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경쟁력, 생물소재산업 육성이 관건이다.
농업경쟁력, 생물소재산업 육성이 관건이다.
  • 이재의/전남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1.05.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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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위기, 1차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세계화로 파괴된 식품산업 가치사슬, 다시 살려내야

 

이재의 / 전남 나노바이오 연구센터 소장
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일상적인 생활용품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심각해진 환경오염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관심변화가 시장의 요구로 나타난다. 이런 류의 생활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바이오 관련 기업들에게 천연생물소재 발굴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호남지역은 천연생물소재의 원료가 되는 농수축산물이 풍부하다. 갈수록 약화되기만 하는 농업경쟁력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호남지역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그게 곧바로 농업경쟁력 회복이나 농업소득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우리 농산물을 활용하여 천연생물소재를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이 지역에는 별로 없다. 이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부를 통틀어서도 천연생물소재 분야에서 눈에 띄는 기업이 거의 없다. 이게 심각한 문제다.

식품소재 90% 이상 수입품

식품분야만 한정해서 보자. 현재 우리나라 식품분야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공된 식품 소재는 거의 대부분 수입품이다. 국내 어느 대기업 임원의 이야기다. “90%, 아니 전부를 수입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가격 문제다. 값싼 중국산 농산물의 범람과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춰 국제적으로 물량을 유통시키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저가 공세다. 국산 식품소재가 맥을 못 추는 이유다. 둘째, 국내에서는 안정적인 원료조달이 어렵다는 점이다. 가령 대기업이 한 가지 신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을 때 원료확보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농산물 공급시스템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계절과 자연여건에 따라 가격 진폭이 크고 공급물량의 변화도 크다. 기업은 아예 처음부터 충분한 물량공급이 가능한 수입 식품소재를 원료로 사용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셋째, 지난 20여년 사이에 우리의 식생활 패턴의 엄청난 변화다. 과거에는 주부들이 담당하던 ‘요리’ 영역을 요즘은 식품기업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마트나 수퍼에 나가보면 야채나 과일류 등 신선채소류를 제외하곤 대부분 라면처럼 물 붓고 끌이기만 되는 정도의 완제품이 즐비하다. 적어도 20여 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일반 가정에서는 식품원료를 시장에서 사다가 집에서 각종 양념과 주부들의 손맛을 곁들여 직접 조리해서 먹었다.

우리농산물이 소비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원물상태의 농산물을 식품 대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소재형태로 가공해서 공급하는 생물소재기업이 국내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농산물 안 팔리는 이유

이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눈에 띄는 것보다 더 심대하게 식품산업의 가치사슬에서 구조변화를 초래했다. 먹거리의 가치사슬 변화는 식품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식품분야에서 네슬레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출현했고, 국내에서도 농심, CJ, 대상, 삼양사 등 식품 대기업이 여러 개가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런 대기업들의 성장과 더불어 식품소재를 공급하는 국내의 농산물소재 가공기업들도 성장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농산물 소재 가공기업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자리를 수입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우리나라 농산물을 원료소재로 가공하는 국내기업이 없다 보니 우리농산물 소비 촉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생산농가 - 소재가공기업 - 식품기업’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구조에 구멍이 뻥 뚫린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국내 식품산업의 내적 가치사슬이 붕괴돼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배경에는 과거 정부의 정책방향과 농민운동단체 지도자들의 잘못된 상황판단이 한 몫을 했다고 보여진다. 1980년대 말 WTO 체제가 들어서면서 세계화 추세가 본격화될 때 정부는 농업정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였다. 어차피 우리 농산물은 가격과 생산의 효율성 측면에서 국제경쟁력이 없으니 차라리 농업을 포기하고 비교우위산업이나 키우자는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 틈새를 비집고 중국산 농산물과, 호주산 쇠고기, 칠레산 포도주, 미국산 쌀과 옥수수 밀가루가 물밀듯이 들어와 온통 수퍼마켓이나 마트를 점령해버렸다. 그 무렵 농업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농민운동 지도자들도 판을 잘못 읽었다.

소농중심 농업생산구조의 쇠퇴를 우려하여 농산물개방 상황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태 예견에 소홀한 결과다. 마땅히 농업경쟁력을 키워 우리시장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생산효율이 높은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을 미리 고려하여야 했었다. 소농체제의 고집은 결국 1990년대 초반 격렬한 농민운동의 성과로서 확보한 100조원 이상의 농업구조조정자금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소농체제의 와해는 물론 농업경쟁력 상실로까지 이어진 참담한 결과로 매듭지어졌다.

반도체, 자동차산업 보다 더 커진 국제농산물 시장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머지않아 우리 먹거리는 중국산이나 다국적기업이 공급하는 소재로 만든 식품으로 완전히 대체돼버릴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몇 년 후면 그나마 남아있는 채소나 과일 등 몇몇 품목을 제외하고는 우리농산물을 시장에서 찾아보기조차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조작(GMO)을 통해 기른 옥수수나 밀가루 빵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제농산물가격이 앞으로 크게 오르게 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산 농산물가격도 요즘 가파르게 가격이 오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식량파동의 진폭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농산물은 대표적인 공급과잉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인구 증가, 중국 인도 등 신흥경제대국의 급성장에 따른 식량소비 증대, 옥수수 등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에너지 사업 비중 등이 커지면서 세계 식량 재고량이 매년 줄고 있다. 반면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농산물공급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또한 농산물은 친환경에너지와 더불어 최근 기능성 바이오 소재 및 천연물 신약 원료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세계 농식품산업 규모가 반도체나 자동차를 뛰어넘어 4조5천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시장으로 진입했다. 글로벌 농업전쟁은 단순히 식품생산 수준을 벗어나 식품, 플랜트, 농자재와 유통까지 확산 중이다. 먹거리 위기를 틈타 ‘1차 산업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식품소재산업 최적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식품소재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 세계화가 본격화된 지난 20여년 사이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가치사슬에서 완전히 공백 상태가 돼버린 ‘식품소재산업 육성’이 현 시점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우리 농산물을 최종 완제품까지 연결해줄 수 있는 중간 고리로서 생물소재산업 육성 없이 우리농산물이 잘 팔릴 수 없다. 둘째, 생활양태 변화에 따른 농업지역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호남지역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농업의 주요거점이다. 식품소재산업의 주요 소재지는 호남지역이 돼야한다.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대도시나 근교에 소재할 수도 있지만 소재가공기업은 농산물 생산지역에 위치해 있어야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

부피가 큰 농산물의 유통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이미 농촌지역에 많이 구축돼 있는 저장시설을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현지 생산농민들과 수시로 변하는 시장변화에 대한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하면서 다음 해에 재배해야할 작물의 선정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무엇보다 정부의 ‘농생명산업’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농업은 IT나 조선, 자동차산업 등과는 다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산업’이다. 단순히 가격경쟁력이 없다고 ‘생명의 원천’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정부가 지속적인 육성정책을 펼쳐야 한다. 기왕 육성할 바에야 산업으로서도 경쟁력을 갖게 만들어야 하고, 잘만 하면 만들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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