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바라본 광주 근·현대 여성운동 -1
21세기에 바라본 광주 근·현대 여성운동 -1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3.04.10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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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현주소
21세기 ‘여성의 시대’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은 지난 50여 년간 세계가 부러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 나라이다. 그런 가운데 유교적 사회 환경 속에 여성은 강요된 틀 속에 갇혀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만 하고 살아왔다고 과언이 아니다. 현재는 보조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여성만의 정체성을 찾고 국가 발전을 선도하는 당당한 역사적 주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시민의소리>는 그동안 남성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광주·전남의 발전을 위해 피땀 흘린 ‘여성운동’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회. 프롤로그 -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현주소
2회. 광주 근대 여성운동의 활동 (3.1만세운동, 항일학생독립운동, 해방후 여성운동)
3회. 부산여성운동 활동 (대표 독립운동가 박차정)
4회. 광주 현대 여성운동의 활동 (5.18민주화운동, 실존인물 증언)
5회. 현재 광주전남 여성 관련 단체 활약
6회. 미얀마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현주소
7회. 미얀마 양곤 민주화 운동 (아웅산 수지 여사)
8회. 에필로그 - 여권 신장으로 여성친화도시 나아가는 광주

   
▲지난해 4.11총선에 앞서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은 동구청 앞에서 여성들의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말은 더 이상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참정권, 여성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이제는 사회, 경제, 정치적 주체로써 당당히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지고지순, 순종적인 여성, 뒷바라지 잘하는 현모양처의 역할만 해왔던 한국 여성들은 이제는 양성평등을 넘어서 남성의 지위를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여성의 목소리에 힘을 키워줄 수 있는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생겨나면서 노동·임금문제, 육아·출산 문제의 합당한 대우와 처우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실 수백 년의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표현은 하지 않지만 ‘여자는 OO해서는 안돼’라는 고정관념이 일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운동의 기틀을 다져준 YWCA활동부터 여성 국회의원, 여성 장관 등장,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기까지 배경이 되어준 근현대 여성 운동사를 되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교육의 문 열려 여성교육 시작

여성운동의 포문을 열게 된 것은 여성에게도 배움의 길이 열리고부터다. 현재는 여성 대학진학률이 남성의 대학진학률과 동등한 위치를 이루지만 20세기 초반에는 여성이 중등교육 이상을 받는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는 남이야기만 같은 일이다.

여성신교육은 1903년 목포항이 개항 이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남 최초 여성학교 목포정명학교, 1908년 광주 최초 여학교인 수피아여학교가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교육의 터전이 마련되면서 광주 YWCA, 광주부인회가 계몽적인 여성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1903년 설립된 호남지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 정명여학교의 1920년대 전경 모습.
또한 역사적 격동의 시기때마다 광주와 전남은 그 중심에 있었다. 넓은 논밭과 해안으로 농수산업이 풍부했던 광주, 전남은 수탈과 약탈의 적격지였다. 일제시대부터 일제의 수탈과 참혹했던 만행에 저항하기 위해 항일학생독립운동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광주, 전남 여성들은 1900년대 초반 3.1만세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부터 여성운동을 시작해 이름을 남기기 시작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의 여학생으로 인해 발생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학생들은 발 벗고 나서 삐라를 나르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다녔다.

항일운동으로 해방 이후에는 억압되었던 사회활동이 폭발함과 동시에 산업화와 여성단체들이 생겨남에 따라 전국적으로 활력이 되어 여성운동을 가속화 시키는 계기가 됐다.

▲광주 장동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에는 학생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비'가 1959. 1. 13일에 건립됐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광주전남여성

하지만 군사독재에 의해 추진되어온 경제개발계획에서 전남은 또다시 불이익을 당해야만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회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광주는 대표적으로 나서게 된다. 5.18민주항쟁에서 여성들은 트럭에 올라 가두방송을 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에게 계엄군의 만행을 알렸다. 광주, 전남의 여성들은 민주화 운동 시기에도 뒤로 숨지 않고 계엄군에 맞서 부당함에 저항했다.

이후 1990년대는 여성단체들이 여성운동의 연대를 위하여 ‘광주 YWCA', ‘광주여성의 전화’, ‘광주 민우회’, ‘광주여성노동자회’ 등이 모여 광주전남여성문제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성의 권위·지위향상, 여성노동문제, 육아·출산문제 등에 집중 앞장서게 됐다.

이러한 여성단체의 활발한 여성운동이 있었기에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 현재 한국 여성들은 지방선거 공천 20%, 광역회의 비례대표위원 10% 후보추천 등 정치권력의 확보, 여성정책의 제안 등 활발한 정치 참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치를 통로로 여성지위 향상과 합당한 대우를 위한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인권도시 광주는 여성친화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 광주여성발전센터에 이어 광주여성재단설립 등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광주발전의 원동력을 삼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성대통령 시대’, 남아있는 과제 해결해야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여성문제가 몇 가지 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이 발각되면 약한 처벌 등으로 남들에게 비난당하는 ‘주홍글씨’나 따가운 눈초리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확신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처벌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이 경제적 주체로 등장함에 불구하고 정규직 여성은 남성의 절반 수준 밖에 못 미친다. 결혼 이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체계도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여성단체들은 힘을 합쳐 처우개선을 위한 여성운동을 통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나아가 ‘여성대통령 시대’라는 구호에 걸맞게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체계와 정책을 통해 좀 더 성숙한 한국여성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김다이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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