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찾아서(6)
연대를 찾아서(6)
  • 이홍길/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5.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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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전남대 명예교수광주·전남 민주동지회회장
사법살인을 당하는 현장에서 죽산은 설교와 기도를 자청, 예수가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의 성경 구절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의 죽을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내려서 놓아라 한데... 저희가 큰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를 읽어 달라고 하여 결벽의 끈을 못 놓고 있었다. 큰 사명과 큰 자각을 갖고 살다 보면 단 한 번의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비극이 생기기도 하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과 죽산 조봉암 선생의 경우에서 목격하게 되어, 두 분들의 의연한 대처에 외경감을 금할 길 없다. 이러한 죽음의 수용은 꼭 그분들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절의의 역사에서도 종종 살필 수 있어 의인의 문화전통 또한 끊이지 않았음을 살필 수 있다.

지도적 인물들의 죽음을, 특히 억울한 죽음을 수용하는 방식이 나라에 따라서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음을 본다. 귀화 지식인 박노자 교수가 소개하는 노르웨이의 19세기 초 농민 선각자 호바르드의 억울한 죽음과 그것을 대하는 호바르드의 태도를 살펴보자. 그는 오지에서 농촌개혁을 하는 가운데 이웃들에게 모함을 당해 죄 없이 사형언도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호바르드가 그의 억울함을 원망하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의 젊은 날 스웨덴과의 노르웨이 독립전쟁을 벌릴 때 군대에 징집된 호바르드가 스웨덴 군대와 백병전을 벌이다 한 스웨덴 장교를 칼로 찔러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다. 모두들 용감하게 싸웠다고 그를 칭찬했지만, 그는 살인자가 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여 그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도 천벌이라 생각하여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황당하기 까지 한 먼 나라 노르웨이의 역사 일단을 소개하는 박노자의 판단은 민족과 애국이 결코 최고의 절대가치가 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싶어서였다.

물론 어떤 시간 공간의 조건을 갖고 있느냐는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민족과 공동체가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생명이라는 절대가치와 진실 위에 결코 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신념을 위하여”가 한여름 밤 모기떼처럼 난무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령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야만시대의 가치관을 줄기차게 이어왔는가를 돌이켜 보면, 인간의 축적된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보잘 것 없었던 것인가를 절감하게 한다.

알제리 해방을 위하여 조국 프랑스와 싸웠던 프랑스의 지식인들과 일본제국주의의 중국침략에 반대해서 싸운 일본 지식인들의 행위도 인간주의와 진실이 그 무엇에도 우선하는 절대가치임을 거듭 웅변한다.
우리들은 21세기에 살고 있고 이제 지구촌이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단일 민족이라는 순결한 구호도 그 빛을 잃어 가면서 다문화 사회가 자명하게 예견되는 지금, 구태의연한 애국찬가와 고구려․신라의 영광 같은 소리들은 이제들 그만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평가하고, 반세기가 넘는 우리의 혈맹국가 미국은 과연 우리들에게 어떤 나라인가를 반추하게 되는 현실은 “미국을 반대 한다”며 1991년 5월 분신자살한 「박승희」양의 20주기 추모제가 그녀를 사랑하고 기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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