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방장 수산큰스님 입적
백양사 방장 수산큰스님 입적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2.03.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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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다비식 거행 2천여 불자들 참석

(炬火)”

11일 오전11시50분 고불총림 방장 수산 큰스님의 다비식이 치러졌다.

이날 고불총림 백양사 연화대 다비장에 모인 2천여 스님과 신도들은 합장하며 “나무아미타불”을 독송하는 등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이날 큰스님의 떠나심을 하늘도 슬퍼한 것인지 하얀 눈이 흩뿌려졌다. 많은 신도들은 눈 속에 눈물을 흘리며 수산 큰스님의 웃음 영정사진을 보고 스스로를 달랬다.

수산 큰스님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10시 백양사 경내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수산 큰스님은 지난 7일 오전 8시44분 입적했다. 세수 91세, 법랍 74세.

큰스님은 입적에 앞서 “구십년 삶이 이 허공꽃과 같은지라, 오늘 환을 여의고 본가로 돌아가노라. 꽃잎 떨어져 흩날리며 까치 소리하는 가운데, 하하 웃고 한번 뒤집으니 공겁 밖이로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이날 영결식에는 눈발이 날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원로의원 월탄ㆍ고산ㆍ혜승ㆍ동춘ㆍ원명ㆍ명선ㆍ암도ㆍ법흥스님 등 종단 원로스님과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과 각 교구본사 주지 스님, 지용현 광주전남신도회장, 박준영 전남도지사 등 사부대중 2천여 명이 참석했다.

조계종 법전 종정은 원로의원 월탄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백암산에서 법풍을 휘날리던 백납(百衲)의 운수(雲水)가 백년(百年) 세사(世事)를 마치고 오늘 저 허공을 임운자재(任運自在)하게 활보하고 있다”면서 “이 산문(山門)에 들어와 평생을 반선반농(半禪半農)의 가풍 속에 천안(千眼)을 돈개(頓開)하고 불조대기(佛祖大機)를 한 손에 휘어잡으니 지혜(智慧)의 산(山)은 하늘 높이 솟았고 돈오뇌성(頓悟雷聲)은 천지를 진동케 했다”고 추모했다.

조계종 원로의회 의장 종산스님은 영결사에서 “오늘 큰 스님의 회상에 함께 한 후학들은 대종사의 지혜 그릇 본받을 수 있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한다”면서 “일행일행(一行一行)이 끊임없는 불사이셨던 수산 지종 대종사께서 남기신 일체의 성구에 사부대중은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한다”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추도사에서 “불교의 역할을 중생과 사회에 환원하여 꽃피우고자 하신 것은 수행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를 현시대의 불법홍포를 앞장서 일께우기에 충분했다”면서 “불조의 은혜를 갚고 시은을 저버리지 않는 것으로 후학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지용현 광주전남불교신도회장은 “우리 불자들은 큰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봉대하여 호남불교의 명성을 되찾고 나아가 정토세계를 이루는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추모하고 있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대종사께서 생전에 보여주신 화합과 근검절약의 정신이 사바세계에 널리 구현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다비식에 참석한 신도인 이순옥씨(49.여)는 "수산 큰스님은 생전에 한 번 밖에 뵌 적이 없지만 카랑카랑한 법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면서 "인연따라 떠나는 것이지만 청빈했던 큰스님의 떠남이 슬프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운구 행렬

영결식 직후 수산스님의 법구는 인로왕번을 선두로 200여 개의 만장이 호위하는 장의행렬과 함께 백양사 연화대 다비장으로 이운돼 안치됐다. 이어 사부대중이 애도 속에 불교전통 의식으로 다비식을 거행했다.
수산 큰스님의 49재는 백양사를 비롯하여 평생 수산 큰스님의 인연을 맺은 사찰을 돌며 진행될 예정이다.

초재는 13일 오전10시 고불총림 백양사, 2재는 20일 오전10시 영광 불갑사, 3재는 27일 오전10시 해남 미황사, 4재는 4월3일 오전10시 제주 법천사, 5재는 4월10일 오전 10시 서울 백운암 상도선원, 6재는 4월17일 오전10시 영광 불갑사, 7재는 4월24일 백양사에서 각각 봉행될 예정이다.

수산 큰스님은 192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6세 때 부모를 여의고 삼년상을 마친 뒤 백양사로 출가했다. 1942년 구족계를 받은 큰스님은 은사 만암 스님을 시봉했으며 완도 신흥사, 부안 개암사, 백양사, 불갑사 주지를 역임했다. 또한 종립학교인 정광학원의 이사장을 지내며 인재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수산 큰스님은 2004년 4월 만암, 서옹 스님에 이어 고불총립 백양사의 3대 방장에 오른 뒤 후학들을 이끌어 왔다. 스님은 평소 공심(公心)과 신심(信心)을 강조하며 반선반농(半禪半農)의 생활을 실천했다. 또 ‘선차(禪茶)’의 대가로 ‘선다일미(禪茶一味)’의 평상심을 바탕으로 정진해 왔다. /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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