 주축으로 일어난 미얀마의 ‘8888항쟁’은 광주의 80년 5.18 민주화 항쟁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너무나 닮았다. 아직까지 민주화 운동으로 군사정권에 의해 수감되어 있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은 진행형이다.

한편 미얀마의 여성운동가 Nilar Thein는 군사정권의 압력 때문에 2번의 감옥생활을 했었다. 첫 번째는 9년간의 옥살이를 해야 했고 2번째는 4년간의 옥살이 끝에 지난 2012년에서야 풀려나게 됐다.

1988년 고3이였던 Nilar Thein는 미얀마 양곤에서 있었던 8888항쟁에 참여해 시위를 참여했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에 잡혀가게 됐다. 그 이후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늘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 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앞으로 Nilar Thein는 미얀마의 여성 지위향상을 위해 부족한 점이 많아 풀어 나가야할 숙제가 많다. 그녀는 “여성 최초 국회의원이 생기고 나서부터 젊은 여성들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한발 더 나아가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집안일만 하는 여성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여성도 일을 하면 남성과 동등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정당한 요구를 해야한다”고 미얀마 여권신장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김다이 기자

▲Nilar Thein씨와 그녀의 남편 Jimmy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Jimmy씨는 5월 16~18일까지 2013 광주 아시아포럼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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