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기자들은 악랄하다고 했다는데
박근혜, 기자들은 악랄하다고 했다는데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2.11.28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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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국민통합? 언론 비판도 수용못하면서 무슨?

"악랄하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면접장에서 하는 구직자에게 어느 면접관이 합격점을 줄 수 있을까?

<프레시안> 의 전홍기혜 정치팀장이 쓴 데스크칼럼의 첫마디이다. 이 칼럼에서 전 팀장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가운데 언론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6일 밤 '국민면접'이라는 형식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TV 토론을 가졌는데 그것이 정말 면접이었다면 그녀는 당장 취업 탈락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고 평가절하한다.

▲ 국민면접을 받은 자리에서 기자는 악랄하다는 발언을 한 박근혜 후보는 취업면접이라면 이미 탈락했을 것이라는 평가이다./사진 @프레시안
박근혜에겐 기자는 악랄하다

박 후보는 '국민면접'을 시작하기에 앞서 "꼭 합격점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언론을 상대로(본인은 일부 언론이겠지만) '악랄'이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한 것은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TV토론은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벌인 TV 토론의 반론권 차원에서 상대 후보 없이 진행하는 박 후보의 '셀프 토론'이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논쟁이 예고된 행사였다. 모든 것을 떠나, 박 후보의 이날 토론은 '악랄' 이 한 마디 만으로도 전 팀장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는 반응이다.

박 후보의 이 발언은 최근 일부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재래시장에서 꽃게 등을 사고 돈을 지불하려는 사진, 고령의 여성 유권자가 반가워 악수를 하려는데 손을 뒤로 숨기는 사진이 보도된 경위를 사회자가 묻자 박 후보는 그때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언론을 통해) 악랄하게 유포됐다"고 말했다.

두 장 사진이 기자와 그 기자가 속한 매체가 의도를 갖고 찍고 보도한 "악랄한" 기사라는 주장이다. 한 누리꾼은 "착한 후보 옆에 악랄한 기자들만 있는 이유가 뭐냐"고 비꼬기도 했다.

기자는 '병자', '개XX', '머저리'?

전 팀장은 과거 박 후보의 발언록을 들었다. 박 후보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충격적' 발언을 꽤 많이 했다는 것이다. 평소 절제되고 정제된 화법을 쓴다는 그답지 않은 신경질적인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에를 들어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병 걸리셨어요?"라고 반문한 일이 대표적이다. 그런가하면 "토 달지 마세요",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 "저랑 지금 싸우자는 건가요?" 등도 박 후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게 기자에게 하는 발언이라면 대선후보로서의 언어영역에 과락점수를 받을만하다. 그래서 진 팀장은 설전이 오가는 상황에서 나온 말도 아니고 단지 박 후보가 껄끄러운 질문을 던졌다는 이유로 나온 대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자면,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 팀장의 칼럼을 읽어보자.

정치인에게 언론이 불편하고 껄끄러운 존재라는 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나라 만의 특수한 상황도 아니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시달리다 "선 오브 비치(son of bitch)"라는 말이 튀어 나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부시 전 대통령도 대선 유세장에서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뉴욕타임스> 기자를 보고 "메이저리그 급 머저리"라고 비아냥거려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박근혜, 언론을 보는 시각 바꾸길

한국의 정치적 갈등 정도를 보건데, 여당 대선후보 입장에서 야당의 비판이 마냥 참고 견딜 만한 수준은 아니다. 아마 당사자에겐 비난, 더 나아가 인신공격이라 여겨질 만한 내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야당의 주장을 보도하는 언론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일지라도 자신을 담당하는 기자가 불편한 나라 만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라 할 수 있다. 권력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론이 더 이상 두렵거나 불편하지 않은 존재라면 권력, 언론, 둘 중 하나가 썩었기 때문이다. 둘 다 썩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실제 성과와 무관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 정책의 큰 방향으로 '언론은 언론의 길을, 정부는 정부의 길을 가자'고 설정했다. '권력의 감시견'으로서 언론의 역할을 인정하고 보장해주고, 언론도 딴 마음 먹지 않는 게,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이다.

이렇게 설정된 방향을 뒤집은 게 이명박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권력을 이용해 언론에 노골적인 '줄서기'를 요구했다. 친정부 인사를 방송사 사장 등 요직에 내리 꽂았고, 이에 반발해 '언론 파업'이 속출했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 기자들은 '해직 언론인'이 됐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 이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재현됐다. 하지만 '언론 장악'에 박차를 가하면 가할수록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는 굳어져 갔고, '성공한 정권'이란 평가에서 멀어지게 됐다.

어용언론은 여전히 권력 눈치보기

이명박 정권 덕분에 현재 박 후보를 둘러싼 언론 환경은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편들어 주는 언론이 훨씬 많다. 특히 '일등신문'을 자처하는 일간지와 그 계열사인 종편의 '편들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26일엔 안철수 전 후보의 한 지지자가 문재인 후보를 비난하며 투신 자살 소동을 벌이는 현장을 생중계하는 기상천외한 보도 행태까지 등장했다. '시청률 경쟁'과 '권력 눈치보기' 앞에 언론 윤리 따윈 벗어던진지 오래다.

이런데도 박 후보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악랄하다"는 극한 표현까지 쓰며 반감을 표출했다. 과연 그가 자신이 대선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100%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적임자일까. 혹시 박 후보가 생각하는 '국민통합'은 '내편 아닌 사람은 모두 입 다물라'는 의미는 아닌지 걱정된다.

참으로 전 팀장의 걱정에 동감한다. 박근혜 후보의 막말 발언이 게속될 때 이 나라의 권력계층이 갖고 있는 '귀위적인 태도'가 다시 한번 걱정된다. 그래서 안철수 전 후보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라 했던 충고가 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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