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복지논쟁
최근의 복지논쟁
  • 신일섭/호남대 교수
  • 승인 2011.03.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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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政이냐, 惡政이냐.
신일섭/ 호남대 교수복지행정대학원장
근래 정치권을 중심으로 복지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색깔을 달리하는 정파들이 다양한 정책으로 자신의 복지정책을 부각시키고 있다. 식상하고 공허한 정치논쟁 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인 복지정책이 주된 공론거리가 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발전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징표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성장과 개발 일변도의 사고가 지배하던 우리 사회에서 사회 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적인 복지국가의 출발은 일찍이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영국에서의 역사적 경험은 복지정책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게 한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W. Churchill)은 전쟁의 영웅이었다.

풍전등화의 국가적 위기를 승리로 이끈 처칠은 영국 국민들의 세기적 영웅으로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인 1945년 7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총리(수상) 처칠은 의심 없이 승리를 장담하면서 戰後 문제 처리를 결정하는 연합국 정상회의인 독일 포츠담 회담에 여유롭게 참석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당시 제1당이었던 처칠의 보수당은 패배했고 그와 대결했던 애틀리(C.R. Attlee)의 노동당은 화려한 승리를 거두었다. 처칠의 패배 원인은 다름 아닌 복지정책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즉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지칠 대로 지친 영국민들은 전쟁에서 이겼다는 승리도 중요했지만 당시 전화(戰火)의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삶의 어려움과 배고픔을 해결하는 소위 복지문제들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영국 복지국가의 초석을 닦았다는 베버리지(W. Beveridge)의 플랜을 전쟁의 와중에 과감히 입법 수용했던 노동당의 정책들이 당시 영국인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포츠담 회담 중 선거패배의 소식을 접한 처칠은 대표자격을 애틀리에게 넘겨주고 "젠장, 어찌 이런 일이..."하면서 회담장을 빠져나와 귀국했다는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얼마 전 무상급식과 무상복지 문제를 놓고 서울 시장과 교육감, 여야 정치권에서 벌어진 논쟁을 지켜보았다. 또한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도 보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논쟁이 한창이지만 별 감흥이 일지 않는 이유는 그에 대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지정책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자 이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最古의 역사책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 5년(28) 11월조에는 “왕이 국내를 순행(巡行)하다가 한 노파가 굶고 얼어 죽으려는 것을 보고, ‘내가 하찮은 몸으로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기르지 못해 노약자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으니 나의 죄다’라면서 자신의 옷을 벗어서 덮어주고 밥을 밀어 먹였다”고 전한다. 유리왕은 유사(有司 : 담당 관리)에게 환과고독(鰥寡孤獨-四窮民)과 늙고 병들어서 자활할 수 없는 이를 위문하고 식량을 주어 부양하라고 명하는데, 『삼국사기』는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이를 듣고서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 왕조시대부터 환․과․고․독(아내가 없는 늙은 홀아비를 환(鰥), 지아비 없는 늙은 홀어미를 과(寡), 늙어서 자식이 없는 노인을 독(獨), 부모 없는 아이를 고(孤)) 즉 하소연할 데 없는 이들 사궁민(四窮民)에 대한 연민과 베품은 善政과 惡政의 기준이 되었다.

중국의 주(周) 문왕(文王)은 정치할 때 이 네 부류 사궁민(四窮民)의 백성을 가장 우선했기에 善政의 성인으로 추앙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 복지논쟁에서 정치적 수사는 난무했지만 진정으로 환과고독 즉 사궁민(四窮民)과 같은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복지사각지대인 절대 빈곤층에 대한 지원 대책 없이 현란한 장밋빛 복지 청사진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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