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진실
솔개의 진실
  • 류제경 전남 고흥교육지원청 교육장
  • 승인 2013.01.29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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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제경 고흥교육장

식후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인터넷을 주유하고 있는데 학창시절 즐겨 불렀던 이태원의 ‘솔개’가 눈에 띄었다. 노래를 듣고 어린 시절 우리 집 닭을 이따금 채갔던 솔개의 모습을 보려고 관련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부끄러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령받아 교단에 처음 섰을 때를 회고해 보면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일들을 참으로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다들 장년의 길로 들어섰을 당시 제자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담임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 지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교단의 무거움과 교직의 두려움이다. 일생을 제자들에게 평가 받으며 살아가는 교직은 그래서 높은 사명감과 깊은 소명의식 없이는 가서는 안 될 길이라는 것을 느낀다.

‘산소의 성질’을 가르칠 때, 수상치환으로 산소를 모아 깜부기불을 넣은 것 까지는 잘 했는데, 사그라드는 깜부기불이 산소와 접하는 순간 빛을 내며 잘 타는 것을 보면서 ‘산소는 이렇게 불에 잘 탄다’라고 가르쳤던 기억이 있다.

교육청 특수시책으로 ‘까맣게 쓰기’를 실시했고 장학지도 때 그 분량을 확인했는데, 선생님의 성화에 못 이긴 아이들이 연필 두세 자루를 한데 묶어 매우 효과적(?)으로 깜지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모른 척 지나쳤던 일도 생각난다. 부족한 담임의 무지로 인해 아이들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 초임교사 시절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세월들이 모여 교단에서 어느 정도 연륜이 쌓여갈 때 쯤, 교원연수에 강사로 나가는 일도 잦아지게 되었다. 어느 연수에서 ‘교원의 역할과 사명’을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고, 당시 활용한 자료가 ‘솔개의 선택’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솔개의 수명은 매우 길어 평균 80년을 산다. 그러나 솔개가 그렇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힘든 과정이 있다. 솔개는 자기 생의 반인 40여년 정도를 살게 되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닳아 무뎌지고, 날개는 오래된 털로 뒤덮여 날기조차 힘들게 된다. 솔개에게 생명의 위기가 닥쳐 온 것이다.

이 때 솔개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몸으로 40여년의 생을 마감하느냐, 아니면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대변신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느냐이다.

변화와 도전을 선택한 솔개는 높은 바위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튼다. 그리고 이미 능력을 상실한 자신의 구부러진 부리를 없애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며 바위를 사정없이 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부리가 다 닳아 없어지면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오듯 그 자리에서 강하고 튼튼한 새 부리가 자라난다.

그런 후 새 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하나씩 뽑기 시작한다. 낡은 발톱을 뽑아버려야 새로운 발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거워진 낡은 깃털을 하나씩 뽑아버리면 그 자리에서 새싹처럼 새 깃털이 나오게 된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생사를 건 130여 일의 사투를 겪고 새롭게 변신한 솔개는 다시 40여년의 생을 더 살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변화를 위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맞게 된다. 그랬을 때 용기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고 새롭게 거듭 날 수 있다. 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새로운 삶을 위한 자신의 변화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용기 있는 선택과 결정은 바로 자신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강의를 하는 자신도 강의에 취하고 솔개의 선택에 또다시 감동해 열변을 토했다. 그때 필자는 선생님들께 당부한다.

인간도 솔개의 선택을 배워야 한다. 우리도 40살이 되면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이다. 그래서 기억력도 떨어지고, 생각도 얕아지고, 사고도 굳어지고, 창의적인 안목도 둔감해지고, 삶의 활력도 떨어진다. 인생 40은 삶을 리모델링해야할 중대한 결정의 시점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나머지 반평생을 새롭게 살아가려면 솔개가 자신의 낡은 부리와 발톱과 깃털을 모두 뽑아내버렸듯이 우리 자신의 낡고 나태한 정신과 육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

자신의 쇠약해진 육체, 낡은 사고, 무뎌진 정신을 교체하는 작업을 이제 시작하자. 특히 교직에 몸담으면서 생긴 매너리즘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환골 탈퇴해 교직사회의 중견 간부로써 후배들의 본이 되도록 하자.

솔개 이야기는 비단 연수에서 뿐만 아니라 교단에서, 또는 신문, 방송에서 많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목사님의 설교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아무 생각 없이 예의 연수에서 그 자료를 인용하며 변화와 도전을 강조했던 것이다.

미물인 솔개의 선택과 변신에 공감하며 자신의 변화를 다짐하는 연수생들을 보면서 강사로서의 뿌듯한 자부심까지도 느껴진다.

오늘 인터넷을 통해 확인된 솔개의 실체는 필자가 알고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솔개는 비교적 오래 사는 맹금류에 속하긴 하지만 기껏해야 20여년 정도 밖에 못산다고 한다.

그리고 조류는 겨울잠을 자는 파충류나 포유류와는 달리 아무것도 먹지 않고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솔개는 부리가 망가지면 먹이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동물생태학을 전공하고 한국조류학회 회장을 지낸 구태회 교수(경희대 환경·응용화학대학장)은 솔개의 생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개의 생태에 관한 이런 이야기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부리가 재생되어 다시 길어난다는 것은 생명체에서 만무한 일이며, 따라서 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가 부리를 부분적으로 다쳤을 때 이따금씩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는 것은 나타날 수는 있으나, 생태학적으로 부리가 다시 날 가능성은 없다.

생명체로서 한번 살았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며, 피부가 각질화 되어서 만들어진 기관이 부리인데 부리를 다쳤을 경우 재생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발톱이 다시 만들어지는 경우는 있다.”

결국 ‘솔개의 선택’은 우화 식으로 만들어진 허구였던 것, 그런데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솔개 이야기를 우화로 만들어 사용하려면 특정한 개별 솔개를 의인화했어야 오해하지 않았을 텐데 모든 솔개가 그런 것인 양 만든 바람에 그것을 인용한 많은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진실인양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확인해 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것을 사실인 양, 진실인 양 무책임하게 거짓말로 연수생들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연수생들은 또 누구에겐가 솔개의 이 거짓말을 감동적으로 전했을지 모르는데 이를 어찌해야할지. 잘못을 용서받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

이처럼 가르치는 자의 언행은 자신의 삶을 평생 구속할 뿐만 아니라 배우는 이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니 그 자리는 참으로 무겁고도 두렵다.

높은 도덕성이라는 씨줄과 깊은 전문성이라는 날줄에 의해 엮어지는 교단은 그래서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임에 틀림없다.

2월, 졸업으로 제자를 내보내고 또 새학년을 준비하는 2월의 교단은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솔개처럼 높이 그리고 멀리 비상하는 아이들의 꿈을 만들기 위해 교단의 2월은 참으로 중요하다.

교육에 있어서 시행착오는 범해서도 안 될 것이고, 잘못된 가르침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머지않아 시작될 1년 계획을 튼실하게 세우고, 교사 자신을 새롭게 갈무리하는 뜻 깊은 2월이 되어야겠다.

머지않아 교정의 양지바른 곳에서는 수선화의 노란 입술이 은은하게 봄의 향기를 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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