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 동네 북, ‘광주문화재단’
‘오월’ 광주, 동네 북, ‘광주문화재단’
  • 시민의소리
  • 승인 2013.05.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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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30년, 패러다임 시프트!

 *이 글은 5월 13일 발송된 지역사회 비평전문 미디어 짱돌 웹진에서 인용했습니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다. 6․25 민족동란 이후 광주 5․18은 국내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기억되고 있다. 나아가 혹자는 광주의 정체성을 조광조 등 개혁파, 임진년 의병활동, 동학운동, 광주학생운동, 5․18 등 역사적 사건에서 찾는다.

그러나 최근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다양하게 접근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민선시장들이 내세운 ‘1등 광주’나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요컨대, 광주는 민주화의 도시, 1등 광주 혹은 행복한 창조도시 등으로 여러 각도에서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의향 광주에 대한 주요 담론이 1997년 이후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 문화중심도시로 대표되는 주요 논쟁 속에서 광주 정체성 진단은 크게 퇴색해 버렸다. 그로 인해, 현재 광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좌표를 역동적으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는 어떤 도시고, 앞으로 어떤 도시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광주는 왜 의향에서 문화도시로의 변화를 모색했을까? 혹자는 광주가 예전부터 ‘예향’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것은 동네 우물 안에 갇힌 이야기일 뿐이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는 스스로 예향임을 자랑하고, 지향한다. 단지 외부에서 정작 특정 지역에 대해 예향으로 인정해 주는가하는 문제만을 남긴다. 광주는 안동보다 더 예향적인가라는 우문도 함께.

결국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에서 문화도시로의 정체성 변화를 겪고 있다. 이는 지난 30년에 묻힌 오월광주의 역사적 퇴장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첫째, 민주화의 도시 광주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자 획책하는 권력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당이나 민선 광주시장이 대표적이다. 지역 기득세력을 옹호하는 지역의 중견 건설회사와 이들의 언론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민주화의 십자가를 자처했던 5월 당시 20~30대 청년들이 벌써 50~60대가 되면서 겪은 정체성의 변화이다. 이들은 대부분 민주투사에서 문화예술인으로 탈바꿈했다. 마치 서구와 일본의 68세대가 대부분 대학이나 문화계로 자신의 인생경로를 바꾼 것처럼.

이러한 두 개의 대립적 세력은 노무현정권에서 한 몸을 이뤄냈다. 이들은 적어도 광주를 민주화 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정체성을 변화시켜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다만, 이들은 광주를 어떤 문화도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예를 들면,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거듭된 ‘문화수도 광주’와 ‘주체적 시민문화도시 광주' 논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문화도시‘라는 공통분모를 지향한다.

이러한 경로를 거듭 확인해보면, 광주는 의향 또는 민주화 도시라는 압도적인 단일 정체성에서 문화도시로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식자들은 ‘문화’라는 개념이 매우 폭넓기 때문에 민주화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포스트막스 등 신 사회 이론을 거들먹거린다.

한편, 진짜 광주 문화판은 오월광주를 상기시킬 정도로 쌈판이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오광수 총감독을 선임하자, 망월동 입구에서 열린 안티 비엔날레는 그 대표적 얼굴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관변 문예단체와 광미공 등 민중예술단체간 싸움은 지속되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2003년 이후의 문화중심도시 논쟁은 광주의 정체성을 정치, 경제, 사회 영역으로 한층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동네 북, ‘광주문화재단’에 대해 let it be 해라!

2011년 1월 출범한 광주문화재단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논쟁에 따른 산출물이다. 강운태 광주시장이 출범시킨 통합문화재단은 분파적으로 흩어진 문화집단들의 관심을 한 곳에 모으고, 각종 사고로 얼룩진 출연 문화예술단체를 훈육시키기 위한 통치관리에 불과하다. 광주시의 입장에서 보면, 각개 전투가 아닌 한 곳에 집결시킨 문화조직은 통치에 수월하다. 푸코의 통치와 생명정치가 적실성을 갖는 대목이다.

어느덧 의향, 민주화도시, 아시아문화도시 등에 쏠린 인식과 관심은 이제 광주문화재단이라는 특정 조직과 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 솔직히 광주지역 지식인들이 얼마나 치졸하고 어설픈 ‘존재’인가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지금까지 문화재단에 쏟아진 비난들(공룡 조직 비난, 자스민 광주 등 어설픈 공연기획, 사무처장의 독선과 전횡 등)은 광주의 정체성이 매우 표피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문화전당이 완공되어 가는 시점에서 광주는 문화중심도시 담론의 주도권을 놓쳐버렸다. 간혹, 추진단과 개발원간의 갈등에 훈수를 두고 있을 뿐, 이제 관심은 온통 광주문화재단에 모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30여 년간 광주의 다양한 사건들을 보면서 내린 필자의 생각은 매우 간결하다. 문화전당의 ‘밥’은 쉽사리 찾기 어렵지만, 문화재단의 ‘밥’은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은 내 몫(pie) 찾기라는 과제로 둔갑했다.

덧붙여, 광주문화재단에서 일하는 문화판 인사들, 언론사 출신들, 전남대 문전출신들은 결코 ‘밥’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언제라도 재단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광주문화재단의 조직, 인사, 예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외부 인사들이여!
이제 스스로 let it be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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