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거부한 대학생
대학을 거부한 대학생
  • 신일섭
  • 승인 2010.11.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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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섭 교수(호남대 복지행정대학원장)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 입학시즌이다. 오늘도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라고 어제부터 여러 매스컴에서부터 요란하다. 한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젊은 청소년 시기를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서만 공부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좋은 대학을 가야만 성공하는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좋은 대학을 못가면 인생 패배자가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필자는 지난 봄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 서울의 한 대학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결코 잊지 못한다. 사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그 여학생의 선언은 TV 뉴스나 각 일간지, 인터넷 신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올 한해를 보내면서도 그 사건은 늘 필자의 뇌리를 맴돌았다.

가끔 “대학교를 스스로 떠난 그 여학생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며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양이 대학을 자퇴하면서 교정 게시판에 꾹꾹 눌러 써 붙인 대자보의 제목이다.

그냥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아니라 ‘거부한다’고 강한 부정을 하면서 대학을 떠났다. 소위 서울의 명문대학 명문학과의 김예슬 양은 경주마처럼 길들여진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인간의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80년대 시절에는 군사독재 권력에 의해 투옥당해 학교에서 제적당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발적으로 대학을 거부하면서 떠난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이제 학생이 자신이 입학해 다니던 대학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떠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고, 불의에 대한 저항을 꿈꿀 수도 없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녀의 용기 있는 고백을 마냥 칭찬할 수도 없지만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절망적인 외침을 젊은이의 객기로만 생각하기에는 명색이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김예슬 양은 자신의 대자보를 통해 이 땅에서 대학생으로, 청년으로 제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비감하게 드러냈다. 그녀는 대학생들이 영원히 초원을 볼 수 없는데도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로 양육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잘못된 길 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동참하는, 스스로 배반하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청춘은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은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해서 서글프다”고 했다.

큰 배움, 영혼이 없는 대학 

요즘 “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미 커진지 오래다. 여러 원인들 속에서 찾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대학의 거대한 자본화”에 두고 있다. 그래서 “큰 배움(大學)이 없는, 영혼이 없는 대학”으로 전락한 오늘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모순의 현실에서 김예슬 양은 그의 개인적 자퇴결단으로 대학과 자본의 거대한 탑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작은 균열은 시작되었고, 자신은 새로운 젊은이로 탄생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걸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 키우라는 세상에서 더 이상 공범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대학을 뛰쳐나온 것이라고 한다.

폐허와 잔해가 되어 거친 폭풍우에 휩쓸리고 있는 영혼 없는 광장. 이 거친 광장에서 김예슬 양은 청년기의 영혼이 요구하는 저항과 자유인의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는 삶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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