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헤게모니(7)
연대와 헤게모니(7)
  • 이홍길/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7.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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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전남대 명예교수광주·전남 민주동지회회장
중공이 제기한 “연합정부론”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는 국공마찰을 해소하고 항전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이면서 전후 민주중국의 청사진으로 비춰지기도 하였다. 민주정파들은 일이차에 걸쳐 전국성적 헌정운동을 일으켰는데, 중공이 이를 수렴, 그들의 전략 전술을 고려하여 “연합정부”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중국 식자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 내용과는 별개로 미국은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소련은 양해하는 모습이었으며, 전쟁이 끝난 유럽의 각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정권들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연합정부는 그 정권의 구체적 향배는 유보하더라도 내전을 종식시키고 민주정파와 공산당이 동의하고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정치적 화해수단이어서 그야말로 대세라 할 수 있었는데도, 정개석의 남경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들의 고립을 자초하였다. 헌정은 항전에 장애가 되고 군사와 민주권리는 서로 배반된다는 주장도 서슴치 않았다. 민주정파들에 있어서 정치민주화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핵심주장으로 민주를 실행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문제도 원만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남경정부의 입법원장이자 손문의 아들인 손과마저 연합정부의 가능성을 시사하여 “연합정부가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민주동맹의 나융기는 “당파합작은 반드시 연합정부 방식을 채취하여 진정으로 정권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항일과 정치민주화와 연합정부론으로 중공과 민주정파는 끈끈한 연대를 이루어 중화인민 공화국 건립까지 그 밀월을 함께 하는데, 본디부터 그들의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니어서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나 그 주장과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는 연대가 항구적이지 못하여, 특정의 조건 속에서 책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노정하기도 하였다. 중공에 의하면 국민당의 독재와 전제가 민주적 중간파를 출현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정당 하나의 주의로 국가를 위망에서 구한다는 체제는 필연적으로 민족 자산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인권파나 개조파나 국민당 좌파를 등장케 하였는데, 중국공산당의 좌경이 폐쇄주의 정책을 폄으로써 혁명조급성과 종종의 과격행위를 나타내어 많은 중간파 활동가들이 공산당과 일정한 거리를 갖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장개석에 반대하고 공산당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은 독립된 정당이 아니고 제3국제의 괴뢰로 제3국제의 맹목적 지휘를 따른다고 주장하면서 심지어는 살인방화의 유구세력으로 공격하기도 하였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일찍이 스타린의 “혁명이 폭발하는 시기에는 타협정당이 적대세력의 가장 위험한 구성요소로 이러한 정당을 고립시키지 않으면 적들을 전복할 수 없다”는 주장에 따라 중간파들을 적대하여 당파관계를 정확히 처리하지 못하는 착오를 범하였다.

계급투쟁에 대한 교조적 집착에서 소자산계급은 소자산계급의 동요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30년대에 들어 공산당의 무장투쟁이 결단나고, 항일전쟁의 신국면이 펼쳐져 반장항일 핍장항일의 가능성이 자명하게 열릴 때, 항일과 반장의 민주역량들은 중국공산당의 궁지를 정치적으로 타개할 동맹군이 될 수 있었고, 민주정파는 장개석의 억압을 차단하는 연대역량을 공산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과 공간조건이 결정한다. 40년대의 연대가 50년대에 그대로 계속되지 않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이제 집정당이 되었고 그들의 정치의식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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