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는 허기
채워지지 않는 허기
  • 채복희/시민의소리이사
  • 승인 2011.02.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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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황순원 선생이 남긴 단편소설 중에 ‘목넘이 마을의 개’가 있다. 조선인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했던 일제 말 남부여대하고 만주로 넘어가던 중간에 자리한 평안도 어느 지방, 목넘이 고개가 있었다. 이 고개를 넘어 목넘이 마을로 접어들면 유랑민들은 먼저 동네 우물에서 목을 적시고 발을 씻은 후 동냥밥을 얻어 먹고 다시 길을 떠나곤 했다. 그러던 중 낯선 개 한 마리가 나타나 동네 개들과 어울리자 마을 주민은 혹시 자기 집에서 키우던 개가 미치지(광견병) 않을까 염려하며 아예 미리서 개를 잡아 개울가에서 개추렴을 벌인다. 이 광경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짐승처럼 울부짖듯 개 추렴


“고기를 뜯고 그러다가 모기라도 와 물면 각각 제 목덜미며 가슴패기를 철썩철썩 때리는 것이란, 흡사 무슨 짐승들이 모여 앉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를 한번 하자고 하며, 제가 먼저 혀 굳은 소리로 노랫가락을 꺼냈다. …첫여름 밤 희미한 남폿불 밑에서 이러는 것이 또 흡사 무슨 짐승들이 한데 모여 앉아 울부짖는 것과도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시골에서는 개를 키워 여름 복날 보신용으로 잡아먹기도 하기 때문에 1940년대 목넘이 마을의 풍습이 문제될 리 없다. 다만 황순원 작가의 눈에 비친 그 당시 이 나라의 농촌마을이 더 이상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아닌 것으로 읽혀진다는 점에서 인상 깊고, 사실 그것이 이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식량은 물론이거니와 키우던 개까지도 일본군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빼앗겼던 그 시절 목넘이 마을 사람들은 그날 밤 ‘비린 것(개고기)’ 맛을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잔뜩 하면서 내남없이 낯선 개사냥에 나선다.
동물사회의 평화는 오로지 먹이에 의해 좌우된다. 반면 인간들의 평화는 먹이로만 가늠되지 않는다. 인간들에게 먹이란 위장을 부르게 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영양소를 품은 식량으로서, 육체를 넘어 정신적 만족으로 향하는 가장 아래 단계에 놓인 물질로서 기능한다. 어떤 이들, 사실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있어 그것들은 아무리 채워져도 영혼의 허기까지는 메우지 못한다. 인간은 배만 부르다고 사는 ‘하등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인간들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 하도록 끊임없이 부추김을 당한다. 물질로 채우기에는 이미 세상에 가득찬 물질의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어떤)이들은 한없는 허기에 시달리게 된다. 현대 거대 도시에서의 삶은 한 개인을 미미한 존재로 전락시키면서 그의 영혼을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아무리 애를 써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허기로 그는 끝없는 탐욕을 부리게 된다.

도시인과 영혼 없는 좀비

피폐한 삶으로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었던 시절, 목넘이 마을 사람들에게 길잃은 개 한 마리는 팍팍한 식도를 기름지게 할 좋은 식량이었다. 살코기를 뜯어 먹으며 목청을 돋우는 이 사람들의 모습은 짐승의 무리나 다를 바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배가 차오르면서 만족감이 생기면 유랑민들에게 동냥밥을 주며 인정 나누는 인간들로 돌아갔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한없는 허기에 쫒기는 (어떤)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은 짐승 무리도 아닐 듯싶다. 영혼이 없이 몸만 살아 움직인다는 ‘좀비’라면 너무 심한 비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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