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호남미술사
자랑스런 호남미술사
  • 채복희/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1.07.0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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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 시민의 소리 이사
몇 년전 작고하신 고재기 교수는 해방 직후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바 있다. 담양 창평 출신으로, 보성전문을 졸업한 후 동아일보 중국 심양 주재기자로 활동하던 중 해방이 되어 귀국한 그는 당시 지식인들의 중심인물이었던 리승기박사를 찾아갔다고 했다.

나일론 전신 비날론의 발명가인 리박사 역시 담양 출신이었으며 세계과학사에 기록된 인물로서 초대 서울대 공대학장을 지냈다. “젊은 너희들이 배운 지식을 고향에 가서 후진 양성하는데 바쳐라”는 리박사의 권유에 따라 고재기는 광주로 와 서중학교에 부임한다. 그 후 국립 전남대가 생겨 국문과로 옮겨 후학 양성에 매진하다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일제 때 전국 각 지역에 생겨났던 고보와 해방 후 이를 전신으로 한 각 지역 명문고등학교, 창설 국립대학은 70년대 말까지 20여년간 지역 인재를 육성하는 터전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대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던 80년대를 거쳐 오늘 현재까지 지역 국립대의 위상은 추락을 거듭해갔다. 심지어 ‘지방잡대’로 싸잡히면서 수도권의 4류대학에도 못미치는 평판을 갖고 있다. 이는 지역 불균형의 심화와 그 궤를 똑같이 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 현실은 결국 수도권의 모든 문제를 야기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작금의 등록금 사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각은 본질에 접근하지 않고 있다. 결국 수도권 편중의 이 왜곡된 구조는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분화구처럼 폭발지경에 이르고 있으나 근본적 해결은 난망하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지역에 사는, 그리고 지역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자존과 희망 역시 시들어가는 목초나 다름없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고착된 구도가 과연 풀릴 가능성이 있을까 좌절이 앞서는 가운데 최근 발표된 전남대 미술학과 김허경씨의 박사논문이 관심을 끈다. 비정형 추상미술이라 해석되는 앵포르멜 회화양식이 호남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한 논문이다. 구상회화에 비해 모든 형태를 해체시키고 순전히 정신활동의 결과물로 한폭의 캔버스를 채워가는 앵포르멜 양식은 서양회화사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회화활동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서구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비정형 양식은 회화사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미술세계를 보여주었으며 그것은 한없는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영혼을 대변했다. 그런데 호남에서 이러한 추상의 자유로운 깃발을 가장 먼저 세웠다는 것이며 이는 호남의 오랜 예술성을 바탕으로 한 진보적 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었다. 논문을 지도한 미술과 정금희 교수는 “논문의 의미가 참으로 깊다”면서 지역의 자긍심과 명예가 되살아났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자랑스러운 사실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역이 살아날 수 있으며 이 나라가 다시 균형을 잡아 바로설 수가 있을까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회의가 든다. 중앙-지방의 수직적 구도를 통해 나라꼴은 기형이 되었고, 독재에 이어 탐욕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저 부도덕한 수구세력이 과연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을 놓치려 할 것인가. 지방자치를 죽이고 지방교육을 죽이고 농어촌은 아예 살아남지 못하게 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과연 바꿔질 것인지 고개가 흔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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