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6.조선 최고 사상가들과 함께 떠나는 위대한 나의 발견
월봉서원.요월정.필암서원
<기획취재>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6.조선 최고 사상가들과 함께 떠나는 위대한 나의 발견
월봉서원.요월정.필암서원
  • 편수민 기자
  • 승인 2011.07.22 0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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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만들어진 길, 그 뒤안길
길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그리고 역사를 만난다. 길은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종착점이 크게 달라진다. 최근 길은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걷는 사람들의 중심으로 다가오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필두로 전국으로 '길 문화'가 확산됐다. 본지는 이러한 길에 대한 재조명과 개발가능성, 문제점 등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도보열풍’의 흐름 가운데 기존의 도보 여행길과 약간은 다른 모습의 여행길이 있다.

지난해 8월 문화재청에서 주관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이하 문화유산길) 공모전에 선정된 길 중 하나로 호남지역의 조선시대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길은 당시 광산구 임곡동장 이었던 남상철 씨가 ‘조선 최고 사상가들과 함께 떠나는 위대한 나의 발견’(이하 사상가의 길)이라는 주제로 구상한 길이다.

이 길은 전남 장성 황룡면의 필암서원과 요월정에서 광주 광산구 월봉서원으로 이어지는 여행길 이다.
장성선비들의 의리와 절개의 산실 ‘필암서원’, 달빛 환타지 문화의 산실 ‘요월정’, 조선 최고의 사상 로맨스의 산실 ‘월봉서원’의 3가지 큰 테마로 총7개의(필암서원▶요월정▶월봉서원▶고봉학술원▶백우산▶귀전암터▶고봉묘소) 경로로 구성됐다.

▲월봉서원 진입부 전경
▲월봉서원 가는 (돌담)길
▲월봉서원 입구

 

 

 

▲월봉서원_빙월당

 

 

▲고봉(기대승 선생) 묘소 가는길

 

▲고봉(기대승 선생) 묘소 가는길

 

 

▲고봉(기대승 선생) 묘소

 


사상가와 만나다, 월봉서원 ․ 요월정 ․ 필암서원

고봉 기대승(이하 고봉선생)은 26살 위인 퇴계 이황과 나이차와 지위를 떠나 13년간 114통의 편지로 광주와 안동을 오가며 ‘사단칠정논쟁’을 펼쳐 한국철학사를 정립했다. 조선 최고의 사상 로맨스의 장소였던 월봉서원은 고봉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백우산(白牛山)을 등에 지고 시간이 빗겨간 모습으로 광주 광산구에 자리하고 있다.

▲요월정 현판
요월정(邀月亭)은 달을 맞는다는 의미의 정자로 상당히 높은 곳에 지어졌다. 황룡강과 마주하여 세워진 정자에 올라서면 강 건너로는 옥녀봉과 대면하고 아래로는 탁 트인 들판이 보인다.
요월정의 아름다움은 정자 주위의 배롱나무가 꽃피는 7~9월경 보름달이 뜬 밤에 절정을 이룬다. 고봉선생, 하서 김인후(이하 하서선생) 등 당대의 선비들이 이곳에 올라 시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필암서원은 장성선비들의 황금시대를 꽃피운 산실로 조선후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를 면한 지역의 유일한 서원이다. 또한, 문묘에 이름을 올린 ‘동국 18현’ 중 유일한 호남 인물인 하서선생을 주벽으로 모셨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 현판과 정조의 어필 현판이 있고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다.

필암서원과 월봉서원은 각자 따로 한곳만 방문해도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여기에 두 서원과 인근의 문화유산을 연계한 길인 ‘사상가의 길’ 개발로 선조들의 지혜와 삶에 깃든 정신을 한층 더 깊이 접근해 볼 수 있게 됐다.

▲요월정 진입부에 있는 '황룡정'

 

 

▲요월정 가는길

 

 

▲요월정 가는길

 

 

▲요월정(邀月亭)


‘사상가의 길’의 그림자
‘사상가의 길’은 약12km 거리에 보통사람이 걸었을 때 도보로 평균 약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이 길은 당초 도보 여행에 초점을 맞춘 길은 아니다. 문화재청은 흥미로운 주제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을 개발하여 국민이 보다 친근하게 문화유산과 만나고 그 가치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취지로 공모전을 주최했다.

‘문화유산’에 초점을 맞춰 구상되었으나 최근 고조된 도보열풍에 힘입어 여행‘길’로 관심이 쏠렸다. 덕분에 ‘사상가의 길’은 각종 언론에 올레길, 둘레길 등의 기존 도보여행지 과 함께 걸어서 여행 가능한 이 지역의 옛길로 소개됐다.

