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행은 단지 두발과 맨손으로 끝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가난하고 건강한 젊은이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로부터 65년 세월이 흐른 오늘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향해 가는 수단은 거의 대부분 비행기에 의존한다. 육로가 끊긴 한반도 남쪽에서 바닷길은 여전하나 속도의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젊은 탐험객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뱃길은 거의 산업의 통로가 되었다. 거대한 화물선들이 느리게 대양을 누비는 동안 그것을 계획하는 두뇌들은 비행기나 인터넷으로 전광석화같이 움직이는 형국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늘과 바다의 기능을 제각각 나누었지만, 그 과정에서 서서히 깨달았던 중요한 사실 하나가 대륙과 대양, 대기권의 근접함이었다. 이제 이들은 근접함을 넘어 거의 통합의 수준에 이르러 있지 않은가 할 정도다. 그런 까닭에 새삼 대단한 이론을 끄집어 대입하지 않더라도 지구라는 둥글고 푸른 별이 한덩어리며 유기적으로 한몸처럼 인식된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좀 더 먼 나라 얘기였다. 이제 와 새삼 그 사고를 뒤적여보니 사고 직후 유럽 대륙이 벌벌 떨었다고 했다. 그때로부터 25년이 흐른 오늘 일본사태와 지구촌의 상황이 우리에게 미치는 파장은 또 다르다. 더 가깝고 빛과 같은 속도의 정보가 흐르며 그만큼 교류의 양도 엄청나다. 지금은 단순한 물리적 접근도를 넘어선, 측정불가능한 역학적 관계망들이 촘촘하게 형성돼 있다.
바로 옆나라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나 지구촌을 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는 지금, 해남 땅끝과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해안가 구석구석에서 터전을 잡고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 또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기는 지구를 돌고 돌며 바다의 조류도 흘러 흘러 남해 바닷가를 철썩이며 적시고 있을 것이다. 냉철하고 명망있는 과학자들 일부는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럼에도 남해 바닷가에 사는 이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는다. 하늘과 바다가 이렇게도 가까워졌는데 정말로 그럴까, 확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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