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거판의 ‘판’의 의미는
<기자수첩> 선거판의 ‘판’의 의미는
  • 박재범 기자
  • 승인 2012.03.2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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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대표를 뽑는 지역의 축제로 불러야 할 선거를 우리는 흔히 ‘선거판’이라고들 한다.

판은 본래 ‘일이 벌어진 자리’ 또는 ‘그 장면’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투전판, 굿판, 싸움판 등 ‘판’이 들어간 단어가 떠올라서 그런지 그다지 좋지 않은 의미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선거와 함께 쓰이는 '판'도 혹시 좋지 않은 의미로 우리에게 자리 잡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선거가 한 달 남짓한 지금 자꾸 들곤 한다.

한 통의 전자우편이 도착했다. 내용인 즉 “남구의 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가 재산을 축척하는 과정에서 의혹이 일어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며 “재산 증식의 귀재인 모 후보를 철저히 배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 후보의 몇 년 전 재산 관련 의혹이 보도된 기사 3건까지 첨부돼 있었다.

무슨 연유로 전자우편을 보냈을까 하고 발신자의 연락처나 이름 등을 찾았으나 아무 것도 없어 “누구인지 연락해줄 것”을 부탁하는 회신을 보냈고 다음날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자는 “남구 주민으로 기사를 검색하다가 기사가 있어 작성하게 됐다”며 “왜? 지역에서는 이런 보도를 하지 않는가 싶어 보냈다”고 말했다. 메일 주소는 광주시청 기자실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순간 기자의 직업병(?)이 발병해 ‘사실과 다르다’는 느낌에 재차 정확히 말해줄 것을 요구하자 “나도 어디서 전해 받은 내용이다”며 “귀 신문사의 기사 밑에 있는 전자우편 주소를 보고 알았다”고 답해 말이 달랐다. 그 남자는 결국 “상대편 후보 지지자”라고 밝혔다.

이 메일이 정치부 기자들에게 대량으로 발송된 모양이다. 의혹 속의 주인공 캠프에서 해명하는 전화까지 올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의혹을 받고 있는 예비후보 측 관계자는 “어느 민주통합당 후보캠프에서 보냈는지 확인이 됐다”며 “명예훼손으로 법적인 조치를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평소 같으면 “진짜 그 후보가 비리의혹이 있었고 그걸 상대편 후보가 알리려고 다른 수를 쓰는 모양이다”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민주통합당의 경선과 관련해 동구의 한 목숨이 주검으로 발견돼 시민들이 커다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선거를 준비하는 자들은 그런 걸 느끼지도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에 허탈할 뿐이었다.

에~잇 ‘판’이 들어가는 문구 중에 ‘씨름 한 판, 축구 한 판할까?’라는 정정당당한 내용도 있는데 왜 이 놈의 선거와 함께 쓰인 ‘판’은 갈수록 구리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박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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