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창조도시 광주'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 김 정 희 / 서구문화원 사무국장
  • 승인 2011.07.04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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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이 좋아서 / 항아리에 물과 함께 달을 가득 담았다.

절에 돌아와 비로소 알았다네 / 물을 쏟고 나면 달빛도 사라지는 것을”

김정희/시인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얼마 전 다녀온 지리산 벽송사 입구에 쓰여 있던 ‘우물 속 달’이란 글귀이다. 초록이 아우성치는 7월은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어느 광고 문구처럼 7월의 원경(遠景)에는 바다와 산그늘이 들어와 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던가. 밥과 돈의 엄숙함으로부터 그대의 삶이 정당했다면 이제 잠시 휴식을 위해 떠나는 것도 좋겠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짚신을 만들 때 벌레들이 밟혀도 죽지 않게 가볍게 만들었다고 한다. 디지털과 유비쿼터스의 세상에서 느리게 천천히 순서를 밟아 가는 이 아날로그의 삶은 물론 현실의 행복과는 많이 다를지 모른다.

가끔은 신문의 기사가 잘못 실릴 수도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걸며 신문을 펼친다. 환경 문제와 취업,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문제…. 날마다 다양한 계층의 욕망과 가능성이 뒤섞여 양극 사이를 위험하게 항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성공을 향한 무법질주, 그리고 어느 영화감독의 말처럼 "도착해보니 지옥이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많은 추월을 했노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선은 활자화 되지 못한 우리 이웃들의 크고 작은 행복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고 믿어보자.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학 강의를 하는 탈 벤 샤하르 교수는 "나는 행복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갖게 하는 ‘닫힌 질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라고 한다. 이 질문은 행복 추구가 어떤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최근 개발논리와 자본, 그 밀실과 광장의 힘으로 타당성이 입증돼버린 생태계나 자연환경의 파괴는 무사한 날들의 행복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문명을 만들어 냈지만, 이제는 그 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 가느라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오늘 증명된 것은 예전에 상상 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 나오는 말이다. 과학자가 예술가처럼 작업하는 부분은 과학적 진행과정의 상상적 단계 즉 가설 형성에 있어서 일 것이다. 이후 비판적 증명과 실험이 개입되면 과학은 예술과 다른 길을 걷는다.

시나 그림은 과학적 가설과는 다르지만 모든 경우에 있어 상상력은 창조의 기본요소다. ‘상상’(想像)이란 말은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국 사람들이 인도에서 온 코끼리뼈만 가지고 ‘코끼리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다. 민속이나 전통, 옛길 복원, 스토리텔링…. 조금 다른 틀이지만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는 무엇으로 이곳에 사는 도시인의 일상적 행복을 재구성 해내고 있을까.
이름이 무척 향기로운 축제들과 시멘트 광장과 건물 사이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실험 프로젝트만 난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코끼리를 만진 장님이 소통하고 지혜를 모으면 코끼리를 못 그릴 이유도 없겠다. 하지만 지금은 “유레카(알았다)”를 외치고 싶을 만큼 발칙한(?)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문화도시 광주는 상상속의 코끼리가 아닐까. 이번 휴가는 이 도시의 코끼리를 자세히 만져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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