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치유의 첫 발을 내딛다”
“5.18, 치유의 첫 발을 내딛다”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3.04.04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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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생존자들과 함께한 10주간의 감동드라마

“친구가 제 옆에서 대검에 대여섯 차례 찔렸어요. 제가 업고 전대 병원에 뛰어갔는데 못 깨어나고 죽었어요. 걔 얼굴이 눈앞에 선해요. 걔는 눈이 나보다 더 커요. 쌍꺼풀은 선하게 보여서 그냥 사람 쳐다보면 그 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렇게 착했어요. 눈에 선하죠. 지금도 5․18 생각할 때 마다 그 친구가 생각나고 괴롭죠. 그래서 술을 많이 먹죠. 아마 수면제 나만큼 많이 먹은 사람 없을 겁니다.”

“너무 살기 힘들어 제 자식을 광천파출소 뒤편에 있는 고아원에 보내려고 했어요. 고아원을 쳐다보면서 그 아이가 ‘아빠 여기가 뭐하는 데야?’하고 묻길래 차마 보내지 못하고 돌아서 왔어요”

33년 전 80년 오월에 겪은 생존자들의 치유는 가능할까? 그 상처는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눈길을 끌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3일 서구 치평동 광주시도시공사 13층에서 ‘5·18민주화운동 트라우마, 치유의 첫발을 내딛다’라는 주제로 첫 성과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광주트라우마센터(서구 치평동)는 지난 10주간 5·18민주화운동 생존자들과 상담을 하며 써내려간 감동의 드라마를 시민들과 함께 나눴다.

이번 성과 발표회는 지난해 11월2일부터 올해 1월4일까지 10주간 진행된 ‘제1기 집단상담’의 의미와 성과를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강용주 트라우마센터장은 여는말에서 “5·18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선 우선 역사적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국가공동체를 비롯한 지역공동체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아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는 관심과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집단 상담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정혜신 정신과 박사는 “상담에 참여하신 분들은 처음에 ‘여기서 더 마음이 괴롭다’고 거세게 저항했었다”며 “내 안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것은 장수와 같은 용기가 필요한 정말 어려운 일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만큼 국가폭력이 주는 무서움과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면서 “이 작은 시작이 앞으로 더 많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불씨를 만들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당시 상담에 참여했던 7명의 5·18구속부상자회 회원들도 직접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상담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만남을 가져왔다.

트라우마센터 내에서 ‘작은 거인’이란 별명을 얻은 박천만 씨는 “5·18 당시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 일도 못하고, 생계가 어렵다보니 자식을 고아원에 보내려고 한 적이 있었다. 젊은 날에 있던 꿈도 모두 사라지고, 80년 오월의 고통, 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살아왔다”며 “처음 트라우마센터에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망설였다. 한 번 두 번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80년 그 때 일을 말할 수 있었고, 말하면 시원하고 그러더라”라고 토로했다.

‘작은 거인’이란 별명을 얻은 윤다현 씨는 “항상 죽음을 달고 살았다. 상담 횟수가 거듭될수록 마음의 병, 응어리가 풀리고 5.18에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5,000명의 5.18가족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 이야기할 수 있고, 응어리를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센터가 더 활성화돼서 요양원으로까지 기능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공휴 민주유공자회설립추진위원회 대변인은 “과거 몇 차례 비슷한 상담 치유를 시도했다가 오히려 상실감만 컸던 경험 때문에 ‘고통스런 기억을 꺼낸다고 되겠냐’며 가장 트라우마센터를 불신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4주간은 지난날의 생생한 고통이 떠올라 너무 힘들었다”며 “조금 덜해졌던 악몽을 다시 꾸기 시작해 밤마다 몇 번씩 잠에서 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5주가 넘어가니 나도 모르게 속에 감춰뒀던 얘기를 하나 둘 꺼내고, 개인사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1기 집단상담은 끝났지만, 7명의 상담 참여자들은 ‘8032(가족에게도 하지 못했던 80년 오월의 이야기를 32년만에 털어놨다는 의미)’ 모임을 만들어 1달에 1번씩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1기 상담 참여자들에 대해선 꿈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한편, 이날 발표회에는 70~80년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 모임인 ‘진실의 힘’도 함께 했다. 트라우마센터는 4월10일부터 5월29일까지 또 다른 5·18 생존자 8명을 대상으로 2기 집단상담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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