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래[秋懷]
가을 노래[秋懷]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2.10.2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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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1801년은 다산의 나이 40세, 참으로 왕성한 나이에 천하라도 요리할 온갖 지혜와 능력을 지닌 유능한 관료였건만, 다산은 역적 죄인이 되어 멀고먼 경상도의 바닷가 마을, 포항 곁의 장기(長鬐)라는 벽촌에서 귀양 살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도 가을이 되면 마음이 서러워지기 마련인데, 천리타향의 외로운 신세로 얽매어 지내는 죄인의 가슴이야 오죽했으리요. 이 시절이야말로 다산 생애에 가장 비참하고 가장 괴롭던 시절이어서 이때에 지은 다산의 시는 절창(絶唱)도 많지만 애간장 타는 압제인의 비애와 슬픔이 역력히 드러난 시가 많았습니다.

  「추회(秋懷)」라는 제목의 여덟 수의 시는 어느 것 하나 애절한 내용이 아닌 것이 없지만, 외로운 유배객이 벗 삼아 지내던 제비들이 강남으로 떠난다는 구절에서는 유배지에 혼자 남아 슬퍼하는 다산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게 해줍니다.

         제비가 새끼와 함께 멀리 날기 익히더니   / 燕母將雛習遠飛
         고향에 가고파서 검은 옷을 입혔네          / 七分歸思著烏衣
         비비배배 지껄임이야 모두가 헛소리지     / 喃喃剌剌皆瞞語
         가을바람만 불어오면 날 버리고 가려면서 / 纔得秋風棄我歸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으면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열심히 먹이 날라다 먹이던 제비를 벗 삼아 시름을 이겼는데, 제비는 다 커버린 새끼를 까만 색깔로 옷을 입히고, 파닥파닥 날기에 힘쓰더니 공중으로 나는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을 것입니다.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이 불자, 새끼들 모두 어미로 크더니 고향생각 잊지 못하고 떠나가는 모습을 다산은 바라보면서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비들은 벗 삼았던 유배객도 팽개치고 고향을 찾아가는데, 얽매인 몸으로 자유를 잃은 다산은 어떡해야 했을까요.

제비들은 수만리 먼 강남으로 떠날 수 있건만 천리도 안 되는 고향을 찾아가지 못하는 다산의 가슴은 서러움을 이길 수 없었나 봅니다. 본디 가을이란 서글픈 계절이어서, 가을 빛, 가을 소리 모두가 인간의 원초적 향수를 자아내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 이외의 7수의 시에는 노오란 탱자이야기, 가을의 바다에서 잡히는 꽃게, 계절을 알리는 풀벌레인 후충(候蟲)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낚시질 나가려는 마을 영감이 애들 다려 귀뚜라미를 잡아오란다는 이야기까지 구성지게 시에 옮겼습니다. 사물이나 물태(物態)까지 핍진하게 묘사하는 다산의 시 솜씨는 언제 읽어도 우리를 감동시켜주기에 충분합니다.

  서럽고 슬픈 가을날이나, 멀고 먼 타향의 귀양살이에도 다산은 시를 쓰고 저술에 독실 하느라 끝내 비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몸이 더욱 곤궁해질수록 학문은 더욱 정밀(身益窮 學益精)”했다는 위당 정인보의 말처럼 학문의 대업을 완성해내는 위대한 인간으로 다시 설 수 있었습니다. 역시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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