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농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①
한미FTA, 농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①
  • 이재의/전남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1.12.0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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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부산물’의 화려한 변신
부산물은 바이오 신소재의 보고
한미FTA 여파로 우리 농업이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농업을 살리기 위해 지속 투자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떤 정책으로 질식 위기에 처한 농업을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농업정책 만으로는 안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농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전쟁, 전염병 등이 닥쳤을 때 다른 나라가 우리 국민의 식량 조달을 책임질 리 만무하다. 기후변화로 농작물 흉작이 세계적으로 동시에 닥칠 가능성도 우려된다. 돈이 있어도 곡물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최소한의 식량자급율을 유지하도록 헌법에다 명기해서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할 판이다. 그만큼 우리 농업이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다. 최근 쌀의 부산물인 왕겨에서 의료용, 혹은 에너지용 고부가가치 신소재를 개발하여 산업화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만약 이런 새로운 접근법이 성공한다면 주곡인 쌀 생산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지도 모른다. 왕겨 소재를 얻기 위해 재배하지 말라고 해도 벼를 재배할 것이고 그 결과 식량자원인 쌀이 부산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벼 부산물 이용 기술 실용화를 위한 수익창출 사업화 전략’ 심포지움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바닥에 깔고 있었다.

‘왕겨 = 녹색 광산’, 실증사업 추진
이날 첫 연사로 나선 전남 나노바이오연구센터 김귀철 박사는 ‘벼 부산물 고도활용 기술패키지형 산업화 전략과 사례’를 발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나노센터는 설립 당시부터 왕겨 나노실리카를 바이오 신소재로 실용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오고 있었다.

이번 심포지움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주관했는 데 그 단체 관계자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우리 나노센터의 왕겨 나노실리카 실용화, 즉 벼 부산물 고도화 방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올 상반기 그 관계자는 장성 소재 우리 나노센터를 찾아와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그 후 몇 차례 전문가들의 예비모임을 거쳐 심포지움 자리를 마련했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은 ‘벼 부산물 활용 실증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거기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실행방안에 대한 기획을 우리 나노센터에 의뢰한 상황이다.

왕겨를 불에 완전히 태우면 희뿌연 ‘잿빛’으로 변한다. 연소된 왕겨 빛깔이 검정색이 아닌 회색으로 변하는 것은 그 속에 10%정도의 새하얀 빛깔의 4나노미터 크기 구멍을 고르게 가지고 있는 고순도 실리카다. 전남대 한종수 교수는 왕겨 실리카 대량생산 방법을 15년 이상 연구해오고 있다.

자연상태의 생물자원에서 유래하는 나노신소재로 활용가치가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의 광주과학기술원 게클러 교수는 우리 센터의 요청으로 왕겨 실리카를 약물전달체로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였다. 충남대 성용주 교수는 왕겨 실리카를 마그네슘 환원처리를 통해 고순도 태양전지용 실리콘과 리튬의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이차전지 음극소재로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밖에도 왕겨 실리카는 광부품 소재, 혈액정제용 나노필터, 해수담수화용 세라믹필터, 화학반응을 빠르게 하는 촉매 담지체, 반도체 연마제, 의료용 생체재료, 공기보다 가볍고 유리보다 투명도가 선명한 에어로겔 등 기존 실리카보다 더 활용도가 높은 소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벼는 수천년 동안 논에서 매년 생산돼 왔었다. 그래서 모래와 달리 원료 고갈 염려도 없다. 다만 왕겨 실리카는 지금까지 대량으로 생산해 볼 기회가 없었다. 모래에서 실리카를 생산하는 기술공정이 정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래는 몇 년 후면 고갈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왕겨 실리카 실증사업의 주요 관심은 경제성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전처리를 통해 왕겨에 묻어있는 중금속을 제거한 다음 몇 시간 동안 태운다. 이때 약 800도에 이르는 높은 온도가 발생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로 물을 데워 시설하우스 농작물 재배에 이용한다. 이렇게 되면 생산비 인하효과가 발생하여 경제성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다.

이와 같은 실증사업은 적어도 수십억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농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왕겨는 약 77만톤 이다. 왕겨의 95%이상이 축산시설 깔개와 퇴비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이번 실증사업을 통해 왕겨실리카 생산의 경제성이 입증된다면 벼농사를 짓는 논은 식량생산을 넘어 실리카를 캐내는 ‘녹색 광산’으로 변모할 지도 모를 일이다.

휴대폰 케이스, 의약품 캡슐 등 활용 가능
서울대 최준원 교수는 벼 부산물인 볏집과 왕겨 등 바이오매스를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기술 4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성형가공을 거쳐 중간생성물인 팰릿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둘째, 태우면서 발생하는 합성가스를 직접연소 혹은 수분의 가스 전이반응을 통해 전기에너지나 합성가솔린, 수소 등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셋째, 급속한 열분해를 하면 바이오 오일과 활성탄이 만들어지는데 이차공정을 거쳐 액체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넷째, 가수분해를 통해 나오는 탄수화물을 당화와 발효과정을 거쳐 에탄올을 생산하고, 화학처리를 하면 바이오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이때 중간생성물인 리그닌은 바이오 리파이너리 공정을 거쳐 페놀, 플라스틱, 탄소섬유소재 등 석유화학 부산물과 유사하게 다양한 용도로 이용 가능하다. 만약 바이오 오일로 국내 중유소비량의 0.1%만 대체한다고 해도 약 3만5천톤의 바이오 오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약 1천억 원의 석유수입을 줄일 수 있고, 4만7천톤의 이산화탄소 감축효과가 예상된다.

▲ 최근 쌀의 부산물인 왕겨에서 의료용, 혹은 에너지용 고부가가치 신소재를 개발하여 산업화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한상익 박사에 따르면 벼 부산물은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 산업소재로 개발될 수 있다.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바이오필름, 생분해 육묘용 포트, 친환경 시멘트 첨가제, 휴대폰 케이스, 의약품 캡슐포장재, 스포츠용품 등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농촌에서 사용하고 버려진 폐비닐은 환경오염의 주범 가운데 하나다. 2009년도 농업용 폐비닐 발생량은 34만 톤인데 이 가운데 56%만 수거됐다. 수거비용은 171억 원, 폐비닐 재처리에 30억 원이 추가 투입됐다.

그러나 재활용율은 10%로 미미하다. 만약 100% 벼 부산물로 만든 생분해성 바이오필름을 사용한다면 폐비닐 때문에 발생하는 토양환경 오염방지는 물론 수거 비용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 않다. 현재 기술수준으로는 바이오 필름의 가격이 일반 비닐에 비해 약 4배 비싸다. 또한 인장력이 50% 정도로 아직은 충분히 질기지 못하다.

이렇듯 바이오 소재는 기존 화학소재에 비해 대체적으로 성능이나 효율성이 낮다. 또한 생물소재의 특성상 대량생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점차 높아지는 탄소세 등 환경비용까지 고려한다면 반드시 경제성이 낮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석유화학 제품이 경제성을 갖게 된 것은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바이오 소재도 투자가 이뤄진다면 기술적 한계와 경제성 문제를 머지않아 극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는 지금 탄소세를 줄이기 위한 첨단 신소재와 신재생에너지 자원개발에 한창이다. 자연계의 생물에 존재하는 천연고분자와 생분해성 합성고분자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석유화학 소재를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벼 부산물은 바이오 신소재의 보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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