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여성운동사5>광주의 어머니, 소심당(素心堂) 조아라(4)
<광주전남여성운동사5>광주의 어머니, 소심당(素心堂) 조아라(4)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2.07.01 2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운동에 뜨거운 열정으로 수난의 삶 살아

▲소심당 故조아라 선생
소심당 조아라 선생은 광주여성운동의 산증인이었다. 광주YWCA의 모든 일들 그리고 광주여성운동의 모든 일들을 시작하고 발전시켜왔다. 일제강점기 때는 폭압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렀고, 광복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인회에서 활동했다.

또한 광주학생독립운동 백청단 사건의 주역이었으며, 80년 5.18 민주항쟁 기간 중에는 수습대책위원으로 구속자와 부상자를 돌봐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애썼다. 이렇듯 여성의 몸으로 사회운동에 몸을 아끼지 않은 조 선생은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2003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소외된 자를 위해 봉사하는 종

조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2012년, 벌써 추모 9주기를 맞이한다. 살아계셨다면 탄생 100주년 기념식을 했을 터다. 또한 살아계셨더라면 노령에 관계없이 분명 여성권익 향상에 적극 나섰을 것이다.

평생을 Y운동과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에 앞장선 조 선생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은 조국의 평화통일이라고 한다. 1992년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여성토론회에 한국 여성계 대표로 참석하여 ‘통일의 물꼬’를 트는 일에 앞장섰다.

이처럼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던 그녀는 여성운동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가난하고 억눌린 소외여성계층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며 낮에는 미싱·자수를 가르치고 밤에는 글을 가르쳐 자활의 길을 열어줬다. 노인복지에도 늘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소유생활에 관해서는 사욕이 없는 빈털터리 인생으로 살아왔다.

한편 그녀는 조그마한 방을 마련해서 성빈여사와 계명여사에서 함께 생활했다. 인간미 넘치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상이었다.

YWCA에서 활동 중 69년에 조아라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된 YWCA 김갑숙 이사는 “조아라 회장님의 사회활동을 살펴보면 강인한 추진력과 남성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면이 많으셨다”면서 “하지만 평소에는 손수 옷을 재봉질로 고쳐 입는 검소함과 여름철이면 수박을 사서 Y식구들을 챙겨주면서 다정다감한 여성스러운 면도 많으셨다”고 말한다.

이렇듯 소심당은 지도자로서 강한 결단력을 가짐과 동시에 인자하고 남의 고통과 수난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면서 사회활동을 했다.

▲조아라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서재
▲조아라 선생은 평소에 미싱으로 옷을 고쳐입는 검소함을 지녔다고 한다. 사진은 조 선생이 생전에 입던 옷과 신발들.

시대적 사명을 다한 ‘소심당’

평소에 소심당은 관절이 좋지 않아 다리를 절뚝거렸다고 한다. 바로 80년 5.18민주 항쟁의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여 상무대에 수감된 것이 화근이었다. 그 당시 고문을 당해 좌골신경통 후유증이 생겨났다.

하지만 조 선생은 최후 진술에서도 조금의 굽힘도 없이 소신을 밝혔다. 그녀가 힘주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재판관들, 변호인들, 방청객들 모두가 강인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듯 조 선생은 5월 항쟁 때 죽음을 무릅쓰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군부에 의한 광주시민의 학살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숭고한 겨레사랑을 보였다. 험난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사회적으로 차별 시 된 여권의 신장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우며 사회의 정의를 위해 싸웠다.

소심당 조아라 희수기념문집에서 광주 YWCA 복지사업위원회 김영 총무는 “조 선생님은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눈물이 많으신 분이다”면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게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이웃의 고난에 동참했다”고 말한다.

한편 그녀가 받은 상은 국민훈장 모란장(1994), 광주시민대상(1988), 정일형 자유민주상(1998), 무등여성대상(1998), YWCA 전국대회 대상(2003) 등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조 선생은 척박하기만 했던 여성운동의 기틀을 마련해주는 이 고장에 빛과 같은 존재였다.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모두가 ‘소심당 조아라’를 영원히 가슴속에 기억하길 바란다./김다이 기자
 

▲광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소심당 조아라 선생이 광주를 대표하는 광주역 앞에 있는 모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