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과 악마의 덫
인맥과 악마의 덫
  • 채복희/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1.06.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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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 시민의 소리 이사
지금도 인생이 잘 풀려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인맥이고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현 정권에서는 고려대와 소망교회 출신이 고위직 임명 때마다 주요 인맥으로 거론된다. 얼마 전에는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거액을 소망교회 헌금으로 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혈연, 지연, 학연에다 ‘신의 나라 인맥’까지 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앞의 세 가지 인맥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너무 강해 이른바 ‘패거리’ 현상을 빚어 조폭의 그것과 동일어로 지칭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까지 나서 그런 패거리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을까. 낮은 곳에 숨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거룩한 말씀조차도 사라졌나 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목자들의 태도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즉 ‘이너 그룹’에 들어가면 그러한 비판이 받아 들여지는게 아니라 ‘절대 배척’ 된다. 그 안에 들어가면 영원한 동지이자 선민이고 그 바깥은 ‘적’이나 다름없다. 인맥과 관련된 한 이 저급한 속성은 어느 집단이든지 모두 조폭과 같은 수준에 머문다.

광주 전남권에서 아직도 가장 강력한 인맥 중 하나는 고등학교 인맥이며 한국 사회 전역에서는 ‘막강 고려대’ 맥이 잠시 득세하는 가운데 서울대가 여전히 가장 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엘리트 교육이 빚은 부정적인 결과 중 하나인 이 특별한 성질은 개인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집단 방어 의식을 구축하기 때문에 큰 부작용을 부른다.

집단에 소속돼 있기만 하면 공중에서 외줄타기를 하더라도 그 아래 안전망이 거미줄처럼 쳐져 있다. 사실 이들 엘리트 집단이 선한 의지를 갖고 있을 지라도, 개개인의 이해득실 관계와 부딪칠 경우 장벽으로 바꿔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승진 자리를 놓고 다투거나 사업권을 따낼 때 작동되는 인맥은 그 안에 소속되지 않을 경우 장벽 바깥으로 가장 먼저 내몰리고 만다. 생존한다는 일이 밀림에서 살아남기 같은 것이라면 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 것인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최근 장, 차관을 지내고 국립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인 인물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 속에 ‘악마의 덫’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역사 속에 어떤 정권으로 기록될지 말도 탈도 많은 이 정권 아래 저질러진 비리와 연관되어서였다. 브로커인지 업자인지, 뇌물 공여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자가 연관된 사람들을 차례로 불면서 거론된 인물이었고 그는 평생 구축한 명예가 일시에 사라질 위기에 이르자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치 한편의 시어(詩語)나 암호처럼 ‘악마’와 ‘덫’이라는 단어를 남겼다. 이 두개의 단어는 일상 용어가 아닐 뿐더러 언어의 역사 속에서도 단순하게 쓰이지 않았다. 죽은 자는 나머지 유서 내용들에 의해 그것들이 모두 사람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들로서, 살아 생전 맺었던 잘못된 인맥에 대해 죽음 직전 통한을 담아 고백한 것이다.

엘리트 육성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서, 성공적 삶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혼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는 후일담이 들린다. 고향에 돌아가 대학 총장을 끝으로. 그런데 ‘악마의 덫’이 그만 그를 덮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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