현재 문화재청은 ‘문화유산길’에 대한 책자 제작과 배포, 문화재청 홈페이지 및 언론을 활용한 홍보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가장 중요한 시범운영은 미확정 상태임을 알 수 있어 일회성 행사로 그칠 듯 한 인상을 주었다. 돈을 들여 공모를 벌이고 길을 개발만 하고 향후 대책은 준비하지 못한 졸속행정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적어도 관할지역의 행정관청에 해당 공모사업에 대해 알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사상가의 길’이 속해있는 관할 구역인 광산구청과 장성군청에 확인결과, 이 길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향후 계획이 없었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사상가의 길’의 미래는 불투명하며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또한, 현재 이 길을 걸어서 여행하려면 논길과 국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일부 좁은 국도 이용 시 교통사고가 발생될 소지가 높았다. 여기에 월봉서원과 요월정 사이의 길은 그늘 한 점 없는 논길로 걷기에는 결코 좋은 길은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교육문화 공동체 ‘결’에서 2009년 황룡강변을 따라 월봉서원에서 필암서원까지 걸으며 고봉 기대승 선생의 삶과 정신을 생각하는 ‘청소년 철학 걷기 캠프’를 진행했다. ‘결’에서 월봉서원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캠프에도 참여했던 김봉한 팀원은 “길 자체에 위험한 요소도 있고 그늘이 부족해 힘들었다”회상하면서 “특히 지금 같은 여름철에 걷기엔 다소 고생스러울 것이다”고 말했다.

교육문화 공동체 '결'_고봉프로젝트/이예지 팀장, 김봉한 팀원
월봉서원에서 만난 사람들


 

 

 

 


 

 

 

 

 

 

 

‘사상가의 길’의 가능성과 과제
월봉서원에서 김봉한 팀원과 함께 만난 ‘결’의 고봉 프로젝트 이예지 팀장은 “월봉서원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면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여유로운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고 말했다.
월봉서원 뿐 아니라 요월정, 필암서원 등 ‘사상가의 길’을 지나며 만날 수 있는 문화유산들은 시간이 머무는 곳처럼 보여 바쁜 일상 속에 지친 사람들이 방문해 생각(잡념)을 지우고 잠시 쉬어가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문화재청의 ‘문화유산길’ 공모로 이렇듯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 재조명되고 관심이 모아진 것은 높이 살일 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동반되지 못한 여행길 개발로 반쪽짜리 성공이다.

‘사상가의 길’이 당초 도보 여행길에 초점을 맞춘 길이 아니더라도 지역민과 방문객의 수요가 많다면 이를 위한 보완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문화유산도 개발하고 가꾸어 나갈 때 빛이 나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길’은 잘 알려지고 사람들이 자주 다녀야 그 생명이 오래간다.

이 길이 성공적인 여행길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쟁점의 해답을 찾고 올바른 방향의 재검토를 필요로 한다. 또한 문화재청, 광주 광산구, 장성군 등 관련 지자체들이 하루바삐 대화에 나서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상가의 길’의 사장을 막고 이 지역의 또 하나의 탄생한 명품길을 가꾸고 보존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 여행길 개발사례로 꼽히는 제주 올레길도 언론인출신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한사람의 아이디어로 출발했고, 관계자의 말을 빌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상가의 길’도 한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이 길이 올레길을 뛰어 넘는 길로 남을지 열풍이 지나간 후 잊힐지는 앞으로 길을 만들어갈 사람들에게 달렸다.

 

   
▲필암서원 진입부

 


▲필암서원 입구

 

 

▲필암서원_우암 송시열의 친필 현판이 있는 '확연루'

 

 

▲필암서원_인조가 하사한 묵죽도 판각이 보관된 '경장각'

 

 

   
'사상가의 길'을 구상한
남상철 광산구청_지역특화개발과장


남상철 과장, “지역발전의 해답은 지역에 있다
‘사상가의 길’을 구상한 남상철 광산구 임곡동 동장은 작년 9월 초에 광산구청 지역특화개발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최근 관할 구 내 지역특화사업 개발업무로 분주했다.

남 과장은 도시계획분야를 공부한 인물로 “지역발전의 해답은 바로 지역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곡동장 시절, 임곡동 근교에 훌륭한 지역적 관광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보와 마케팅 부족으로 도심에 비해 낙후된 마을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임곡동 8경을 지정하고 엽서로 제작하는 등 마을활성화를 꾀하면서 월봉서원-필암서원을 연계한 역사 문화길인 ‘사상가의 길’을 개발했다.

남 과장은 이 길을 구상할 당시 “앞으로의 시대는 문화수준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고 우리의 미래가 문화 속에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사상가의 길’을 통해 조선시대 사상계의 거장들인 하서선생과 고봉선생의 학문과 삶을 조망하고 두 분의 가르침 속에 배어있는 삶의 지혜를 통찰하려했다.

그는 “사실 이 길은 애초 도보 여행길로 구상한 길은 아니다”면서 “여행의 수단과 자연풍광 보다 그 속에 담긴 선열의 숨결과 정신세계에 대한 고찰이 더 우위에 있는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방문객들이 문화 속 옛길을 여행함으로써 역사를 알아가고 고봉선생, 하서선생 두 사상가의 가르침 속에 스며든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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