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노동자의 비애
시간제 노동자의 비애
  • 노영필 철학박사
  • 승인 2011.04.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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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 전남고,철학박사
시간은 돈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특히 그렇다. 시간을 단위로 노동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니 시간이 먹고 사는 중요한 기준인 셈이다. 어떤 입장에서 본다면 시간제 노동에 대해 우호적일 수도 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시간제 노동 환경이 좋아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필요한 시간만큼 일을 하고 다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시간제 노동문화를 우호적으로 볼 수 있을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개인 단위보다는 집단 단위의 사고가 강하고, 가부장적 연고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현실에서는 월급이야말로 제대로 된 경제능력이라고 생각하거나 곧바로 자존심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까놓고 얘기하면 월급의 규모가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우리 사회는 시간단위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이래 5명의 시간강사들이 비참한 시급의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지난해 우리 지역 한 시간강사의 비통한 자살을 필자는 잊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보다 혹독하게 자신과 싸우며 굽히지 않고 걸어온 학자의 길에서 얼마나 자존감을 잃고 모멸스러웠으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겠는가. 끝없이 연민을 느낀다.

이들의 죽음을 부른 가혹한 현실 앞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시간강사 대책은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 언론은 한술 더 떠 “대학시간강사제도 30년 만에 폐지” “시간강사 교원지위 부여” “대학시간강사제도 폐지” 등으로 포장하여 과열보도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시간강사 신분은 용어만 달라진 것일 뿐 정규직이 아니며, 안정적인 고용대책은 더더욱 이루어지지 않았다.

필자는 비정규직인 시간강사제가 제도적인 허울을 쓰고 본말이 전도되면서 유사한 현장이 더욱 은폐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고등학교 시간강사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일례이다. 요즈음 공립학교에서도 너댓명, 많게는 열댓명이 넘는 기간제교사가 정규직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

분만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투입되는 대체 인력으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별 이동수업에 투입되는 강사, 영어나 과학분야의 전문강사 등으로 근무하는 시간제 교사 규모가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중고등학교의 기간제 강사가 당하는 온갖가지 비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간강사들이 학교에서 맡는 강의량과 보수 등 여러 조건들을 정규직과 비교한다면 지나치게 불균형적이다. 더욱이 많은 사립학교에서는 기간제로 채용된 다음 차후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희망처럼 담보하며 정규직과 똑같은 근무를 요구하고도 관리자의 좋은 평정을 받지 못하면 1~2년 뒤 자신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기 일쑤이다. 어찌 그뿐이랴. 현실이 이러하니 시급(時給) 앞에서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라는 말처럼 소중한 뜻이 담긴 것은 없으리라. 시간은 정말 금이다. 인류의 문명과 같이 해온 것이 시간이다. 시간을 지속의 문제로 전개한 베르그송 이래로 수많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시간’을 중요한 탐구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 중의 하나인 ‘시간’은 생활을 다스리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임금을 둘러싼 노사협상 중에도 근무시간을 늘릴 것인가 시간의 단가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최대 쟁점이 된다. 그래서 시간을 단위로 하는 노동개념은 중요하다.

시간단위 임금을 받는 강사제를 존속시키자는 의견이 아니다. 시간제 고용구조가 안정되려면 월급체계보다 시급의 체계가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하고 임금보장 또한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채 시간단위 고용제에 대한 시스템을 개선하자고 언급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고용시장을 자유화시키려고만 하고 신분이나 임금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존중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시간단위 노동자의 상황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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