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의 왕도론(王道論)
맹자(孟子)의 왕도론(王道論)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2.06.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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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무 이사장

18세기 끝자락의 조선왕조 임금은 정조 대왕이었습니다. 비운의 왕세자인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세상을 뜨자, 아버지의 왕통을 이어받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영조의 세손이 되어 25세에야 임금으로 등극했습니다. 80이 넘도록 52년간이나 오랜 통치자이던 영조의 장기집권이 끝나면서 그래도 조선에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이던 때가 그때였습니다.

영특한 두뇌에 근면과 성실함까지 갖춘 정조는 등극하던 무렵이면 이미 높은 수준의 학문역량과 통치철학까지 제대로 터득하여 세상을 한번 변화시키려던 의욕도 있었습니다. 정조의 곁에는 믿음직스럽던 정치가 번암 채제공이 있었고, 뛰어난 학자이자 기획통이던 다산 정약용이 있었습니다.

정조의 가장 큰 꿈의 하나는 동양 유교사상의 궁극이던 왕도(王道)정치를 실현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어느 날 정조는 젊은 신하 정약용을 불러 맹자(孟子)의 왕도론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맹자는 공자 이후의 일인자이다. 『맹자』7편에는 맹자의 도(道)가 실렸는데 설명해보도록 하라.” 이런 질문을 받은 정약용은 「맹자책(孟子策)」이라는 논문으로 답변을 정리해놓았습니다.

유교의 왕도론은 맹자에 이르러 그 본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왕도론이 얼마나 간단한 원리이고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를 다산은 설명해내고 있습니다. “신(臣)은 일찍이 성현의 도통(道統)은 위로는 무왕(武王)에서 그치고, 아래로는 맹자에 와서 그쳤으므로, 그분들의 기상도 서로 비슷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지금 만약 맹자의 글을 가지고 무왕의 도를 구한다면 거의 잘못이 없을 것 입니다.”라고 전제하여, 요·순·우·탕·문·무·주공의 왕도정치는 맹자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맹자의 왕도론은 어떤 것일까요. “맹자가 평생 동안 참된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인 것은 곧 100리(里)의 땅에 왕도(王道)를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5묘(畝)되는 집터에 뽕나무를 심고, 닭이나 돼지의 번식 시기를 잃지 않으며, 상(庠)이나 서(序)의 학교교육을 신중하게 하여 효제(孝弟)의 뜻을 밝혀야 한다.”라는 등의 몇 구절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왕도정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그 큰 경국제세(經國濟世)의 논리가 참으로 별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의 농업국가, 집터와 집이 있으니 주거문제가 해결되고, 뽕나무나 목화를 심어 의복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닭이나 돼지인 가축을 때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길러내고, 상이나 서라는 학교에서 학문을 가르치며 효제의 윤리교육만 제대로 시키면 나라는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살아갈 집이 있고, 옷을 제대로 입고, 밥을 제 때에 먹을 수 있게 해주면 그것이 바로 왕도정치라는 것입니다. 그런 간단한 일도 않으면서 민간인 사찰이니, 자연환경 파괴니, 뇌물 먹고 감옥 가는 정치나 하고 있으니 세상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2,500년 전의 맹자의 그 간단한 왕도정치가 새삼 그립기만 합니다.

/다산연구소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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