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도 나노기술 이용했다
옛사람도 나노기술 이용했다
  • 이재의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2.11.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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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생활 속 나노기술
미래 고부가가치 나노 산업의 보고

▲리쿠르고스 컵
고려시대 나무에다 새긴 팔만대장경이 썩거나 손상되지 않고 어떻게 천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오롯이 보존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나노기술의 신비가 숨어있다. 대장경 목판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숯을 천연 제습제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 보존,
나노 구멍 숯을 천연 제습제로 활용

숯은 마치 솜처럼 공기 속에 섞여 있는 미세한 물방울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강하다. 나무를 태우면 수분이 증발하고 숯이 만들어진다. 스펀지 골격과 같은 모양으로 수많은 섬유질 탄소구멍이 약 1마이크로미터, 즉 1,000나노미터 두께로 뭉쳐있는 구조체이다. 이 탄소 골조 사이사이에 직경 약 2~5마이크로미터 정도의 빈 공간이 만들어진다.

참나무 숯 1그램의 탄소구멍이 만들어낸 빈 공간의 표면적을 모두 합치면 약 300제곱미터나 된다. 한 변의 길이가 4센티미터인 숯 한 개의 직육면체 속에 광주 월드컵경기장만한 크기의 널찍한 표면적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숯덩이 내부에 미세한 그물망처럼 촘촘히 만들어진 이 넓은 면적으로 수분과 먼지가 강력하게 흡수된다. 물체가 나노미터 스케일로 작아지면 표면적이 크게 증가한다는 나노세계의 법칙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나노세계의 이론적인 배경까지야 그 당시 지식수준으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겠지만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되돌아보니 그 원리가 나노기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런 원리를 발전시켜 숯은 오늘날에도 반도체 공장의 공기정화나 수질정화용 첨단 필터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라쿠르고스 컵 등 현란한 색깔,
고화질 화면의 나노기술 원리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중세 고딕 성당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성당들의 중후한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하는 것은 유리창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무늬들이다. 유럽에서는 12세기 이후, 특히 빅토리아시대에 스테인드글라스 제조기술이 발전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유리에 함유된 금속 나노입자들의 조화 때문이다.

런던 대영박물관 한 귀퉁이에는 4세기경 로마에서 만들어진 리쿠르고스 컵(Lycurgus Cup)이 진열돼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이 컵은 1958년 대영박물관에서 수집한 것인데 신화 속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빛을 비추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신비한 컵’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조명 아래서 보면 초록 비취색을 띄지만 컵의 내부에서 빛을 쪼이면 아름다운 반투명의 붉은 루비색으로 변한다.

박물관 측은 리쿠르고스 컵의 신비를 벗기기 위해 과학자들에게 의뢰했다. 그 결과 컵의 재질로 사용한 유리에 포함된 금과 은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화학 첨가물을 사용하는 복잡한 제조공정에서 유리 속에 고르게 분산되어 있는 금 나노입자들이 만들어낸 마술이다.

금 나노입자들은 입사되는 빛에 포함된 파장이 서로 달라 투과와 반사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유리 속에 분산된 금과 같은 금속 입자의 크기가 나노미터 정도로 작아지면, 금속 안에 있는 자유전자들이 나노입자 속에서 특정한 파장의 빛에 대해 공진(resonance) 반응을 하게 된다. 특정 파장 근처의 빛은 투과를 덜하거나 반사각이 더욱 커진다.

사람의 눈에는 이게 마치 색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금속 입자가 커지면 공진현상도 사라지게 되며 금속 고유의 색상을 띈다. 금속 입자를 둘러싸고 있는 바탕재료의 종류에 따라서도 공진반응은 달라진다. 공작새의 아름다운 깃털 무늬도 보는 각도가 바뀌면 영롱한 무지개빛깔에서 비취색으로 형형색색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 비슷한 원리다.

공작 깃털에 고유한 색깔이 있는 게 아니다. 깃털이 미세한 나노구조를 띄고 있는데 여기에 쪼여지는 빛의 각도에 따라 반사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서로 다른 빛깔로 보여지는 원리다. 오늘날 이런 나노기술은 TV나 휴대폰 등 고화질 화면 디스플레이 패널 제작, 광통신 부품, 또는 DNA와 같은 단백질을 검출하는 바이오센서에 사용되는 형광물질로까지 발전되면서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마야블루’의 신비,
나노클레이 자동차 신소재 기술로 발전

멕시코 마야문명의 신비 가운데 하나로 전해져 오는 것은 ‘마야블루(Maya Blue)' 염료다. 8세기 경 만들어진 마야시대 조각품이 색이 바래지 않고, 지금도 고운 청색을 선명하게 띄고 있다. 마야블루 염료는 강한 산에도 부식되지 않는 등 안정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각종 최신 과학분석 장비들이 동원됐다.

