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헤게모니(1)
연대와 헤게모니(1)
  • 이홍길/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5.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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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전남대 명예교수광주·전남 민주동지회회장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 주의 주장이 다른 사람들, 계급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야 할 일들이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불가피한 일들이 인생 도정에는 종종 나타난다. 민주화운동, 혁명운동 독립운동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운동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협력과 협조가 장기적으로 잘 이루어지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는데, 그 다단한 역정을 중국 현대사에서 살펴보고저 한다. 특히 국․공합작을 일차에서 삼차에 이르기 까지를 살피고저 한다.

청나라가 망하고 신해혁명이 성공하여 중화민국이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국은 민국이지 못하고 군별과 외세가 판을 치는 半식민지의 절름발이 공화국으로 국리민복을 위해서라도 군별과 외세의 족쇄는 풀려야 했는데, 기왕의 노쇠한 혁명역량만으로는 결코 현상을 타파할 수 없었다. 발군한 혁명가 손문에게 있어 삼민주의라는 이념적 지남은 있었지만, 그것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그는 우호적 군벌에게도 의존하려 하였고 외세에도 의존하려고도 하였지만, 군벌들의 태도는 반복 무상하여 진형명의 배신으로 광동 혁명 근거지에서 쫓겨나기도 하였고, 모든 외세들은 혁명가 손문을 외면하고 군벌들의 후견세력으로 되어, 오히려 혁명의 장애물로 두드러지게 되었다. 신해혁명의 골간세력들은 관료화되거나 기성세력화되어 현실 극복의 전위가 될 수 있는 예기를 상실해 가는 지경에 이르러, 새로운 신진세력들의 충원이 요청되는 시점에 이르렀는데, 1919년 5․4운동의 격랑은 대중세력과 학생‧지식인 세력의 등장이 신시대를 예고하였고, 혁명가 손문이 이를 주시하게 되었다.

5․4 학생 지식인 세력은 그 애국주의를 신해혁명의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았으면서도, 민주와 과학의 세례를 받고 서구 사회주의 사상과도 맏닿아 있어 사회혁명과 정치혁명의 충분한 예비군들이었다. 바로 손문이 찾는 신생역량이었다.

5․4 운동의 격량과 함께 현대 중국의 외연도 변하고 있었다. 적색혁명을 달성한 레닌의 러시아 정부는 코민테른을 통하여 세계혁명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당초 예상과는 달리 유럽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레닌은 유럽에서의 실패를 교훈삼아 아시아에서의 민주․민족혁명을 추동․지지하게 되는데 식민지 젖줄을 차단하여 식민 모국의 무산계급의 혁명역량을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접근은 외원에 급급하던 손문에게는 복음이었고, 중국에는 공산주의가 아직 이르다는 쏘비에트 러시아 당국의 지적은 금상첨화에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여기에 손문과 레닌의 속셈이 맞아 떨어지고 러시아와 손문 중국의 혁명연대가 이루어지지만 그 혁명 연대는 공산혁명과 민족․민주혁명으로 그 질적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손문 요페선언이 이루어지고 혁명고문과 군사고문이 파견되고, 혁명 군사역량을 키우기 위한 사관학교가 만들어지는 등 혁명적 조치가 착착 이루어저 가고 있었다. 5․4의 신생역량은 이미 소비에트 러시아의 후원으로 중국공산당이라는 계급정당을 만들어 손문 국민당의 혁명동반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국민혁명을 위하여 반제 반군벌의 기치로 국‧공합작을 이루어 연대의 서광을 내외에 떨치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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