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대통령을 기대한다
이러한 대통령을 기대한다
  •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2.10.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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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진 서울대교수

요즘 TV에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가 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101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남자라면 이러 저런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물이다. 그러나 이 프로의 대중적 인기가 고만고만한 이유는 실제 상황을 강조하다 보니 현장성은 있지만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의 위치에 걸맞은 자질을 포함하여 그에 기대되는 역할을 자격이라 정의할 수 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세 사람의 유력 후보자에 더해 여러 사람들이 자의, 타의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언제나 선거철이면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출마자마다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갖고 나서겠지만 어느 면으로 보아도 이른바 자격요건에 맞지 않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균형감과 합리성을 갖춘 지도자

최근 윤여준씨가 쓴 ≪대통령의 자격≫은 올 대선에서 어떤 지도자를 우리가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 유용한 시각과 지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국민생활을 중심에 둔 ‘균형감과 합리성’을 지닌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그의 논지에 동의하고 싶다. 세계화 시대에는 특정 이념에 포획되기 보다 극좌와 극우가 아닌 이상 다양한 이념적 배경을 갖는 여러 정책들을 국민생활의 개선을 위해 배열할 수 있는 통합적 구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뜨거운 감자라 할 복지를 보기로 들면 성장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세제개혁과 고용창출에 대해 실행가능하고 현실적합한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의 복지정책은 세부 실천방안이 없는 공약(空約)에 가깝다. 이번 대선이 구호를 통한 이미지 경쟁으로 치닫다 보니 표심을 자극하는 발언은 있지만 검증할만한 공약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무술이 아니라 예술에 비유된다. 그것은 힘과 형(刑)으로만은 되지 않는 앎과 예(禮)를 필수로 하는 지배의 도(道)와 술(術)이다. 그것은 강제력에 의존하되 명분을 필요로 하며, 또한 책략에 의거하되 도덕을 밑바탕으로 한다. 바꿔 얘기하자면 명분과 도덕 없는 정치가 맹목적이라면, 강제력과 책략 없는 정치는 공허한 것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속성으로 인해, 정치란 실제에 있어 리얼리티와 유토피아가 공존하는 야누스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민주화이후에도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처럼 권위주의적 유제아래 지도자가 통치를 정치로 바꾸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정치는 예술이 아닌 무술로 퇴락했고, 정치인의 재생산보다 정략가들의 충원이 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결국 한국정치는 본질적으로 정략가들의 단원적 투기의 장이었지, 결코 정치가들의 다원적 경쟁의 장이 될 수 없었다.

올해 여러 나라들에서 국가 리더십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우리의 경우 새로 선출될 대통령은 적자생존으로 특징지워지는 세계화 시대의 격랑 속에 나라 안팎의 심대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자질과 역할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치·경제의 역학, 동아시아의 변화, 한반도의 위상을 꿰뚫어 보면서, 안으로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갈등을 통합하고 바깥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통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도전과 좌절로 점철된 근현대사 100년을 마감하고 한국의 꿈을 국민 모두에게 키워 줄 수 있는 개척자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혼(魂), 애(愛), 지(智), 덕(德). 공(公), 합(合)

우리에게 요구되는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과거를 담보로 하지 않고 국민에게 미래의 약속을 실현시켜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흔히 비전이란 안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을 말한다. 미래의 변화를 멀리 내다보면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 나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대통령의 덕목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혼(魂)과 애(愛)다. 한국인으로서의 얼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민족사의 영광과 애환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역사의식과 미래를 만들어주는 상상력의 밑거름이다.

둘째, 지(智)와 덕(德)이다. 세상사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많다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슬기롭고 올바르게 쓸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나아가 대도를 따르되 이해와 관용을 바탕으로 남을 아우르고 포용할 수 있는 품성을 가져야 한다.

셋째, 공(公)과 합(合)이다. 공동체의 유대와 결속을 위해서는 전체를 위하는 정신과 통합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이 사를 앞서야 법치의 근본이 세워지고 신뢰의 기틀이 바로잡힌다. 전체에서 부분을 생각할 때 또한 공생이 순리 아래 반목과 대립이 화해와 융합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대통령 후보자를 찾아야 한다. 미래 한국의 꿈을 열어 주는 역사적 상상력을 지닌 대통령이 나오길 기대한다.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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