그 결과 당시 마야인들이 살던 지역에 널리 분포된 팰리고르스카이트라는 진흙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진흙에는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들이 수없이 많이 분포돼 있었다. 그 구멍 속에 물이 들어있는데 진흙을 적절한 온도로 가열하면 물이 수증기로 빠져나가고 구멍들은 빈 공간으로 변했다. 여기에 인디고라는 청색 염료를 섞으면 이 공간 속에 염료가 들어가 강한 화학결합을 한다. 화학결합을 통해 안정화된 염료는 오랜 세월 비바람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야블루’의 신비에서 비롯된 나노기술, 즉 진흙에 있는 나노미터 크기의 균질한 다공성을 이용해서 요즘은 ‘나노클레이(Nano Clay)’라는 나노복합소재를 만드는 데까지 발전했다.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에서 처음 개발한 나노클레이는 100나노미터 이하의 알갱이나 그 알갱이들이 일정한 규칙을 띄면서 뭉쳐진 클러스터 형태를 지닌 세라믹 분말이다.

일반적인 진흙 점토질(Clay)에 비해 강할 뿐 아니라, 연하게 휘어지는 성질도 있다. 이런 다양한 물성 때문에 뛰어난 복합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층을 이루고 있는 구조의 점토 사이에 고분자 물질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나노클레이는 세라믹과 고분자 물질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어 강도가 강한데다 가볍기 때문에 독특한 신소재로 주목받는다.

특히 어떤 모양이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고분자의 뛰어난 성형성과 경량 특성, 세라믹의 우수한 강도가 결합돼 자동차부품소재, 반도체소재, 연료전지 및 2차 전지소재, 화장품소재, 촉매, 식품용 포장소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전망이다. 도요타는 자동차용 나일론 클레이 복합소재를 개발했고, 듀퐁이나 하니웰 등 다국적 화학회사들도 수지, 필름 등 나노신소재 개발에 적극 나서는 추세다.

규조토 나노실리카 화약 운반체에서 화장품 소재로 변신

화약을 발명한 노벨은 자연이 만든 나노 다공체인 규조토를 이용해 큰 돈을 벌었다. 화약의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은 흔들면 폭발성이 강해져 운반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무상자에 톱밥을 가득 채워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했는데 매우 불편했다. 나중에 화약공장 옆에 매장돼 있던 규조토라는 흙을 톱밥 대신 사용하면서 니트로글리세린의 안전성이 떨어졌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규조토는 물속에 떠돌아다니는 매우 작은 해양 미생물 식물성 플랑크톤인 규조류(돌말)의 껍질로 이루어진 퇴적물이다.

백악기에 크게 번성했는데 이때 퇴적되어 두꺼운 지층을 이룬 것이다. 규조토는 숯과 마찬가지 나노골격을 이루고 대부분 공기로 채워진 다공체다. 마치 땅콩 껍질처럼 오돌토돌한 모양의 미세한 구멍을 가진 돌말이 만들어낸 나노 다공체는 물이 잘 빠지는 성질이 있다. 규조토의 이런 성질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맥주에서 0.5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필터로 사용해 왔다.

또한 열을 차단하는 단열재와 연마제 등의 첨가제로서 산업적 활용가치도 높다. 돌말의 세포를 감싼 갑옷은 실리카 성분이며,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구명들이 무수히 정렬된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규조토의 나노구조, 즉 나노스펀지를 모방해 에어로겔이라는 꿈의 신소재가 만들어졌다. 가볍고 투명하며, 강도가 강한데다 열전도성도 매우 낮아 LNG를 싣고 다니는 배의 저장시설 등 극한 저온 저장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미세한 먼지를 제거하는 필터, 약물전달체, 자외선 차단 유리소재 등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왕겨실리카,
의료용 생체소재 등 개발 본격화

벼의 껍질인 왕겨에서도 규조토와 비슷한 나노 다공성 실리카가 10%이상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 밝혀졌다. 약 4나노미터의 나노 다공체다. 왕겨나노실리카는 전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한 전학제 박사와 제자인 한종수 전남대 화학과 교수가 제조기술에 대한 특허를 냈다. 필자가 소속된 나노바이오연구센터는 지난 10월 농림부 산하 농림기술실용화재단에서 2억원의 연구자금 지원을 받아 한 교수 연구팀과 함께 왕겨에서 나노실리카를 대량생산하여 산업화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시작했다.

실리카는 화장품 첨가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 모 유명 화장품 제조회사는 왕겨나노실리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존 실리카와 달리 천연물에서 뽑아낸 나노 물질이기 때문에 기존 실리카를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는 고급 실리카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나노바이오연구센터의 연구개발에 큰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치약 첨가소재로도 관심을 끌고 있고, 실리카의 나노구조체가 생체적합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세포의 증식을 돕는 의료용 생체소재 표면개질 재료로 이용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나노기술은 옛 사람들 생활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용되어 왔다. 다만 그때는 나노기술의 개념이 없었고, 나노물질을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원자현미경 등 과학 장비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경험적인 지혜로만 전수 발전돼왔을 뿐이다. 옛사람 생활의 지혜 속에 미래 나노기술의 씨앗이 이미 풍부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씨앗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찾아내서 현대적인 나노기술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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