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시 시작은 성차별 단어 사용금지부터
인권도시 시작은 성차별 단어 사용금지부터
  • 백희정 ‘여는’ 광주여성민우회 대표
  • 승인 2013.02.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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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희정 광주여성민우회 대표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미국 워싱턴주가 주(州)법 조항에서 경찰관을 뜻하는 단어(policemen)와 신입생을 의미하는 단어(freshmen)는 ‘성차별’이라며 없애버렸단다. 대신 경찰관은 police officers로 신입생은 first-year students로 대체했다고 한다. 워싱턴 주가 어떻게 보면 단어를 없애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이유는 기존 단어의 ‘men’이 남성을 뜻해 양성평등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 기사에 의하면 워싱턴주의 이러한 조치는 2006년 주(州) 소속 두 명의 시의원이 처음 제안했고 이후 성 중립적인 언어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즉시 주법 조항의 단어교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주와 미네소타주 등 전체 주의 절반 이상이 교체작업을 했거나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북의 한 여고가 개교를 하면서 흔히 ‘00여자고등학교’라는 이름대신 행정 동명을 딴 ‘00고’라고 교명을 붙인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양성 평등한 교명을 가진 학교가 탄생하게 된 것은 남성 대표성의 단어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미국 사례와 같은 시기인 2006년 한 여고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여자고등학교라는 지칭은 성차별’이라며 진정을 내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남학생이 있으면 왜 남자고등학교라고 쓰지 않으면서 여학생만 여자고등학교라고 쓰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맞다. 이건 분명 우리 사회의 대표성을 남성에 중심에 놓고 사고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언어들은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관행으로 사용되어 지면서 그 익숙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성차별이 길들여져 온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말에도 판사와 여판사, 선생과 여선생, 작가와 여류작가, 직원과 여직원 등처럼 굳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고 처녀작, 미망인 등처럼 성차별적인 의식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단어를 여전히 쓰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소속되어있는 ‘여성민우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초창기 여성들의 권익향상 운동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체성-여성을 붙인 단체가 필요했지만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 걸림돌이 20년 전 명명된 단체명의 ‘여성’이라는 단어이다.

여성들만 참여하고 있을 거라는 여성단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단체명을 바꾸거나 버릴 수가 없어 고민 끝에 ‘차별없는 세상을 연다’는 의미의 ‘여는’이라는 성별보다는 활동이 더 부각되는 새로운 별칭을 짓기도 하였다.

외부 강의에서 이런 사례를 들면 혹자는 단어를 바꾼다고 뭐 달라지겠느냐, 충분히 양성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이제 단어까지 지적질이냐 등 우려와 반발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차별적인 단어에 문제제기를 했던 미국의 시의원의 말처럼 단어를 바꾸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인권도시, 여성친화도시를 선언한 광주가 관심 가져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조례 등 행정에서 쓰는 공문서의 단어에서부터 성 중립적인 말로 바꿔 쓰기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떠오는 단어로 지금 추진 중에 있는 옴부즈만(ombudsman) 제도의 용어도 옴부즈(ombuds) 혹은 다른 적절한 말로 바꿔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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