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가득한 교실
봄꽃, 가득한 교실
  • 노영필 철학박사
  • 승인 2011.03.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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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 전남고,철학박사
봄이다. 긴긴 겨울을 털어내는 시간이 이렇게 더딘 건 난생 처음이다. 산허리를 감싸고 돈 바람끝, 들녘에 번지는 햇살이 아직은 겨울의 기세를 꺾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푸석거리는 들길도, 봄을 알리느라 빨갛게 달아오르는 층층나무 나뭇가지에도 봄은 아직 멀어 보인다.
‘기다리니 더욱 더디 온다.’ 올봄이 유난히 더디었던 이유는 질리도록 이어진 폭설과 한파에 이어 지난주 몰아닥친 바다 건너 일본대륙의 대재앙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첨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늘 위대한 과학의 힘이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자연 앞에 얼마나 겸허해야 하는지, 계절의 변화 앞에 더욱 큰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아무리 꽃샘추위의 시샘이 모질어도 찬바람, 잔설에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햇빛 한줌 들지 않은 켜켜이 뒤덮인 낙엽을 뚫고, 잔설이 여전히 차고 눅눅한 기운으로 온몸을 짓눌러도 제 몸의 몇 만 배가 넘는 무게의 흙덩이를 들어올리며 기어이 가냘프고 여린 꽃대를 올려내어 예쁜 꽃을 피운다.
복수초와 봄맞이꽃, 노루귀와 바람꽃..... 이름하여 봄의 전령사들!! 안개를 풀어놓은 듯한 봄맞이꽃, 순백의 눈꽃이 내려앉은 듯한 변산바람꽃, 털송송 야들야들 가냘픈 분홍빛 노루귀, 황금잔을 받쳐들고 등장한 의장대를 본 듯한 복수초.....

무거웠던 겨울외투를 벗어던지고 한결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도 봄기운을 느끼게 하지만 들녘과 산등성이에는 화사한 봄을 전해 주는 전령사들이 때를 기다려 순서없이 우르르 피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개나리, 진달래만이 아니라, 산수유, 생강나무꽃의 상큼한 향기와 매화의 깊은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올 즈음이면 바야흐로 우리는 완연한 봄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엔 지인과 함께 깊은 산골짜기 계곡을 따라 황금빛 의장대 같은 화려한 꽃잎의 수도 없는 복수초를 보았다. 안복(眼福)에 너무나 황홀하여 눈 둘 데를 몰라 했다. 그저 사진으로만 보던 복수초를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생명력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봄꽃이라면 그저 개나리 진달래 벚꽃 정도만 보고 지나쳤던 나에게 그 맞닥뜨림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온 그 힘찬 생명의 에너지가 내 혈관에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이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1주일, 한번은 충전을 위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새로운 풀꽃이 주는 봄기운에 설레여 하면서 다시 한주 동안 교실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며 그들을 이해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다음 주도 숲으로 가리라.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복수초 같이 진노란 분위기로 살가운 기운이 우리 아이들에게 번졌으면 좋겠다. 제일 먼저 풀 섶에 올라오는 새순들이 경이롭듯이 아이들에게서도 그들만의 싱그러움이 묻어났으면 좋겠다. 가지 끝에 힘차게 수액을 빨아올리느라 연둣빛으로, 붉은 빛으로, 물오르는 나무들처럼 힘찬 기운이 뻗어 나왔으면 좋겠다.

온 천지의 식물들이 사람들에게 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웃 일본에도 자연의 대재앙이 하루 빨리 극복되길 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눈코 뜰 새 없이 삭막한 학기 초, 겨우내 지난했던 어려운 공부를 떨치고 새 학기의 신선함으로 약동하기 희망한다. 지천에 널려있는 고개 내민 꽃들처럼 아이들도 제 몫을 찾아가는 새 학기가 되었으면 한다. 식물들이 제 생명의 몫을 찾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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