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구조 발견 60주년, ‘생명의 암호’ 어디까지 해독됐나?
DNA구조 발견 60주년, ‘생명의 암호’ 어디까지 해독됐나?
  • 이재의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3.01.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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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라는 말을 요즘 누구나 보통명사처럼 쉽게 사용한다. 그러나 1953년 4월 과학잡지 ‘네이처’에 왓슨과 크릭 두 명의 영국 과학자가 기고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을 때까지만 해도 이 단어는 소수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전문용어였다. 올해는 DNA구조 발견 60년째 되는 해다. 그 사이 생명에 대한 인류의 관념은 크게 바뀌었다.

왓슨과 크릭, 생명에 대한 기존 관념 바꿔

모든 생명체는 수명이 다하면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세대를 이어 가며 지속된다. 생명을 영구히 지속시키는 방법이 ‘유전’이다. 유전을 담당하는 핵심 물질, 즉 유전체가 DNA다. 생명의 씨앗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DNA는 생명의 모든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DNA는 우주에서 생명체가 시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물질이다.

예전에는 유전체가 뇌나 심장 같은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드는 단백질일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왓슨과 크릭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다양한 추측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포 핵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DNA의 모양이 이중나선형 구조이고, 그 안에 엄청난 양의 생명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DNA를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모든 세포 핵 속에는 각각의 DNA가 존재한다. 따라서 세포 하나하나가 유전의 단위이고, 생명의 주인이다. DNA만이 생명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고, 이 설계도에 따라서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모든 생명현상은 DNA 속에 담겨있는 4개의 글자, 즉 ‘염기’의 배열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이게 DNA의 중심이론, 소위 ‘센트럴 도그마’다. 컴퓨터의 중앙정보처리장치는 DNA의 센트럴 도그마를 모방한 것이다.

DNA는 어떻게 생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과일의 씨앗처럼 단단하여 중요한 정보를 잘 보관할 수 있고, 엄청난 정보량을 아주 작은 공간에다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활용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만들고 있다.

최초의 DNA, 고름에서 발견

유전자의 존재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스위스 생리화학자인 프리드리히 미셰르다. 1860년대 미세르는 수술 환자의 붕대에 묻어있는 고름에서 백혈구 세포를 채취하여 단백질을 추출하던 중 이상한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단백질 분해효소로도 분해되지 않는 인산 성분이 많은 물질이었다. 미셰르는 이 물질을 뉴클레인(neclein)이라 명명했다.

이게 오늘날 DNA다. 안타깝게도 뉴클레인의 발견은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다. 미셰르 자신도 뉴클레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그때로서는 알 수 없었다. 뒤이어 오스트리아 수도사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했다. 완두콩 교배를 통해 부모세대의 형질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후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1909년 처음으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인자’가 ‘유전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렇지만 ‘유전자'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1943년 미국 세균학자 에이버리가 병원성을 가진 세균실험을 통해 드디어 유전자의 정체가 DNA라는 사실을 밝혔다. 열로 죽은 폐렴균에서 어떤 물질이 병원성이 없는 폐렴균으로 전달되자, 갑자기 병원성이 생기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 물질을 분석하자 DNA가 나왔다. 즉 죽은 폐렴균의 DNA가 병원성을 유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단백질이 유전자라는 주장이 훨씬 우세했다. 생명과학의 최대 진리를 규명한 에이버리지는 잘못된 관념의 벽을 넘지 못해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한 불운한 과학자로 남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왓슨과 크릭이 유전자의 나선형 이중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받았다. 그들의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생명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질병 극복의 새로운 차원

DNA를 연구하면서 생명의 수수께끼가 술술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질병의 원인이 속속 밝혀지면서 새로운 치료법이 다양하게 개발됐다. 1993년 카리 물리스와 마이클 스미스는 DNA를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중합효소연쇄반응 기술을 개발했다. DNA를 이용한 생명공학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처럼 공룡의 복제 가능성도 점쳐졌다.

줄기세포를 통한 불치병 치료, 맞춤형 의약품 개발 등 첨단의료기술도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한 친자확인, 범죄수사를 위한 유전자 지문활용 등 DNA의 응용범위도 차츰 넓어지고 있다.

1985년 DNA에 나노기술이 접목되면서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된다.

‘DNA 오리가미’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일본의 종이접기 놀이 ‘오리가미’와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험관에서 DNA가 일정한 조건만 갖춰주면 자기조립(self assembly) 원리에 따라 스스로 단백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아직 이 기술이 완벽하지는 않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을 이용하여 치료 약물을 탑재할 경우 암세포 등 질환 부위에 정확하게 약물을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DNA컴퓨터가 개발된다면 양자컴퓨터보다 훨씬 방대한 정보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3년 완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 Project)는 DNA연구에서 새로운 획을 그었다. 인간의 DNA 정보를 모두 해독했는데, 30억 개의 염기에서 실제로 유전에 영향을 미치는 DNA는 3만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식물게놈 연구도 시작됐다. 벼, 옥수수 등 주요 작물부터 각종 약초까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면 의학 뿐 아니라 바이오에너지, 식량 등 인류가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DNA에 대한 탐구가 깊어질수록 더 많은 의문점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정크DNA’나 단순히 복제과정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RNA’가 사실은 DNA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부모에게서 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적절한 식품 섭취나 꾸준한 운동 등 환경을 변화시키면 암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아냈다. 후성유전체학의 연구 성과다. 지난 60년 동안 DNA연구가 본격화된 이래 생명의 비밀이 많이 밝혀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밝혀야 할 부분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만큼 생명은 신비롭고 오묘한 영역이다.

‘생명의 설계도’ DNA란?

DNA는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약자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 24개 글자들이 모여 단어를, 단어들이 모여 의미를 전달하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이에 비해 우리 몸은 염기라고 불려지는 4개의 글자만으로 만들어진다.

한글과 비유하자면 4개의 DNA 염기는 자음과 모음에 해당하는 글자이고, 단백질은 단어이며, 세포는 문장이다. 4개의 염기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으로 일종의 화학물질이다. 염기들은 이중나선의 사슬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DNA 속에는 단백질의 설계도가 들어있다. DNA가 가진 한 세트의 유전정보를 ‘게놈’이라고 한다.

각 세포 속에는 2세트의 게놈이 46개 염색체에 나뉘어 들어가 있다. 이중나선의 지름은 2나노미터(10억분의 1m)로 매우 작은 물질이다. 사람 한명은 대략 60조 개의 세포가 있다. 각각의 세포 핵 속에 DNA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세포 하나하나가 생명의 설계도를 각자 가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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