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광주의 중앙통이 될 것이여”
“여가 광주의 중앙통이 될 것이여”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2.13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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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신창동 반촌마을 정춘식 할아버지

아파트 건설 틈바구니 운 좋게 피해
영산강 상류 광주의 갑문 자부심 커
   

▲ 정춘식 할아버지.
광주의 자연마을들이 도시화를 피해 지금껏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아예 농촌지역이거나 도심의 중심축과 거리가 멀다는 지리적 배경에 연유한다.

간혹 도심 안에서 살아남은 자연마을이라 해도 아파트 신축 등으로 마을 대부분이 수용되거나 잘려나가 몇몇 가구들만 ‘외딴 섬’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대부분.   

반면 이번에 소개하는 반촌마을은 개발의 틈바구니에서 마을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예 중 하나다. 거꾸로 생각하면 개발에서 소외됐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마을경로당에서 만난 정춘식(81) 할아버지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아파트는 사람 살디가 아니여, 그것이 감옥살이제. 없이 살아도 이렇게 항꾼에 모여산께 얼마나 좋은가, 시내 가직하고 자유롭게 댕기기 활발허고.”

한때는 100여 호가 넘었다는 마을은 예전만 못해도 여태 70~80여 호가 모여 사는 대 고을이다.

“근동에서는 운남리가 제일 컸고 그 다음이 반촌, 비아, 내촌 그랬제. 근디 반촌만 빼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다 없어졌어. 그랑께 인자 여가 젤로 크제.”

마을이름이 왜 반촌이냐고 여쭸다. 정 할아버지가 생각을 다듬는 사이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거들고 나선다. “양반들이 산다고 반촌이제. 매결, 월봉, 반촌을 예부터 양반마을이라고 불렀어. 진주 정(晋州 鄭)씨들이 자자일촌 함시로 오래 전부터 살았제.”

자료를 찾아보니 반촌이라는 이름은 맨 처음 마을에 정착한 반씨 성을 따 반촌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1924년 행정구역 조정 때 판촌으로 변했다가 다시 반촌이 됐다고 한다.

진주 정씨 일가가 마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병자호란 이후라고 하니 얼추 더듬어도 마을의 역사는 근 400~500여년에 달한다.  “마을 앞 당산나무 봤제? 그것이 간판에는 수령이 220년이라고 적혀 있는디 어른들 말로는 600년이 훨씬 넘었디야. 마을이 오래되얐어. 동네가 전부 일가붙이라 명절 때가 되믄 모다 모여서 합동세배를 허고 하루 죙일을 놀았어. 그 때만 해도 볼 만 했제.”

▲ 600년 됐다는 마을 느티나무 당산.
영산강 상류에 위치한 마을은 벼농사가 실한 편이어서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리 곤궁한 편이 아니었다.

“70~80년대까지 이 근동이 다 무시골짝이었어. 서울 뿐 아니라 전국에서 ‘극락강 무시’하믄 알아줬응께. 무시가 안 된께 몇 년은 미나리꽝도 허고. 근디 지금은 고추 하우스 짓는 몇 사람 빼고 농사를 안 지어. 시내 사람들이 모다 땅 사갖고 짓제. 근디 그것도 글렀어. 4대강 헌다고 모다 냇가를 파 내서 물이 쑥 빠져부렀어. 복잡해.”

예전의 강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쭸다.
“아조 깨끗했제. 시내 사람이믄 다 천렵하러 놀러 나오고. 대사리도 잡고 개앙다리(조개의 일종)로 국도 끓이고. 지금은 어디 그러간디?”

누구에게나 어느 한 시절 잘 나가던 때가 있듯 반촌마을에게도 광주의 중심이라 자부했던 전성기가 있었다.

“우리 마을은 일제 때부터 전기를 쓴디여. 그 때 시내 사람들은 꿈도 못꿨제. 마을 앞에 정미소를 허던 사람이 전기를 끌어왔제. 정미소는 신창동 문화재(청동기시대 유적) 지정되고는 뜯겨지고 없어. 글고 농악이믄 농악, 콩쿨대회고 연극이고 반촌하믄 근동에서는 젤 쎘어. 딴디는 아예 상대가 안 되야.”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재간 많던 왕년의 그 멤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 했다.

▲ 반촌마을 앞 영산강 상류 구간도 4대강 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순정한 전통을 이어오던 마을도 10여 년 전부터는 약간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주유소며 식당, 가구 창고, 고물상, 골프연습장이 하나 둘씩 들어서면서 마을을 포위하기 시작한 것. 

“여그가 좀 뒤떨어지기는 했어도 뭣이 들어서도 들어설 것이구만. 우리 마을이 광주의 갑문 아니여? 도로가 땅은 시내보다도 더 비싸. 한 평에 300만원 이상씩 헌께. 강도 있고 전망 좋고 산책허기 좋고, 언젠가는 여가 진짜 광주의 중앙통이 될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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