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그 시절 그 추억 10 - ‘신작’을 기다리던 곳. 비디오 대여점
아련한 그 시절 그 추억 10 - ‘신작’을 기다리던 곳. 비디오 대여점
  • 차소라 기자
  • 승인 2012.02.08 10: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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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쉬리 나왔어요?”, “나오면 저한테 제일 먼저 전화주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원하는 비디오가 나왔는지 물었다. 괜히 할 일이 없을 땐 비디오방에 가서 주인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추천 받기도 했다. 새로운 영화를 만난다는 기쁨에 비디오를 까만 봉지에 넣고 집에 가는 발걸음은 들떴다.

 

신작은 언제 나와요?

흑백으로 나오던 티브이(TV)가 형형색색 칼라로 바뀌던 80년대 초반에 VTR(비디오 테이프 리코더)도 등장했다. 1985년에는 전국적으로 4천여 개가 넘는 비디오 대여점이 생겼다. 대여점은 점점 늘어 89년엔 등록된 음반비디오업소가 1만7천7백여 개를 넘었다.

80년대 후반 VTR 보급률이 41%가 넘어가면서 비디오는 뗄 수 없는 국민의 ‘친구’가 됐다. 아이들은 대여점을 찾아가 만화 영화를 빌렸고, 어른들은 퇴근시간 후 여가를 즐기기 위해 대여점을 찾았다.

VTR이 없는 아이들의 경우 VTR이 있는 친구 집에서 한데 모여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도 보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도 하는 친목 모임도 가졌다. 비디오를 하나씩 빌려 돌려보기도 했다. 이처럼 비디오대여점은 사람들의 여가생활을 책임지는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특히나 영화관이 없는 시골의 경우, 대여점은 한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했다. 위지수(26) 양은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극장을 가기 힘들었다”며 “대여점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흥행했던 인기작은 대여점에서도 ‘기대작’이었다.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내리면 대여점에 불티나게 전화를 했다. 나오지도 않은 비디오를 예약하기도 하고 사람이 많이 밀린 경우는 순번을 정해 비디오를 기다리기도 했다.

인기 있는 신작은 예약으로 끝나지 않았다. 특정 비디오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다보니 ‘당일 반납’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하고, 대여점 주인들은 반납 시간이 1시간만 늦어도 전화로 반납을 재촉하기도 했다.

기다리다 못한 손님은 대여점에서 비디오가 반납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고, 끝까지 돌아간 테이프를 감아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하겠다는 손님도 많았다.

지금 만지러 갑니다
신작 외에도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던 장르는 ‘에로’.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다 보니 에로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찾아와 가게를 둘러보다 은근슬쩍 ‘19세 미만 대여금지’ 표시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에로물 코너의 주된 고객은 신혼부부와 미혼의 남자고객이었다. 특히나 갓 결혼을 한 신부의 경우는 여자가 주인인 대여점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 어른인 척을 하고 빌리려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지만, ‘매의 눈’을 가진 주인을 속이기란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영화제목도 손님의 이목을 끄는 요소였다. ‘지금 만지러 갑니다’, ‘황홀해서 새벽까지’, ‘굵은 악마’, ‘털민웨이터’, ‘니몸을 찾아서’, ‘동갑내기 밀애하기’ 등 패러디한 에로영화와 원작 영화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칫 에로영화를 잘못 빌렸다간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특정한(?) 부분만 테이프가 늘어나 재생이 용이하지 않은 영화를 빌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늘어난 부분도 하필이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니, 빌린 사람 속은 타들어갔다. 주인의 경우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그 많던 대여점은 어디로?
주택가 근처에는 꼭 있던 비디오 대여점은 컴퓨터가 보급되는 시점에서 찾기 힘들어졌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호황을 누리던 비디오 대여점은 가격을 서로 내리고,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폐업의 길을 걸었다.

특히 컴퓨터 보급 후 사람들은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하고 온라인 게임 등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기면서 대여점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았다. 94년 이후 점차 대여점 수가 감소하면서 97년 당시 영화마을 박상호 사장은 매일경제 인터뷰를 통해 “92~93년 3만8천개 수준으로 정점을 이룬 대여점이 현재는 2만개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이후 비디오 회사들도 자금난을 겪으면서 98년에는 비디오신작이 97년에 비해 50%나 감소했다.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대여점을 찾던 손님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대여점 주인들은 항상 영화를 봐야했다. 취향이 다른 손님들을 위해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손님들은 만족해했다. 영화도 보고 단골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영화평을 따져보고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즐겨 소소한 재미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마을 문예점 장미라(41) 씨

 "비디오 대여점이 어느샌가 추억으로"
▲ 요즘 비디오테이프 대여가 잘 되는지.
현재 만화 영화 몇 십장을 제외하곤 비디오는 다 처분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테이프는 처분하고 DVD만 남았다. 10년 전만해도 가게 한 귀퉁이를 제외하곤 비디오였다. 그러나 비디오를 찾는 손님들이 없어지면서 비디오의 자리도 줄기 시작했고 그 후 비디오와 DVD를 같이 구입했지만 2008년부터는 DVD 위주로 구매했다. 비디오테이프도 많이 생산되지 않고 크기 면이나 가격 면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

▲ 처분 후에 테이프를 찾는 손님은 없었나요
가끔 있었다. 1~2년 만에 오신 손님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봤다고 하시더라. 처분을 했다고 하면 손님들도 ‘하긴 요즘 누가 비디오 안 빌릴거에요. VTR 있는 집도 흔치 않은데…’라고 하신다. 그래도 처분하기가 아쉬워 비디오테이프를 오래 가지고 있던 편이었다. 오래된 비디오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손님들도 비디오 대여하는 곳이 있는지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찾아오셨다. 용봉동이나 첨단, 시내에서도 오셔서 원하는 비디오를 찾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 지금 적은 수지만 가지고 있는 이유도 아이들을 위해서다. 아이들은 만화 영화를 좋아하고 봤던 것을 또 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빌리러 오시면 보통 대여가격에 500~1000원만 더 받고 반납을 받지 않는다.

▲ 비디오테이프 대여가 가장 잘 됐을 때는 언제인가
진열장 맨 윗줄은 비디오가 70장이 꽂힌다. 98년도에 ‘쉬리’가 나왔는데 쉬리를 70장 꽂았는데 매일 나갔다. 빌려간 케이스는 뒤집어 놓는데 다 뒤집어져 있었다. 그래도 손님들은 만날 와서 ‘쉬리’를 찾았다. 반납 재촉 전화도 많이 했다. ‘아이스에이지’의 경우도 10장 정도 진열했었다. 비디오테이프가 그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지금은 같은 업종을 했던 사람들은 폐업을 하고 남은 곳이 별로 없다. 즐거움을 줬던 비디오테이프가 ‘추억’이 돼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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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ㄷ 2022-03-26 08:29:23
똑같이 비디오 대여점부터 시작한 넷플릭스는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발전해서 살아남았는데 우리나라 비디오 대여점 업체들은 발전이 없으니 망했지. 그건 그렇고 대여점이 사라진 건 별 감흥이 없는데 오락실이 많이 줄어든 게 더 아쉽다. 그리고 피시방은 있는 곳이 없어지면 또 징하게 생기지. 여러 일 중에 피시방이 그나마 돈 벌기 수월해 보여서 많이 하나? 피시방은 많이 줄고, 전국에 오락실이 많이 살아나서 여러 가지 체감형 오락이나 많이 들어오면 좋겠네. 외국 오락실에는 있는데 우리나라 오락실에선 못 보는 게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