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여성운동사 18>호남 최초의 여의사 현덕신(3)
<광주전남여성운동사 18>호남 최초의 여의사 현덕신(3)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2.11.08 0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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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딸들을 길러온 ‘어머니’

▲현덕신 여사
아직 무등산에는 단풍이 울긋불긋한데 쌀쌀한 바람에 겨울이 다가온 듯하다. 호남 최초의 여의사였던 현덕신 여사는 1936년 40세의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외로이 부는 쌀쌀한 바람처럼 외아들 최상옥을 혼자 키워나가야 했다.

남편을 잃은 허탈감도 잠시 강인했던 현덕신 여사는 혼자서라도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로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게 된다. 그 이후 그녀의 애정이 담긴 병원일과 더불어 광주YWCA의 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남편 사별 후, YWCA 활동에 주력

당시 광주 YWCA 제 5대 회장이었던 김정현을 도와 현 여사는 부회장을 맡고 여성의 지위향상과 개화를 위해 누구보다 발이 닳도록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또한 광복을 맞이하기 직전이기에 여성들에게는 독립을 위한 투쟁정신을 심어주고 기독교 전도 사업에 주력했다.

이윽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다음날인 16일 광주 금정교회(현 제일교회)에는 김필례, 김정현, 조아라 등 여성사회 지도자급 70여명이 모여 건국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 자리에 모여 여성계를 이끌었던 이들은 “일제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여성들도 새롭게 건국준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여성의 권리도 찾을 수 있어”라고 이구동성 목소리를 하나로 모았다.

당시 여성들은 주로 ‘광주제국관(현 무등극장)’을 이용하여 회장단 선출, 확대회의, 시국대강연회 등 모임의 장소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 여사는 건국부녀동맹 초대 부회장에 선출되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3대회장, 대한부인회 전남지부 회장을 도맡아 오면서 문맹퇴치, 공창폐지와 윤락여성 선도 및 미연방지 등 활발한 여성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충장로 1가에 위치한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1948년 광주제국관 모습 (광주 제국관-동방극장-무등극장-現무등시네마)
남다른 유아교육 인식 가져

한편 그녀는 여성교육의 일환으로 ‘유아 교육’도 중요하다는 남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 최상옥은 그러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948년 병원 옆에 신생유치원을 설립하고 60여명의 어린이를 입학시켜 유아교육의 터전으로 이용했었다.

현덕신 여사는 이 유치원을 찾아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뛰는 모습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여성단체 회원들의 분열로 인해 받은 상처를 이곳에서 달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도중 6.25전쟁으로 우리 민족들에겐 또다시 시련의 아픔이 다가오게 됐다. 현 여사도 아들을 이끌고 나주로 피난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돌아와 신생보육학교를 세워 보모, 교사 양성의 길을 닦는데 앞장섰다.

또한 부인회 사업으로 군경원호사업, 전쟁미망인 재활사업, 고아 선도 및 구제 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그녀는 이들의 생계대책을 마련해주기 위해 각종 기술교육을 시키면서 그들을 수용하고 보호했다.

1955년부터는 병원을 그만두고 유치원과 교육 사업에만 전념해 열정은 더욱 불타올라 모든 힘을 집중할 수가 있었다.

▲광주공원 부근 어린이 공원에 위치한 '어린이 헌장탑'. 본래 광주공원 중앙광장에 있었지만 1975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평생토록 여성운동, 유아교육 전념

1959년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광주공원에 ‘어린이 헌장탑’을 세워 콩쥐팥쥐, 금싸라기 은싸라기 등 어린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등 어린이 보호운동과 문화운동에 앞장섰다. 본래 ‘어린이 헌장탑’은 광주공원 중앙 광장에 세워져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광주공원 중앙광장에는 현충탑이 우뚝 서있고 ‘어린이 헌장탑’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줬다.

그런데 광주공원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에 조그마한 어린이 공원이 보였다. 먼발치에서 ‘어린이 헌장탑’이 보였다. 어린이 헌장탑은 1975년 이곳으로 옮겨지게 됐으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홀로 서있는 모습이 가을 낙엽과 함께 쓸쓸해보였다.

그토록 여성운동과 유아교육에 힘써온 그녀는 그동안 정신과 육체에 많은 무리가 오게 됐다. 현덕신 여사는 1960년 가을 어느 날 갑자기 유치원에서 쓰러지게 되고, 병세가 악화되어 투병생활 3년 끝에 1963년 11월 27일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렇게 평생을 여성운동과 유아교육이 몸 바쳤던 그녀의 비문에는 “여성을 위한 횃불-한 지사의 슬기로운 아내, 한 아들의 알뜰한 어머니, 그리고 나라의 딸들을 길러 겸허한 삶을 다 한 분이다”라고 새겨져 있어, 광주 여성운동사에 잊어서는 안 될 한분 중에 손꼽히고 있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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